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 내가 아침에 본 뉴스에는 오늘도 한 사람이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을 보자 난 그 사람은 보나 마나 지하 인간에게 당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뉴스 때문에 나가기가 조금 꺼렸지만, 밖에는 강한 햇살이 비치는 가을이었다. 산책하러 가기에는 최적의 날씨였다.


집 밖으로 나가서 좀 가다 보면, 강 위에 도로를 이어주는 다리, 그 아래에 산책로가 있다. 난 통로가 좁은 돌계단을 건너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난 순간 인기척을 느껴 옆을 보았다. 다리 밑 어두운 공간에 무언가를 느꼈다. 태양이 밝은지라 어두운 곳이라도 잘 보였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난 안심하고 그대로 앞으로 걸어갔다. 옆에는 무척이나 길고 큰 강이 있었기에 난 그 강에서 자라고 있는 오리들이나 새들을 보며 자연을 만끽했다. 하지만 여러 번 지나가는 다리 밑 그림자들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지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지하인간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지금으로부터 5개월 전이다. 뉴스에 한 아저씨가 저녁 늦게 이 산책로를 활보하다, 실종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산책로를 뒤져보고, 조사도 해보았지만, 마땅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고 난 뒤, 교회 안 건물에서 이상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시체는 반쯤 녹아 보이는 몸에 피부는 무척이나 새까맣게 탄거 처럼 무척 어두웠다. 사람의 형태를 띄고 있었지만 사람 치고는 두 눈이 없었고 눈 구멍만 거대하게 남은 채 입은 비정상으로 커져있는 채 쫙 벌려져 있었다. 입 속의 이빨들은 전부 뾰족했다. 목에는 물린 듯한 자국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괴물의 시체였다.


연구자들이 그 시체를 정확히 조사하려고 그 시체를 가져갔고 불이 켜진 수술대에 놔두자, 그 시체는 점점 연기가 강하게 나고 살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이 당황해 불을 끄자, 살들이 사라지는 것은 멈출 수 있었다.


이 시체가 빛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아마 빛에 약할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추측했다. 당시 시체가 발견된 교회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색깔들로 만들어진 창문들이 많아 빛이 은은하게 주위를 비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체가 약간씩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빛에 약하다고 한들 불이 꺼진 연구실로는 그 시체를 더 자세히 분석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의 주인이 밝혀졌는데, 바로 얼마 전에 실종됐던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이 짧은 순간에 시체가 이렇게 부패하고 흉측한 모습으로 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믿지 않았다. 그 시체는 그야말로 미스테리로 가득 찬 시체였다. 


그 이상한 시체가 발견된 이후, 점점 주변에는 실종자가 나오는 일들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실종자들의 공통점은 전부 저녁에 실종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저녁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때문에 저녁 산책을 좋아하던 나도 부모님이 날 말리셔서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느 날, 실종자만 난무하던 뉴스에 한 속보가 들어왔다. 어느 길가에 있었던 스마트폰에 한 영상이 찍혀있었는데, 이 영상에서는 한 남자가 어떤 생명체에게 겁을 먹어 쫓기던 영상이었다.


“헉… 헉… 씨바… 저것들 뭔데…”


영상 속 남자는 달리면서 온갖 공포를 자아내는 행동과 말들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긴박했던 화면도 서서히 사라져갈 때쯤, 남자는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남자는 공포의 단말마를 냈는데 그의 바로 뒤에 흉측하게 생긴 검은 인간들이 무더기로 그를 쫓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무리는 더 이상 남자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저 위협의 자세를 나타낸 채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상한 소리도 지르며, 다리로 쓰는 손을 그에게 휘두르기도 했다. 남자는 이런 그들의 행동에 무서움과 의아심을 느끼는 찰나, 갑자기 커다란 비명과 함께 흔들리는 화면이 보이며 핸드폰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카메라는 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울먹이며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 남자도 실종되었다. 아마 죽은 것 같았다. 시신은 핸드폰이 있던 길에 있다고 있다고 생각해 조사했지만, 그때와 똑같이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영상이 퍼지자, 영상에 나오던 괴물이 얼마 전에 발견되었던 그 이상한 시체와 같은 형체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영상 속 괴물들이 남자의 핸드폰에 나오는 빛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과, 발견된 시체가 빛에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을 보면, 꽤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의문점이 하나 있다. 시체는? 시체는 어떻게 되었는가? 얼마 전에 실종된 아저씨가 그 괴물로 추측되는 시체로 변하고 세상에 발견된 것을 보면, 아마 그 괴물로 변하는 것은 전염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만일 그가 저녁에 습격당하고 바로 그 괴물로 변하였다면, 그는 이제 그들과 같은 동족이 되었기에 더 이상 공격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저씨가 발견된 곳은 산책로하고 멀리 떨어진 교회 안이었다. 빛이 없는 안전한 저녁에 거리를 돌아다니다 왜 문뜩 교회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을까?


