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우유에는,
사실, 바나나의 흔적이 단 1밀리그램도 없다.
모두가 알고도 속아주는, 작은 비밀이다.

어느 덩치 큰 철제의 기계가 제 몸에 불어넣은,
합성착향료로 그것을 갈음하고,
소도심의 윗목에 누워서,
제멋대로 아열대의 무더위를 꿈꿀 따름이다.

나는, 그가 그러하듯 찬 방에 누워서,
그 싯누런 인공의 빛깔을 바라보며,
내 멋대로, 고향이 원치 않는 잠든 고향의 꿈을 꾼다.

내 고향엔 지금 서늘한 봄바람이 불 것이다.
내가 한자리 잡고 드러누운,
이 시린 방바닥 같은, 봄바람 한 줄기가,
또한 제멋대로 날리고 있을 것이다.

무성한 초록의 한봄을 꿈꾸며.

돌이켜보면, 세상이란 모든 것이 제멋대로인데,
모두가 꿈에 기대어 멋대로 살아가는,
장주지몽의 세상인데.

어느 가을날 팔랑대는 낙엽 한 장에 깨고 말,
작은 꿈속의 세상인데.

바나나 우유란 이름의 가련한 친구에겐 바나나가 없고, 봄바람이라는 놈은 기별도 없는 푸른 봄의 앞에서 황홀에 젖어 몸을 배배 꼬고,

내겐, 아, 나에게는 마음 쓸 곳도 고향도 없음에도 고향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