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멋대로 하는 삼국지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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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윤은 이튿날 솜씨 좋은 장인을 시켜 금관을 만들게 하고 사람을 불러 집안에 간직해둔 빛이 고운 아름다운 구슬 몇 알을 은밀히 여포에게 보냈다. 여포는 크게 기뻐하며 감사를 표하러 직접 왕윤의 집으로 왔다. 왕윤은 미리 맛좋은 요리와 진귀한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가 여포가 오자 몸소 문밖으로 나가 영접하고 후당으로 안내해 상좌에 앉혔다. 여포가 말했다.


"나는 상부의 일개 장수에 불과하고 사도는 조정의 대신인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정중하게 대하는거요?"


왕윤이 말했다.


"지금 천하에 다른 영웅은 없고 오로지 장군만 있을 뿐이오. 이 윤은 장군의 직책이 아니라 장군의 재능을 공경하는 것이오."


여포가 크게 기뻐했다. 왕윤이 정성스럽게 삼가 술을 올리면서 입으로는 동태사와 여포의 덕을 끊임없이 칭송했다. 여포는 크게 웃으며 실컷 마셨다. 왕윤은 좌우를 꾸짖어 물리치고 시첩 몇 명만 남기고는 술을 권하게 했다. 술이 거나해지자 왕윤이 말했다.


"아이를 불러와라."


잠시 후 푸른 옷을 입은 두 명의 시녀가 농염한 화장을 한 초선을 이끌고 나왔다. 여포가 놀라 누구냐고 묻자 왕윤이 말했다.


"딸아이 초선이오. 이 윤이 장군의 과분한 은혜를 받아 육친과 다름없다고 생각해서 장군을 뵙게 하는 것이오."


바로 초선에게 분부하여 여포의 술잔을 올리게 했다. 초선이 술을 권하는 데 두 사람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왕윤이 취한 척하며 말했다.


"아가야, 장군께서 마음껏 드시게 몇 잔 더 올리도록 해라. 우리 일가는 완전히 장군께 의지하고 사느니라."


여포가 초선을 앉도록 청했으나 초선은 일부러 들어가려고 했다. 왕윤이 말했다.


"장군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데 아가가 앉는다고 무슨 상관있겠니."


초선이 바로 왕윤 곁에 앉았다. 여포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쳐다봤다. 다시 몇 잔을 더 마시자 왕윤이 초선을 가리키며 여포에게 일렀다.


"내가 이 아이를 장군께 첩으로 드릴까 하는데 받아들이겠소?"


여포가 자리를 나와 감사하며 말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개와 말이 되어 힘을 다해 은혜에 보답하겠다!"


왕윤이 말했다.


"조만간 길일을 택해서 부중으로 보내겠소."


한없이 유쾌해진 여포는 자꾸 초선만 바라봤다. 초선 역시 추파를 던지며 애정을 보였다. 잠시 후 술자리가 끝나자 왕윤이 말했다.


"원래는 장군을 주무시도록 머물게 하고 싶었는데 태사께서 의심하실까 두렵습니다."


여포는 두 번 세 번 절하며 감사하고 돌아갔다.


며칠이 지난 후 왕윤이 조당에서 동탁을 만났는데 여포가 곁에 없는 틈을 이용해 엎드려 절하며 청했다.


"제가 태사의 거마를 누추한 집으로 모셔 연회에 참석하기를 청하온데, 각하의 뜻은 어떠신지요?"


동탁이 말했다.


"사도께서 불러주시니 바로 가리다."


왕윤이 감사의 절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각종 산해진미를 풍성하게 차렸다. 또한 전청 한가운데에 자리를 마련하고 바닥에는 아름답고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을 깔았으며 안팎으로 각기 장막을 둘렀다. 이튿날 정오에 동탁이 도착했다. 왕윤은 조복을 갖춰 입고 나가서 맞이하며 두 번 절하고 안부를 물었다. 동탁이 수레에서 내리자 좌우의 극을 잡은 갑사(갑옷을 입은 전사) 100여 명이 동탁을 빽빽하게 둘러싸고 대청으로 들어와 양편에 두 줄로 늘어섰다. 왕윤이 대청 아래에서 두 번 절하자 동탁이 좌우에 왕윤을 부축헤 올리게 하고 자신의 자리 옆에 앉히도록 명했다. 왕윤이 말했다.