전염이 천천히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주변에 빛을 낼 무언가에 당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교회는 산속에 있었다. 주변엔 빛을 낼 만한 게 없었다. 결국 이 죽음은 미궁으로 더 들어갔고, 우리는 이 의문의 죽음을 궁금해했고, 또 두려워했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뉴스에서 이상한 시체가 발견됬던 산책로 다리 밑에 무언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건 바로 뼈와 엉망으로 변한 내장들이었다. 죽은 아저씨와 같이 어두운 피부의 살점들이 붙어있는 뼈들과 인간의 내장과 똑같은 내장들. 어떤 것은 아에 뼈만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어느 부윈지 알 정도로 살이 많이 붙어있는 것도 있었다.


조사는 그 다리 밑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뼈에 붙은 살점들은 모두 누군가가 뜯어먹은 흔적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장들 마저 엉망진창으로 변한 것을 보면, 누군가가 이 시체의 주인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누가 이 괴물을 먹었을까? 어제 이 시체가 발견된 다리 밑에는 시체가 나왔다는 신고도, 그리고 누군가 시체를 먹고 있다는 신고도 없었다. 그 다리 밑은 이 산책로로 들어가기 위한 돌다리 바로 앞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야 이 시체가 발견된 것을 보면, 그것은 사람이 먹은 게 아니였다. 괴물이 먹은 것이었다. 괴물이 괴물을 먹은 것이었다.


이 시체는 지금까지 발견된 시체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이 시체가 나옴으로써, 아저씨의 죽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아저씨를 잡아먹으려 하는 괴물들을 피하기 위해 교회까지 갔다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괴물이어도 살려는 본능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 고생을 하다 교회까지 오게 된 것이죠.”


뉴스에 전문가가 말했다. 과연 아저씨는 괴물이 되어도 살기 위해 그 괴물들을 피해 교회까지 피해 간 걸까. 그럼 왜 아저씨는 그 교회에서 죽은 걸까. 어쩌면 괴물들을 피하지 못해 교회에서 습격당한 것일까.


흉측하게 괴물로 변해도 살려는 본능으로 그 먼 곳을 달리며 괴물을 피해 도망쳤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생각에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그래도 죽은 공간이 교회라는 사실에 조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뉴스는 계속 실종자로 난무했고, 괴물들로 가득 찼다. 때문에 사람들은 저녁을 무서워하며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명령으로 인해, 현대에는 없던 통금이 시작됐다. 그래서 자주 있던 아빠의 회식은 사라지고, 나의 야자 시간도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늘 저녁 6시부터는 집에만 있었다.


한시라도 늦으면 서로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상태를 확인했다. ‘더 늦으면 괴물한테 당한다.’라는 말과 함께 어서 오라며 호통까지 칠 정도였다. 저녁이 돼도 사람들을 이용해 거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그들은 카메라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도로 신호등에, 건물 안이든 밖이든 공간이 보인다면 전부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물론 산책로에도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곳에서 사건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 우리는 그놈들에 대해 더 알기 시작했다.


그놈들은 저녁이 되면 땅속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리를 활보하며 먹잇감을 찾듯이 주변에 고개를 흔들며 움직였다. 작은 울음소리도 내며 동료들을 인식하게 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들은 짝짓기 같은 행동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자니 뭔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시간 만큼은 그곳에 인간 대신 괴물들이 득실거렸다.


