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벚꽃과 매화의 시대는 지나가고, 눈이 되어서 봄의 땅을 적시는구나. 나의 꽃은 아직도 겨울에 살고 있는데 이미 세계는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는 터. 저 꽃망울들은 벚꽃과 매화나무에서 내려와 호수로, 태양으로, 초원으로 여정을 떠나는데. 난 아직도 꽃망울 속 겨울을 깨지 못했구나. 


태양은 밝게 빛나고, 땅은 가장 따뜻한데, 내 꽃망울과 세계의 경계는 너무나 단단하여 바깥이 어떠한지 바라볼 수가 없다. 내 꽃망울은 너무나 볼품없는 꽃망울이라 밖에서 조금이라도 뚫어줄 존재도 없다. 내 꽃망울은 애초에 꽃망울이 아닌 존재에 강렬한 색을 덧입힌 썩은 씨앗이 아닐까. 저 아이들은 이미 벚꽃과 매화의 시대를 벗어나 무궁화의 시대, 해바라기의 시대, 수련의 시대로 나아가는데. 나도 매화에서 목련으로, 목련에서 벚꽃으로, 벚꽃에서 무궁화로, 무궁화에서 장미로, 장미에서 국화로, 국화에서 수선화로 윤회하고 싶은데. 인간의 영광의 시절을 꽃망울이 아니라 원색적인 하나의 화초로 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난 여름에서도 겨울로 살아가야 할까. 뒤늦게라도 개나리가 되거나, 수련이 되거나, 국화가 되는 일은 없는 걸까. 순수한 영광을 누릴 수 없는 꽃망울이라면 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난 애초에 이러한 영광을 누릴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님께서 날 연옥에 떨구려다가 실수로 인간계로 떨군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벚꽃과 매화, 목련과 개나리가 되게 만들었겠지. 꽃이 될 수 없는 존재라면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내가 볼 수 있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은 오직 경멸과 공포일 터인데. 경멸의 존재가 되느니 중동의 절름발이처럼 공포의 존재가 되어 만인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겠다. 만인이 날 두려워하고, 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다만 멀리해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차라리 그런 딜레마적 공포의 존재가 되어 저들의 행복을 불행으로 만들고, 그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