"태사의 크고 훌륭한 덕은 높고 위대하시어 이, 주(상나라를 건국한 명제상 이윤과 상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제상 주문공을 말한다.)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동탁이 크게 기뻐했다. 술을 권하고 음악을 연주하며 왕윤이 더욱 경의를 표했다. 날이 저물고 거나하게 취하자 왕윤이 동탁을 후당으로 청했다. 동탁은 갑사들을 꾸짖어 물리쳤다. 왕윤은 술잔을 받들고 축하하며 말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자못 천문을 익혔는데 밤에 건상(별자리 모양)을 살펴보니 한나라의 명운은 이미 다했습니다. 태사의 공덕을 천하에 떨쳤으니 순임금이 요임금의 자리를 물려받고 우임금이 순임금의 뒤를 계승하듯이 하신다면 하늘의 마음과 사람의 뜻이 합치될 것입니다."


동탁이 말했다.


"어찌 감히 그러기를 바라겠는가!"


왕윤이 말했다.


"예로부터 '도가 있는 자가 도가 없는 자를 물리치고, 덕이 없는 자가 덕 있는 자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했으니 어찌 지나치다 하겠습니까!"


동탁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천명이 내게 돌아온다면 사도는 마땅히 원훈(탁월한 공적을 세운 사람)이 될 것이오."


왕윤이 절하며 감사를 드렸다. 후당 안에 화촉을 밝혀 여자들만 남기고 술을 권하며 음식을 바쳤다. 왕윤이 말했다.


"마침 가기가 있어 감히 모시려 하는데 승낙해주십시오."


"그거 좋소."


왕윤이 주렴을 내리도록 하니 생황(관악기의 일종) 소리가 빙 돌며 휘감아 올라가고 초선이 둘러싸여 나오며 주렴 밖에서 춤을 췄다. 춤이 끝나자 동탁이 가까이 오라고 분부했다. 주렴 안으로 들어온 초선은 깊이 몸을 숙여 두 번 절을 올렸다. 동탁은 초선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고 왕윤에게 물었다.


"이 여인은 어떤 사람이오?"


왕윤이 말했다.


"가기 초선이라 합니다."


왕윤이 초선에게 술잔을 올리라 분부했다. 동탁이 술잔을 받으며 물었다.


"몇 살이냐?"


초선이 말했다.


"천첩 이제 막 16세입니다."


동탁이 웃으면서 말했다.


"참으로 평범하지 않은 여인이로구나!"


왕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이 아이를 태사께 바치고자 하는데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은혜를 주시니 어떻게 그 은덕에 보답하겠소?"


"이 아이도 태사를 모시게 되면 그 복이 결코 얕지 않을 것입니다."


동탁이 거듭 감사했다. 왕윤은 즉시 전거(양모를 압축해 만든 모전으로 덮은 수레)를 준비하여 초선을 먼저 상부로 보냈다. 동탁 또한 몸을 일으키고 작별을 고했다. 왕윤이 몸소 동탁을 상부까지 모시고 난 다음에 작별하고 돌아왔다.

말에 올라 돌아오는데 중간도 가지 못했을 때 여포가 붉은 등을 양쪽으로 늘어뜨리고 길을 비추며 말을 타고 극을 잡은 채 오는 게 보였다. 왕윤과 마주치자 바로 말고삐를 당겨 세우고는 왕윤의 옷섶을 꽉 잡고 엄하게 물었다.


"사도는 왜 이미 초선을 나한테 주기로 허락하고는 지금 다시 태사에게 보냈으니, 어디 나를 놀리는 거냐?"


왕윤이 급히 여포를 제지하며 말했다.


"여기는 말할 만한 곳이 아니니 잠시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여포는 왕윤과 함께 집에 와서 후당으로 돌아갔다. 예를 마치고 왕윤이 말했다.


"장군게서는 무슨 까닭으로 도리어 이 늙은이를 의심하시오?"


여포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보고하기를 당신이 전거로 초선을 상부로 들였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뭐냐?"