이런 일에도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있었다. 카메라에선 종종 사람이 괴물에게 습격받는 장면들도 포착됐다. 그들은 하나같이 빛으로 그 괴물들을 위협하다가, 결국 공격받는 식의 패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이 괴물들을 땅속에서 나와 활보한다고 해서 ‘지하 인간’이라 불렀다. 괴물이라고 불리기엔 그들 중에는 자기 가족이 있다며 그 이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건 그들의 가족들이 아니라 그저 완전한 괴물이었고,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온 공포스런 존재였다.



2.


저녁 6시가 넘었다. 우리 집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한 명이 비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바로 우리 엄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비가 와서 그래. 걱정마 지금 집 앞이야.”


엄마는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아빠는 전화를 끊지 말라며 계속 전화를 이어갔다. 아빠는 집 앞 어디냐며, 여편네가 겁도 없다며 엄마를 나무랐다. 이윽고 엄마는 팔이 아프다며 전화를 멋대로 끊었다.


아빠는 바로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엄마는 받지 않았다. 몇 번이고 전화음이 울렸다. 우리는 그 전화음을 보고 들으며 숨죽였다. 아빠가 이윽고 일어나 말했다.


“… 니 엄마 깜디 새끼들에게 당했나 보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집에 빨리 오셔서 어서 집에 오라며 날 혼내시던 사람들이었는데, 마음이 갑자기 무거워지며 빨갛게 달아올랐다. 고통이 몰려왔다. 난 달려 거실에 있는 큰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밖은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지만 해가 지기 직전이었다.


아직 빛은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괴물들이 그 빛에 겁을 먹었으면 했다. 하지만 전화는 여전히 먹통이었다. 우리는 엄마를 기다렸다. 마침내 해가 완전히 지고 저녁이 몰려올 때, 그리고 그 시간이 한동안 지속될 때, 우리는 그대로 절망했다.


아빠는 방에 들어가 나오시질 않으셨다. 나 역시 거실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무엇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꺼져 있는 티비를 본다. 허망하게 비춰진 나 자신을 본다. 난 울고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에게 이제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충격은 시간 감각도 무더지게 만들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히며, 엄마를 생각했다. 가끔 아빠를 보면 엉망으로 난 수염에 알코올이 묻어있고, 또 눈은 알코올 처럼 형태가 없었다.


아빠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하 인간이랑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색이 더 밝았을 뿐이었다. 아빠는 사람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는 쓰디쓴 고통으로 엄마와 만나고 죽은 듯이 잠에 드셨다.


아빠는 가끔 저녁에 나가려고 달릴 때도 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아빠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정신 차리라고, 이제 간 사람이라고 계속해서 외쳤다. 아빠는 아직 안 죽었다고, 니 엄마 아직 살아있다며 엄마를 볼 거라고 아파트에 울리도록 소리쳤다.


나는 조심해야 할 것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변한 건 아빠뿐만 아니라 나 역시 변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약한 인기척도 알아듣게 되었는데, 아빠 때문에 이런 건지, 아님 내 주변에 지하 인간에게 당한 사람을 알게 된건지 몰라도 난 이것을 매우 귀찮해하였다.


이제 누가 보호자고 보호받을 대상일까.


그냥 예전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


새벽이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우시던 아빠를 가까스로 재우고, 나도 역시 잠에 들려 했다. 하지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쿵쾅거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켜 문을 열였다. 갑작스레 일으킨 몸뚱아리라 시선이 잠시 흐려지며 어지러웠다.


겨우 고개를 들어 본 것은 열려 있는 현관문, 그리고 차가운 바람들이었다. 난 놀라 아파트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를 찾아야 한다. 아빠를 찾아야 한다. 아빠를 찾아야 한다.


허나 내 손은 현관문 손잡이에 있었다. 난 끅끅거리며 떨었다. 내 몸은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는 굳었고 몸은 앞으로 쏠렸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 아파트 복도 깊숙한 곳에 인기척이 느껴지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난 그 문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침이 되었으나 난 저녁에 머물고 있는 거 같았다. 하지만 빛이 선명하게 날 비추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갔다. 몸을 일으켜 아빠가 잠들었던 방의 문을 열어본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술병과 침대 위에 헝클어진 이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는 희미하게 아빠의 행동들이 보였다.


