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시작된지도 4일이 지났다. 소련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시작으로, 중국과 북괴가 침략의 기운을 풍겨댔고, 결국 지난 28일, 북괴군의 전면적 공격으로 한반도는 다시금 불길에 휩싸였다. 이미 유럽이 불길에 휩싸인지 2주 만이었다. 뉘른베르크에서 나토군과 조약군 간에 대규모 전투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린지 하루 만에, 북괴군은 휴전선을 넘은 것이었다.


"여기가 뚫리면 우리 대대는 끝장이다!"

소대 선임하사의 외침은 인근에서 들려오는 포격소리에 간단히 묻혀버렸다. 서울 북쪽 17km, 이곳이 우리 대대가 방어선을 친 곳이었다. 휴전선을 넘은 북괴군은 엄청난 물량을 앞세워 순식간에 철책사단들을 뚫었고, 이렇게 4일 만에 서울 문턱까지 도달했다.

"여기는 백조 3-1! 당소 탄약은 바닥나기 직전이다!", "여기는 기러기! 우리는 더 이상 현 위치를 방어할 수 없다! 서울 내부로 후퇴하겠다! 이상!"

 이렇듯, 아군의 상황은 암담했다. 미2사단은 포천 일대에서 각개격파 당했고, 수방사는 서울의 피난민을 통제하다가 사령부 전체가 패닉에 빠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한 줌의 증원군이 올 떄까지 버티기엔 국군의 상황도 아슬아슬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던 일이었다. 소련에서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에도, 중국이 대만과 홍콩을 침략할 때에도, 수많은 물자가 압록강을 건널 때에도. 우리에게는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날린건 우리였다. 미국은 유럽에 정신이 팔린 상황에, 우리를 지킬 수 있는건 우리 군 밖에는 없었다.


"타다당!"

내 뒤에 있던 벽에 총알이 박힌다. 다시금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 시작하고, 시야는 흐려진다.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다.

내 K2를 집어들고, 나는 벽 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억!" 내 옆에서 나를 엄호해주던 선임이 쓰러졌다.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가슴과 입에선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나왔다.

 "뭐해! 빨리 이리로 와! 거기서 얼타다간 뒤진다고 씨발!"

분대장의 외침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풀썩. 벽 뒤 엄폐물에 겨우 도착해 쓰러지듯 엎드렸다. 총알이 쌩쌩거리며 우리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씨바, 빨리 탄약 챙겨서 1층으로 가!" 분대장의 명령에 나는 탄통을 들고 1층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총알이 비오듯 쏟아졌고, 이따금씩 건물의 파편도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철모가 아니었다면, 내 머리는 진작에 두 쪽이 났으리라.

 1층에 도착하자 상황은 너무도 암담했다. 시신들이 로비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이따금씩 갈색 군복을 입은 시체들도 보였다. 갈색이고 국방색이고, 모조리 피투성이가 된 채로 자신의 피웅덩이 위를 굴러다닐 뿐이었다.

 "소대장님! 탄약 가져왔습니다!" 탄통을 내려놓으며 소대장의 얼굴을 보았다. 나보다 기껏해야 두 살밖에 많았을 뿐인 소대장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음을 뒤집어 쓴 채로 공포에 질려있었다. "알았다." 소대장의 쥐어짜낸 듯한 대답이었다. 옆에선 통신병이 무전기에 무어라 악을 쓰고 있었다. 목은 진작에 쉬어 쇳소리가 나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는 당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나같은 쫄병이 들어도 별 도움 안되는 이야기겠지만.

 건물 사이로, 도로를 가로지르며, 정신없이 화력을 주고받았다. 5분쯤 지났던 것 같다. 총성이 잠깐 멎은 사이, 주위를 둘러보니 시체는 더 늘어나 있었다. 거의 다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표정도 다양했다.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 시체부터, 이마에 구멍이 뚫린 채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인 시체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체도 있었다. 기겁을 하거나 토를 할 시간도 없었다. 밖에선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으니까.

 '끼리릭끼리릭.' 궤도가 굴러가는 소리가 건물 앞 도로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두 대가 아닌 것 같았다. "적의 기계화 병력 접근 중입니다! 전차 두 대에 장갑차 넉 대, 보병 다수가 따라붙고 있답니다!" 통신병의 외침에, 남아있던 소대원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66미리던, 90미리던, 땡크 잡을 수 있는건 다 들고와!" 선임하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옆 분대 상병 하나가 어딘가로 가더니, 원통 여러 개를 들고 왔다. 가만 보니 66미리 로우(M72 LAW)였다. 저걸로 전차를 잡을 수 있을까. 곧 로우들이 분배되기 시작했고, 나도 하나를 받았다. "로우 사용 방법은 저번에 훈련받아서 알고 있겠지. 모르면 고참한테 물어봐라. 받은 인원은 당장 건물 옥상으로 이동한다." 소대장이 말했다. 나를 비롯한 세 명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계단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부서져 있어 올라가는데 꽤 애를 먹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멀리서 다가오는 전차와 장갑차, 보병들이 보였다. 언뜻 봐도 40명은 되어보였다. 그리고 도로 여기저기에 차들이 방치되어 있어서, 잘못 쐈다간 엄한 차들만 날려버릴 판이었다. 차들 주변엔 민간인 시체도 몇 구 보였다. 전차의 엔진과 궤도 소리가 점점 커져왔고, 우리는 로우를 장전하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열 맨 앞과 맨 뒤를 노려라."같이 올라온 하사가 말했다. 대열 맨 앞엔 전차 두 대가 오고 있었다. 거리에 차들을 밟아버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 했다. 그 뒤에는 장갑차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주변엔 보병들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로우를 맨 뒤에 있는 장갑차에 조준했다. "총원 사격준비."하사가 낮게 속삭였다. 방아쇠를 누르려던 그 순간, 엄청난 폭음, 먼지와 함께 전차와 장갑차들이 불덩이가 되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계속 적은 공격당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군 특전사 대원들이 적의 무전기를 노획해서 북괴의 포격을 유도한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그 난리통 속에서, 무전기를 빼앗고, 화력유도까지 멀쩡히 해낸걸까.

 하여튼 포성이 멈추고, 적의 상황을 살폈다. 아주 엉망이 따로 없었다. 전차는 불길에 휩싸인 채로 불타고 있었고, 장갑차는 터지다 못해 건물에 날아가 처박혔다. 주변의 보병들은 아예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보기에는 검은 연기가 거리를 통채로 가려 대열 뒤에는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서 소대장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별 말 없이 경계조를 올려보냈다. 잠깐의 휴식동안, 소대원들은 조용히 전투식량을 먹거나 담배를 피웠다. 어떤 이들은 쪽잠을 자기도 했다. 이제 남아있는 소대원은 15명이 전부였다. 40명 정도의 우리 소대는, 불과 4일 만에 3분의 1정도로 줄어들었다. 다음으로 죽는 사람은 누가 될까.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만일 내가 죽더라도, 죽은 줄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 소설의 설정은 1987년, 소련에서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3차대전이 발발하고, 한국도 이에 휘말린다는 설정입니다.

주인공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보자면, 4년제 국립대를 다니다 입대했고, 18사단 104연대 9중대 소속 상병 소총수라는 설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