"장군께서는 모르시는구려. 어제 조당에서 태사께서 이 늙은이에게 '내가 볼일이 있으니 내일 그대의 집으로 가겠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약간의 연회를 준비하고 기다렸지요. 그런데 태사께서 술 드시는 중간에 '그대에게 초선이라는 여식이 하나 있어 이미 내 아들 봉선에게 허락했다고 들었소. 그대의 말이 확실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특별히 와서 요청하니 한번 보여주시게'라고 말씀하셨지요. 이 늙은이가 감히 어길 수 없어 초선을 불러내 시아버님께 절을 시켰소. 그러자 태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이 길일이니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 봉선과 혼인시키겠소'라고 하셨소. 장군도 생각해보시오. 태사께서 친히 오셨는데 이 늙은이가 어찌 감히 가로막겠소?"


"사도께서는 죄를 용서하시오. 내가 잠시 잘못 살폈으니 내일 스스로 가시나무 채를 지고 와서 진심으로 사죄하겠소."


"딸년 혼수도 자못 있으니 장군께서 부중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보내도록 하리다."


여포가 사과하고 돌아갔다.


이튿날 여포가 부중에서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기별도 들리지 않았다. 대청으로 들어가서 동탁의 시첩들에게 물어보니 시첩이 대답했다.


"간밤에 태사께서 새로 온 여인과 함께 주무셨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여포가 크게 노하여 동탁의 침실 뒤편으로 몰래 들어가 엿봤다. 이때 초선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 아래에서 머리를 빗질하고 있었는데 창밖 연못 가운데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키가 매우 크고 머리에는 속발관을 쓰고 있었는데 슬쩍 보니 바로 여포였다. 초선이 일부러 두 눈썹을 지푸리며 우울하고 즐겁지 않은 태도를 지으며 수건으로 몇 번이나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여포는 한참 동안 엿보다가 이내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들어오니 동탁이 이미 대청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동탁은 여포가 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바깥에 아무 일 없느냐?"


"별일 없습니다."


그러고는 동탁 옆에 시립했다. 동탁이 식사를 하는데 여포가 슬그머니 훔쳐보니 수놓은 주렴 안에서 한 여자가 왔다 갔다 하면서 엿보다가 얼굴을 반쯤 드러내고 눈짓으로 애정을 보냈다. 초선임을 안 여포는 정신이 모두 날아가 흩어졌다. 이런 여포의 광경을 보고 동탁은 의심하는 마음이 새역 말했다.


"봉선은 일이 없다고 하니 잠시 물러가거라."


여포는 불만스러워하며 나갔다.


동탁은 초선을 들어앉힌 뒤로 여색에 푹 빠져 한 달여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동탁이 우연히 작은 병에 걸렸는데 초선이 옷도 벗지 않고 비위를 맞추며 정성을 다하자 동탁의 마음은 더욱 기뻤다. 어느 날 여포가 내실로 들어와 안부를 묻는데 마침 동탁이 자고 있었다. 초선이 동탁의 침상 뒤에서 몸을 반쯤 내밀어 여포를 바라보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더니 다시 동탁을 가리키며 계속해서 눈물을 훔쳤다. 여포는 마음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때 동탁이 두 눈을 어렴풋이 떴는데 여포가 침상 뒤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뚫어지게 주시하는 것을 보았다. 몸을 돌려보니 초선이 침상 뒤에 서 있었다. 동탁이 크게 노하여 여포를 꾸짖었다.


"네가 감히 나의 애첩을 희롱하느냐!"


좌우를 부럴 쫓아냈다.


"이후로는 내당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원한에 사무친 여포가 돌아가다가 길에서 이유를 만나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이유가 급히 들어와 동탁에게 말했다.


"태사께서는 천하를 취하고자 하시면서 어찌하여 조그만 잘못을 가지고 온후를 꾸짖으셨습니까? 여포가 변심이라도 한다면 큰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어찌하면 좋겠느냐?"


"내일 아침에 불러들여 황금과 비단을 하사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신다면 저절로 풀릴 겁니다."


동탁이 따르기로 하고 이튿날 사람을 보내 여포를 대청으로 불러들여 위로하며 말했다.


"내가 어제 병중이라 정신이 맑지 못해 말실수하여 네 기분으 상하게 했으니 너는 마음에 두지 말거라."


그러고는 황금 10근과 비단 20필(약 185미터. 1필은 약 924cm)을 하사했다. 여포가 감사하고 돌아갔으나 여포의 몸은 비록 동탁의 주변에 있어도 마음은 진실로 초선에게 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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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반말을 찍찍 싸도 딸 준다는 사람한테는 존대하는 여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