사랑하는 이를 보자고 하는 허구의 속삭임을 아빠는 들었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탓에 그 속삭임에 응한 걸까. 그래서 잠든 와중에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 것일까. 아빠가 마시다 만 술병 하나를 들어 내 입에 갖다 대본다. 난 바로 헛구역질 하며 그 술을 뱉었다.


밖에 나간다는 게 두려웠다. 아침이어도 괴물들이 사는 것만 같았다. 침대에 누워 눈물을 쥐어짜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다. 지금이 몇 시냐고, 학교에 안 오냐면서 나에게 말한다. 난 작게 말한다.


“오늘은 못가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냐?”


침묵한다. 차마 부모님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내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대답을 재촉하셨다. 그의 말들이 마음에 쌓여가고 난 말했다.


”있어요.“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알았다며 전화를 끊으셨다. 하여튼 오지랖은 많은 선생이다. 핸드폰을 침대 너머로 던지고 다시 침대에 눕는다. 커튼으로 가려진 빛은 아래로 새어나와 내 눈초리에 비춰진다. 눈을 감는다.


지하 인간들을 원망 할 수는 없다. 내가 그들을 원망한다고 바로 부엌에 있는 식칼을 들어 그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도륙 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내 부모님도 있을 것이다. 이젠 부모가 아니지만.


누구를 탓해야 하나, 죽이지도 못 할 존재를 탓하려니 그 후폭풍을 어림잡을 수 없어 두려웠고, 그렇다고 제 시간에 들어오지 못한 엄마를, 멋대로 나간 아빠를 탓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만만하게 탓할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었다.


내가 강하게 엄마를 재촉하지 않아서 엄마가 사라졌어. 내가 아빠를 제시간에 막지 못해서 아빠가 사라졌어.


그러니 나오지도 않던 눈물이 내 뺨에 흐르기 시작한다. 입술을 깨문 채로 신음하여 운다. 난 나를 탓하기엔 나 자신은 너무 여리고 나약했다. 그걸 알고 나니 이젠 탓할 사람도 없어서 더 슬플 뿐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방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난 어두움에 순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인기척은 나지 않았다. 난 가까스로 몸을 움직여 방 안의 불을 켠다. 지하 인간 따위는 없다! 방 밖으로 나갈까? 배가 고프다. 하지만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도록 빠르게 움직이며 불을 켤 스위치를 찾으려 했다. 그리고 불을 켰을 때 난 작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알게 되자 말이다.


괜한 공포를 심었다. 그들은 우리 집에 오지 못한다. 그들은 내가 사는 곳도 모르니까. 하지만, 하지만 생각한다. 내가 사는 곳을 아는 존재가 있을지.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내 집에 사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다. 그러니 이제 나라는 사람을 계속 기억해 줄 사람은…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겁먹고 집에서도 그들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그들은 이미 살고 있었다. 밖이 아니라, 안에서 살고 있었다. 어쩌면 내 내면 깊은 그 침울한 마음 한편에서 그들은 내 살점을 뜯고 있을지 모른다. 살점을 뜯으며, 난 서서히 이 안에서 그들처럼 썩어갈지 모른다.


사람은 정신이 썩어갈 때 비로소 몸마저 썩어진다. 난 그걸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생각해 보면, 집마저 나에겐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아빠가 그랬듯이, 이 집마저 날 갉아먹는 하나의 요소가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난 이곳을 나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서서히 서로가 떨어질 수 없는 애증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아 왔을 때, 어디에도 나가기가 싫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잠들려 들 때 - 그럼에도 이불 속은 어둡지 않았고, 난 뭐 때문에 그런지 이불을 걷고 밖을 보았다. 밖은 태양이 환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이 일렁이며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오늘따라 유독 태양의 빛은 강했다. 창문을 열어 본다. 차가운 바람은 부는데 춥지 않았다. 산책을 나가기 좋은 날씨다. 세상이 나를 유혹하고 있는 걸까.


사람은 한 평생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가지, 어둠에서 남아 썩은 장님처럼 살 순 없어.


이윽고 내가 내 소리를 들었을 때, 그리고 밖에 참새들이 날아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난 마침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어 바람을 맞이했다. 생명! 생명을 이루는 바람아! 나에게로 오라! 넌 형체가 없는 참된 아름다움이구나!




