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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부터 늘 끓여주셨던 어머니의 된장이. 타일 바닥을, 요를 삼아, 이불을 꼭 덮고 누워있던 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검은색 도자기의 뚝배기 속에서 끓고 있었다. 황톳빛의 국물이. 그 안에는 두부, 표고버섯 그리고 호박 등이 국물 맛을 우려내고 있었다.

여전히 불 위에 있다는 듯, 뚝배기 안에서 끓고 있는 된장국을 어머니는 식탁에 갖다 놓으신다. 고등어, 김치, 멸치볶음 등 소박한 반찬거리들과 함께.

벌써 코를 찌르고 있었다. 된장국의 냄새가. 코로도, 입으로도 들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쓴 내음이.

어릴 적 간호사 누나들이 늘 갖다주었던 먹기만 해도 머리가 돌 것만 같은, 추억의 냄새가 코로 들어간 뒤, 뇌를 자극하고 있었...






....어?




☆☆☆☆☆☆☆☆☆☆☆☆



"...렇게 허브를 넣은 뒤, 토끼의 뿔을 넣어주고."

보글 보글-

"여기에 뿔토끼의 뼈와 간을 더해주면 완성-"

깨어나 보니 키스가 무언가를 끓이고 있었다. 뚝배기보다 몇배 큰, 가마솥으로.

"성운아 깼어?"
"일어나 있었네 키스? 몸은 어때?"
"후후후-펄펄 넘치고도 남지요-"

키스가 허공에 주먹질을 하였다. 훗훗- 하면서. 동시에 어깨에 있던 블레이즈도 허공에 날아올라, 자기 주인 따라 쉐도우 복싱을 하는것이다. 캭캭! 하면서.

"그건 그렇고 신경 쓰였는데..."

가마솥을 바라보니, 된장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는 녹색의 수프가 끓여지고 있었다. 걸쭉한 국물 위에 거품이, 한 방울씩 터지면서. 두부나 호박 같은 건더기들도 보이지 않았다. 뼈와 뿔로 추정되는 뾰족한 것들이 대신 둥둥 떠다녔다. 버섯은 있긴 했다. 큼지막한 주황색 버섯갓이.

"너 뭘 만드는 거야? 아침부터 열심히 만들고 있던데."
"아침밥. 키스 특제 스튜야. 어제 네가 대접했으니 내가 대접할 차례-"
"…."
"농담이지만요-"

한쪽 눈을 감은 뒤, 혀를 쏙 내미는 키스였다. 순간 놀라버렸다. 설마 저 녀석, 요리치인가? 그게 아니면 저게 맛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각 기준이 잘못된 건가, 라는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행히 둘 다 아닌 거 같지만.

"아무래도 장기간 동안 던전에 있어야 할거 같아서, 영양 포션을 만들어보았어."

주걱으로 한 모금 마셔보는 키스였다. 입맛을 다시면서 혀로 느껴오는 맛이 만족스럽다는 듯, 음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 빛이 들어오지 않는 던전에서 생활하려면, 꾸준한 영양 공급이 필수. 하루에 한 잔만 마셔도 몸이 튼튼해질 거라고."
"이거 꼭 마셔야 해? 아무리 봐도 독으로 보이는데."
"어허! 이 무슨 예의가 없는 소리! 겉은 이래 봬도 영양가 덩어리 포션이라고?"

스스로가 괴상한 비주얼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보구먼. 겉은 이래 봬도 라고 하는 거 보면.

"그러니까 마셔 성운아."

키스는 나무로 된 그릇에, 저 슬라임 같은스튜를 담아냈다. 간으로 추정되는 고깃덩어리가 위로 올라왔다. 쿨렁-하는 효과음과 함께.

"앞으로 아침마다 끓여줄 테니까. 어제 이 천재 미소녀 연금술사 키스에게 밥해준 보답이야."
"이거 마시면 무슨 일이 생기는거 아니야? 어제처럼 두통 나거나…."
"내 포션 이미 몇 번 먹어 봤으면서 왜 쫄아. 자 아 해봐-아-"

어머니.
저 지금 핑크 머리카락 천재(라고 쓰고 괴짜라 읽으세요) 미소녀 연금술사 소녀가 만든, 녹색 된장국을 먹게 되었어요.


