눈이 내렸다


뒤덮은 순백에 하나된 전부

덮이지 못하고 남겨진 하나

하얀 빛깔의 세상 하나

검은 잿빛의 겨울 바다

바다는 성이 났다

바다는 거칠었다

바다는 난폭했다

바다는 외로웠다


홀로


깊숙하게 자리잡은 무거운 증오

뒤엉키듯 토해내는 외로운 절규


결국에 삭히지 못한 분으로

무심코 뭍으로 뻗은 손찌검

무서운 기세로 솟는 너울에







눈송이 하나가 닿았다







그리고 파도는 하이얗게 물들어

찰나에 눈 녹듯이 산산조각났다


바다는 손을 뻗었다

성난 손짓이 아닌, 간절한 기도로


물마루 위 소복히 순백이 덮였다


바다는 날뛰었다

가득찬 분노가 아닌, 뒤덮인 환희로


그때부터

바다는 흰색으로 파도치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넘어도

파도의 빛깔만은 변하지 않았다


비록 털끝만한 부분일지라도

나도 너희와 하나될 수 있다고

눈송이가 가르쳐주었다고

쉼 없이 일렁이고 일렁였다


그러니 흐린 겨울날

바다가 유난히 요동치는 것은

혹여 눈이 올까 기대하는 까닭이요,

순백으로 물드는 세상에 반색하는 까닭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