오랜만에 나간 산책로에는 늘 그랬듯이 비둘기들이 때를 이루었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없는 잔디 밭에서 뭘 주워 먹는지 싶었다. 작은 벌레를 먹는지, 아님 그대로 자란 잔디들을 먹는지 싶었다. 하지만 유독 한 곳에 무척이나 많은 비둘기 때들이 뭉쳐있는 것을 보았다.


신기해 그들을 향해 가까이 가자, 순간 불쾌하듯 뭔가 독한 냄새가 코를 찔렸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가까이 왔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뭉쳐서 뭔가를 먹고 있었다. 이내 내가 심각해진 마음으로 크게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자 그제서야 비둘기들은 날아가며 날 피했다.


깃털 뭉치로 이루어진 작은 뭔가가 있었다. 가까이 볼 수록 불쾌한 냄새는 심해진다. 가볍게 바람을 불어 보니, 깃털들이 사라지고 비둘기 시체 하나가 있었다. 한 입 베어 문 듯한, 피를 흘리다가 이내 말고 다 굳어버린 시체 하나가 있었다. 비둘기들은 비둘기를 먹고 있었다.


난 너무 역겨운 나머지 뒤로 물러서다 넘어질 뻔했다. 이 비둘기는 대체 누가 죽였을까. 지하 인간이 잡으려다 놓친 시체일까? 눈도 감지 않은 채 허공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동족들에게 의도치 않게 살을 준 비둘기다. 약간의 충격이 감싸는 가운데, 그 죽은 비둘기의 공허한 눈이 보는 방향을 따라가니, 비둘기가 있었다.


그것들은 도망치지 않고 내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가면 비둘기 들은 다시 비둘기를 먹을 것이다. 그들은 동족을 먹는다는 반감도 없는 생물인가? 마음 같으면 이 비둘기들을 완전히 쫓아내고 싶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나를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시체를 당연하다는 듯이 먹을 것이다.


눈도 움직이지 않는다. 부리를 쪼아대 살점을 가볍게 삼킨다. 그들은 살기 위해 마음마저 먹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이제 더 이상은 바람을 경멸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게 되었다. 마음을 모르는 이들과 같이 사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3.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았다. 정부가 오늘 저녁에 괴물들을 사살하겠다고 발표했다. 난 핸드폰을 보았다. 커뮤니티에도 이 뉴스로 인해 뜨거웠다. 핸드폰 안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대부분은 죽이는 데 찬성하였지만, 그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은 반대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맹렬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는데, 나 역시 죽이는 데 찬성하는 이들과 같이 그들을 비난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난 그러지 못했다.


괴물로 변한 것을 치료할 치료제를 개발 해줄 순 없냐고, 죽이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라며 여러 해결 방한을 말했지만 돌아온 건 찬성파의 비난 뿐이었다.


내 가족이 괴물에게 당하고, 괴물이 되었다. 다 같은 형태의 괴물들이고, 정부가 비슷한 모든 것들을 죽인다 하면, 그중에는 변한 내 가족이 있을 것이다. 난 생각한다. 변한 건 더 이상 내 가족이 아니라고, 그저 괴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쉬운 게 아니었다. 내 가족은 괴물이 되길 원치 않았다. 그리고 괴물이 된 것도 다 취약한 상황에 된 것이다. 차마 내 가족이 괴물이 되어도 그 괴물들을 죽이자고 말할 순 없었다. 내 가족만이라도 알아서 그들만을 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바라는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 아마 지금쯤 내 엄마 아빠도 다른 괴물들과 만나서 먹이가 되었거나 아니면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살면서 그들을 먹고, 또 번식하며, 또 그들을 먹고…


그런 생각을 하니 도저히 맨정신으론 버틸 수 없었다. 전부 괴물로 생각하면 다 좋으련만, 난 괴물을 아직까지 가족으로 생각하는 머저리에 불과했다. 난 차마 괴물을 괴물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 망할 지하 인간들이 나를 병에 걸리게 한 것이었다!