어머니의 된장국이 그리워졌어요. 늘 아침마다 해주시던 된장국의 냄새와 맛이 그리워졌어요.


☆☆☆☆☆☆☆☆☆☆☆☆


바닥에 놓인 이불과 식기들을 정리하는 와중, 키스는 가마솥에 담긴 초록색 된장국(본인은 약이라고 하지만)을 병 속에 따르고 있었다. 한 병씩 정성스럽게. 다행히 몬스터들의 습격 없이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키스가 쳐 놓은 몬스터 방지용 마법 진 덕분인지, 발자국 등의  왔다 간 흔적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니 키스, 너 언제쯤 깨어난 거야? 보니까 나보다 일찍 일어난거 같은데."
"한참 전에. 너는 피로해 보이길래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
"너도 좀 더 자지 그랬어. 어제 엄청 피로해 보였었는데."
"그래도 포션 제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키스는 망토 속에서 포션 병들을 꺼내었다.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등 색깔별로 하나씩.

"네가 깨어나기 전에 체력, 마력, 해독 포션 등을 만들었어. 마침 우리에게 신선한 포션 재료가 있어서 만드는 데는 문제가 없었어."

엄지로 뒤를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주황색의 버섯 갓들이 쌓여 있었다. 마치 물기가 빠져나간 열매처럼, 쭈그러진 것이. 그 옆에는 머리 부분이 댕겅 잘린 버섯 몬스터들이 쌓여 있었다.

쟤는 내가 자는 사이 뭐한 거야? 이 무슨 매드 사이언티스트 현장도 아니고. 그 와중에 키스는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허공에 액체를 띄웠다. 주황색의 액체를.

"버섯 갓에는 포션 제조로 쓸만한 즙으로 가득 차 있어서, 이렇게 다양한 포션들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 이걸로 당분간 포션 걱정은 끝-"
"부지런하네, 키스."

양손으로 파란색 포션과 초록색 포션을 들어 보았다. 왠지 모르게 미약하게 빛을 내는 거 같기도 하고.

"어제부터 본 건데, 너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뭔가를 할 때 늘 적극적이고, 한번 시작한 일을 어떻게든 끝내려는 면이 있다랄까?"
"부지런하다…. 라기보다 책임감 때문이야."

플라스크 병에, 키스는 허공에 띄우던 버섯즙을 담았다. 마치 액체의 품질을 확인하려는 듯, 찰랑-하는 미약한 물소리가 날 정도로 흔들어 보기도 하였다.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만큼 무책임한 행동이 없다고 믿고 있어. 그게 나하고 무슨 관계인데? 라면서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이지."

고개를 조금 내린 키스였다.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분홍색 머리카락으로 눈이 가려져서인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저렇게 보이니 마치 표정을 가리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잘못 말한 거라도 있어? 라고, 물어볼 때 즘.

"자-우울한 얘기 그만하고."

짝-하는 박수를 치면서, 평소 키스 특유의 활기찬 미소를 보여주었다. 

"슬슬 떠날 채비를 하자고. 우울해질 시간에 던전을 돌아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지."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물어보지를 못했네. 뭐 때문에 그러는 건지. 평소의 활기찬 키스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긴 하지만.

"아-깜빡 할 뻔했네."
"잊은 거라도 있어 키스?"
"칭찬해주기. 일어나자 마자 너에게 칭찬해주고 싶은게 있었거든."

내가 최근 키스에게 칭찬받을 짓을 했나? 어제 버섯 몬스터 잡은 거는, 이미 칭찬받았는데. 고맙다면서. 하지만 양 볼에 홍조를 띤 채 말하는 키스의 말에, 나 역시 양 볼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한동안 끌 수 없을 정도로.

"네 어깨 매우 편했어."

윙크를 하면서, 혀를 쏙 내미는 핑크 머리 미소녀 연금술사였다.


☆☆☆☆☆☆☆☆☆☆☆☆


어제와 비슷한 패턴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걸어가는 소리 그리고 블레이즈가 날갯짓하는 소리. 저벅 저벅 과 파닥 파닥이 리듬을 맞추었다. 누군가가 연주하라고 하면 음악이 완성되려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 정말 괜찮은 거 맞지 키스? 어제처럼 피로해지지 않고."
"후후후-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귀여운 성운 학생."

펄럭-하는 붉은색 망토 휘두르는 소리와 함께, 뒤돌아보면서 혀를 쏙 내밀었다. 윙크와 함께.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눈앞에 멋진 남자가 나를 지켜줄 거잖아. 걱정할 게 뭐 있어."
"그래그래. 100번이든 1000번이든 지켜줄 테니까. 무리나 하지 말아줘."

확실히 졸린 기색 없이, 활기찬 모습을 보이는 키스였다. 묘하기도 했다. 한시내와는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반대로, 키스는 만난 지 겨우 하루밖에 지났음에도, 서로간의 벽이 없는 느낌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라는 듯.

뭐 키스가 워낙에 붙임성 좋은 소녀라는 것도 있지만.

"이 던전은 대체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말하는 중간, 벽 곳곳에 새겨진 사자 머리 장식을 바라보았다.

"사자를 매우 좋아했나 봐? 이렇게 장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상당히 높은 권력을 지닌 사람이 만든 게 아닌가 싶어. 아니면 지시했거나."

어깨 앞으로 내려온 자신의 핑크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뒤, 키스는 핑거리스 장갑을 낀 손으로 사자 장식을 이루어 만졌다.

"옛날부터 사자는 절대 권력이란 것을 상징했어. 동물들이 백수의 왕 앞에서는 무릎을 꿇듯 말이야. 이렇게 대놓고 사자 머리 조각들이 벽에 새겨져 있다면, 원래 여기는 귀족들이 오고 간 장소였을 거야."
"여기도 마찬가지인 건가. 사자가 강자의 상징이란 것을."
"한국에도 사자가 있어?"
"있어. 네가 말한 대로  강인한 권력과 힘을 상징하고. 뭐 한국이었을 경우는 사자보다는 호랑이하고 가장 친숙하지만."
"호랑이…. 호랑이....."

검지로 볼을 톡톡 두들기면서 골똘히 생각한 키스였다. 흐음-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처음 들어보네. 사자처럼 생겼어 혹시?"
"전혀. 수사자처럼 기다란 갈퀴가 없어. 사자와 달리 초원이 아닌 산속에서 주로 살고 있고."
"뭐야. 갈퀴가 사자의 강인함의 상징인데. 멋 없을 거 같아."
"그 대신 멋진 줄무늬가 있지."

줄무늬라는 단어에 키스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아보았다. 표정은 크게 변한 거 없지만, 앰버색 눈동자를 자세히 보니, 잘 닦은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이 보였었다.

"주황색과 노란색이 섞인 듯한 털색과 하얀색 털로 감싸진 배와 턱 부분. 그리고 전신을 감싼 검은색 줄무늬는 호랑이의 강인함을 더욱더 드러나게 해주지. 평소에는 느릿하게 걸어가다가, 사냥감을 발견하면 강인한 육체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로 사냥감 사냥감의 목숨을 한 번에 끊어버리는, 산속 최강의 사냥꾼이라서 산군 즉 산의 주인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고."

어느 순간 호랑이 전문가가 되어버렸네. 이런 저런 설화까지 늘려가면서. 내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웠는지, 키스의 눈빛이 더욱더 빛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오-하는 감탄사와 함께.

"그 호랑이라는 동물 참 흥미롭다. 한마리 키워보고 싶을 정도로."
"키워?"

저기 키스, 잘못들은거 같은데 다시 말해봐. 농담한거지? 그치?- 라고 물어보려다, 잘못들은게 아니라는 듯 얘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다.

"사자도 그렇고 큰 고양이 과들은 새끼 때는 얼마나 귀여운데. 누런색 털에, 전신을 감싼 검은색 줄무늬의 새끼 고양이. 손으로 쓰다듬고 싶은 유혹을 가져다주는 하얀 털의 배. 그런 고양이의 발바닥 젤리는 얼마나 말랑거릴까."
"저기 키스, 호랑이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맹수거든? 새끼 때는 귀엽겠지만 성체 되면 엄청 커지는데."
"그러면 더 큰 집에 키우면 되지. 밖에다 놓으면 감기 걸릴 수 있잖아."