희생당한 가족들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런 고뇌에 빠지며 오늘 발표된 사살 명령을 듣고 더한 괴로움을 느끼며 어쩔 줄 몰라 할까. 하지만 시간은 지나가고 있고, 괴물을 죽일 날짜는 서서히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난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산책을 나갔다. 내 집 가까이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원이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 공원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공원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의 언성은 높아져 갔다. 서로 싸우는 듯 했다. 난 많은 인파를 뚫고 속을 보았는데, 한 남자가 전단지를 들고 한 아저씨와 싸우고 있었다.


“너 그 말 감당할 수 있어?”


“당연하죠. 당신이야말로 당신이 한 말 감당할 수 있습니까?”


“내 말은 틀린 거 없어! 난 분명히 봤단 말이야!”


“거짓말. 증거도 없으면서.”


“그럼 너야말로 증거도 없잖아!”


전단지를 든 사람은 연구원 차림의 하얀 복장을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의 언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결국 아저씨가 그 남자를 한 대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람들은 그 아저씨를 끌어서 진정시키고, 쓰러진 남자 또한 일으키며 괜찮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투덜거리며 인파를 빠져나왔고, 곧이어 사람들도 이런 분위기를 뒤로하고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연구복 차림의 남자가 궁금했다. 그에게 다가가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말했다.


”넌 괴물을 괴물로 생각하니?“


순간 난 말을 잇지 못했다. 난 병에 걸렸다. 그 병을 안고 그 말을 답하기엔 난 너무 위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난 병이 깊숙이 기어오르는 것을 참고 말했다.


”네.“


”그럼 이야기가 수월하겠네.“


남자는 근처 벤치에 앉아서 맞은 볼을 한 번 쓰다듬었다. 아직 고통이 남아있는지 남자는 작은 신음을 냈다. 난 조심스레 남자 곁에 앉았다. 그리고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아까 날 때린 아저씨를 봤니?“


”네.“


”그 아저씨, 괴물이 감정이 있다고 믿어.“


”감정이요?“


”그래, 감정. 참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남자는 고개를 숙이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 아저씨가 말하길, 지 아이가 괴물로 변했을 때 자기를 보곤 눈물을 흘렸다는데, 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말이 안 되나요.”


“당연하지! 너 티비 보냐? 괴물들이 어떤 행동들을 했는지 알기나 해? 그들은 사람을 먹지 않았어. 사람이 지들과 같은 동족이 되어도 아무렇지 않게 씹으며 먹는 거 보면, 그들은 감정도 없고 그냥 살려는 기계랑 똑같아.”


난 알고 있다. 그들이 그들과 같은 동족을 먹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눈이 없다. 눈이 없기에 자신의 동족인지 아닌지 알 기미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먹는 대상이 여전히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다.


“근데… 그들은 눈이 없잖아요. 그러니 같은 동족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을 텐데…“


”바보야. 귀는 장식이냐? 그것들은 너무 예민해서 털끝 하나만 건드려도 바로 소리를 질러대. 내가 봤어. 그런데, 그런 예민한 녀석들이 자기 살 씹어먹는데 소리를 안 지르겠냐고.”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럼 그들은 소리를 이용해서 동족을 구분하는 건가. 그럼 죽을 때 아무 비명소리도 나지 않은 그때의 아파트에는, 아빠는 왜 비명을 지르지 않으셨을까. 그럼 아빠는 이미 죽은 걸까.


표정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남자도 이런 나를 보곤 뭔가를 알았는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주위에 누군가가 괴물로 변했구나?”


“… 네.”


“받아 들어라. 짜피 괴물로 변했으면 인간으로선 죽은거나 다름 없어. 아, 맞다 그리고…”


남자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전단지 뭉치에 전단지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레에 정부가 괴물들을 죽인다고 말했잖아. 그거 반대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준비한 게 있거든. 내일 이 건물에서 지하 인간을 데리고 와서 실험하는 것을 구경하게 할 거야. 그때 너도 한 번 와봐. 와서 그 괴물의 실체를 더 자세히 알아보라고.“


난 전단지를 받고 작게 감사하다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났다. 산책을 좀 더 할까 생각했지만, 내키지 않아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집은 허전했고 조용했다. 이제 서서히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난 여전히 이 조용함을 어색해하였다.


내게 이제 가족은 없다. 나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왜인지 가족은 날 떠나지 않았다. 아빠가 그때 비명도 못 지르고 죽었다고 하면, 엄마는 그래도 어디선가 살아계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 역시 괴물로 살아 계실 게 뻔했다.


그들은 괴물을 가져다 실험을 한다고 한다. 그럼 그중에는 내 엄마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엄마로 실험을 하고 있다! 아니다 그들은 괴물로 실험을 하는 것 뿐이다.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 뿐이다.


처음 괴물로 실험을 한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금세 사그라졌는데, 내가 왜 이런 말에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괴물로 변한들 내 엄마가 될 수 없었다. 포근한 미소를 지으시는, 늘 성실하게 밥을 차려주시고, 나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시는 내 엄마가 될 수 없다.


난 침대에서 머리를 쥐어 잡아 소리를 지르며 크게 통곡했다. 얼마나 크게 울었는지 목도 나가서 소릴 지르지도 못했다. 엄마를 보고 싶었다. 내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해주신 엄마를, 아빠를 보고 싶었다. 내게 처음으로 자신감을 심어주신 아빠를.


그러나 내가 괴물로 변한 부모님을 직면해도 난 그것이 부모님 인줄 모르고 겁을 먹어 도망칠 것이다. 차마 그것이 내 부모님인지 알아도 말이다. 괴물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러니 나도 괴물을 기억해선 안된다. 사람도 괴물을 기억해선 안된다.



이윽고 날이 밝아왔다. 산 위로 뜬 태양이 오늘은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항상 늘 달갑지 않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태양이야 뜨라지, 시간이야 흘러가라지. 이젠 평소의 나처럼 별 신경 쓸게 아니였다.


침대 옆 서랍 위에 있는 전단지를 보았다. 실험을 구경 할 수 있는 체험은 오늘 진행 될 것이다. 난 핸드폰을 보며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판단해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어 실험을 진행할 건물 까지 걸어갔다.


실험을 하는 곳은 건물의 맨 위층이었다. 난 마음을 바로 잡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떨려 최대한 늦게 연구실에 들어가려 했다. 계단을 마지막까지 최대한 늦게 올라가는데도 내 몸이 움직였기에 벌써 내 앞은 연구실 입구가 놓여 있었다. 침을 한 번 삼키고 그 문을 향해 움직였다. 문은 자동문이었다.


싸한 바람이 불어와 문이 열리고 들어갔다. 들어오자마자 고약한 악취가 내 코에 먼저 들어갔다. 사람이 맡으면 거의 기절하고도 남을 악취였다. 내가 표정을 찡그리며 사방을 보자, 연구원 처럼 보이는 사람이 서둘러 나에게 다가왔다.


연구원은 자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와 똑같은 것을 주며 이것을 쓰라고 말했다. 난 주저없이 마스크를 썼다. 이제야 숨이 좀 트였다. 난 정신도 차릴 겸 근처 연구실을 고개를 돌려 보았다. 


연구실은 조금 좁았는데, 옆에는 무슨 기계로 가득 찬 방과, 구경 온 사람들이 앉을 의자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전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큰 유리판이 있었다. 유리판 안에는 수술대 같은 것이 있었다. 생각했다 ’저걸로 지하 인간을 데리고 와서 실험하나‘


난 걸어가 앉아있는 그들 사이에 앉기 시작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서로를 어색해하며 핸드폰을 보거나, 허공을 보기 일수였다. 조금 돌아보니 어제 연구원이랑 싸운 아저씨도 보이는듯했다. 아저씨는 팔짱을 끼며 수술대를 바라보고 계셨다. 난 아저씨께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 누구야?”


“어제 뵌 적이 있어서요.”


“어제? 어디서?”


“어제 XX 공원에서…. 연구원….“


아저씨의 얼굴이 공원 이야기를 듣자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난 겁을 먹어 말을 잘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이내 한숨을 쉬곤 다시 수술대를 보셨다. 그리고 말했다.


“개새끼들…….”


“왜 그러세요?”


“왜긴. 답답하니까.”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제 만난 연구원의 말을 다시 떠올리면, 이 아저씨의 딸은 괴물이 된 상태이다. 난 더 이상 아저씨를 대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우리는 모를 거대하고 흐린 걱정을 말 없이 품고 있었다. 나도 아저씨와 같이 걱정이 있었지만 아저씨에 비하면 난 한주먹거리 정도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어쩌면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니 싸했던 분위기는 갑작스레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슬프거나 암울한 게 아니라, 지나치게 뜨거운 분위기도 아니라, 연민의 순간이었다. 아픔을 말없이 느끼며 나누는 순간들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울지도, 웃지도 않고 있었다.


이내 어디선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구가 시작되오니 오늘 구경을 오신 분들은 반드시 야간 투시경을 착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곧 모든 불을 끄겠습니다. 청취자분들은 연구원들이 주신 야간 투시경을 반드시 착용하시길 바랍니다."



이내 연구원들이 와서 우리에게 야간 투시경을 주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규칙들을 설명하며 우리에게 규칙을 어길시 연구 방해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렇게 침착한 어조로 경고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뭔가 모를 싸함이 은은하게 퍼졌다.


사람들 모두 야간 투시경을 쓰고 수술대를 비추는 창문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잠시 쓰는 것을 멈칫하다, 이내 투시경을 썼다. 투시경을 쓴 시야는 무척 밝아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내 불이 꺼지자, 밝은 시야가 어두운 곳들을 보이게 만들었다.


난 수술대를 말없이 보았다. 수술대는 형광색의 형태만 보였다. 파란색의, 이제 곧 지하 인간이 이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지하 인간을 이때까지 티비로 보았어도, 실물로 본다는 사실에 불편함이 계속 내 마음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금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옆의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여러 색이 있었는데 다 밝았고, 유독 안이 노란색으로 밝게 빛났다.


강하게 뛰는 심장을 느끼는 찰나에 지하 인간이 무언가에 묶인 듯 끌려왔다. 지하 인간의 색은 사람과 같이 여러 색이 겹쳐있었다. 안은 똑같이 노랬다. 연구원들은 무거워 보이는 연구복으로 무장하고 그 묶인 지하 인간을 들어 올려 수술대에 놓았다. 지하 인간은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죽은 것 같이 그것은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묶인 줄을 푸는데도 지하 인간은 반항 하나 하지 않았다. 지하 인간이 이미 체념했는지, 아님 연구원들이 미리 지하 인간을 반죽음으로 만들어 놓았는지 알길은 없었지만, 확실히 멀쩡한 모습으론 보이지 않았다.


연구원들이 지하 인간을 다 묶었는지 지하인간에게서 떨어졌다. 지하 인간은 팔 다리가 묶인 채 십자가의 모양을 취하고 있었다. 파란 수술대에서 지하인간의 몸에 뭔가가 퍼지듯 색깔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몸 속을 나올 기세로 격하게, 또는 흔들거리며.


한 연구원이 무언가를 들고 지하인간에게 다가갔다. 옆을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의자에 앉고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유리판 앞에 서있었다. 저 사람이 아저씨라기엔 몸이 날씬했다.


작게 휘잉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목이 찢어지듯 강렬하게 외치는, 처절하게 들리는 끔찍한 목소리였다. 누군가가 그 작은 소리에 놀라 비명을 질렀나 싶어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태연하게 서서 수술대를 보고 있었다.


난 아차 싶어 수술대를 보았다. 여러 색의 형태가 몸을 격하게 흔들며 무언가를 가져대려는 것을 저항하고 있었다. 가져대는 것은 푸르른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색과 합쳐지자 노란 무언가가 뿜여져 나오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끔찍한 광경을 본 사람의 비명일까 아님 광경을 당하는 것의 비명일까 감이 오지 않았다. 비명소리는, 비명소리는 , 믿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 사람 같았다. 사람이 낸 비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가만히 서서 수술대를 보고 있었다. 여러 색의 형체들이 여러 색의 형체가 격렬하게 떠는 현장을 보고 있다. 지하 인간의 내면에 있는 노랑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차마 이 광경을 볼 수 없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윽고 비명소리가 멈췄다. 눈을 다시 살포시 떴다. 수술대의 지하 인간은 색이 점점 어둡게 변하고 있었고, 그의 옆 바닥에는 노란 부위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한 연구원이 밝은색을 가져가고 있었다. 출렁이는 무언가를.




오래 떠나가기 전에 

예전에 썼던 소설 하나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