퍽이나. 장담한 건데, 쟤 성격상 호랑이를 껴안고 이불속에 잘 게 뻔하다. 성체가 되도 에구 우리 예쁜 고양이-라면서 귀여워해 주고.

"캬악! 캬악!
"아! 미안해 블레이즈!"

위에서 블레이즈가 소리를 외쳤다. 키스의 하얀 팔이 허공에 향하자, 기다렸다는 듯 그대로 앉는 블레이즈였다.

"그래도 누나의 넘버 원은 언제나 블레이즈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블레이즈군?"
"캬악!"

그런 블레이즈가 귀여웠는지 턱을 긁어주자, 1초만에 웃는 표정으로 변하였다. 쟤네둘은 정말 허울없는 사이네. 키스도 블레이즈를 사역마라기 보다, 동생 대하듯 대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우리 둘-정확히는 블레이즈까지 포함해서 세 명은, 던전 탐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처럼 몬스터들의 습격이 없어서, 어제보다는 많은 진행이 가능했다.

굳이 무슨 일이 생겼다 해도, 아주 사소한 것들뿐이었다. 석상이나, 석판 같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면 키스가 안경 쓰고 연구하는 사이 나하고 블레이즈가 망을 보거나, 우리가 왔던 길을 표시하기 위해 단검으로 → 표시를 그어 놓는 거 정도?

"오-"

한참 걷다가 키스가 뛰어갔다. 핑크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가는 그녀를 향해 왜 그래? 라고 외치면서 따라가 보니...

"잭팟. 여기에 풀밭이 있어."

키스처럼 내 입에서 감탄이 나오게 할 장면이 펼쳐졌다. 풀밭이었다. 단순한 잡초뿐만 아니라, 민들레나 토끼풀꽃 같은 작은 꽃들이 자라난 것이 보였었다. 부서질 대로 부서진 타일 바닥 위로.

설마 밖으로 나오기 위해 스스로 벽돌을 부숴서 올라온 건가. 아니면 하도 오랫동안 방치되어서 바닥의 힘이 약해진 건가.

"이런 것들을 볼 거라 상상도 못 했는데."

꿈을 꾸고 있나, 라는 심정으로 한 손으로 꽃을 이루어 만져보았다. 노란색 꽃잎에서 전달 되어오는 부드러움은, 헛것이 아닌 진짜 식물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블레이즈도 풀밭이다-라고 외치듯 캬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잔디 위로 몸을 누웠다. 뒤집으면서 배를 보이기도 하면서.

"어떻게 이런 주변에 돌밖에 없는 곳에서 풀밭이 생겨난 거야? 태양 빛이 하나도 없는 곳에?"

나처럼 풀을 이루어 만지고 있던 키스는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부름에 응답했다는 듯, 주변에 푸른색 빛 덩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 둘씩  다양한 크기의 푸른 빛이.

"이건?"
"마력이야. 마법으로 모습을 숨긴 마력을 드러내게 한 거야."

손으로 허공에 떠다니는 푸른 빛-정확히는 마력에 손을 대보았다. 마치 공기를 만지듯, 내 손은 마력을 뚫고 지나쳤지만, 그 지나친 손에 푸른색 빛이 맴돌고 있었다. 손을 돌리자, 뒤집힌 방향으로 마력이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마력은 단순히 마법을 쓰기 위해서가 아닌, 생명을 불어넣는 역활을 한다고 들었어. 네 말대로 태양빛 하나도 들지 않는곳에, 이렇게 풀밭이 보이면 십중팔구로 마력들이 모여있는 장소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그렇다는 것은 주변에 마력만 있으면 식물이 살 수 있다는 거야? 물도 마실 필요 없이."
"아아- 그건 또 아니야."

Liquida Effusio-라는 말 과 함께, 키스의 한손에 물방울이 만들어졌다. 허공에 떠 있는 습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주먹 만한 크기로 커지면서.

"식물도 결국 생물이라, 물은 마셔야 되. 멀리 볼 것도 없이 농작물도 태양 빛만 아닌 물도 꼬박 마셔야지 쑥쑥-크잖아."
"물 하니까 생각난 건데."

가방을 뒤진 뒤 물통을 꺼내었다. 찰랑-하는 이젠 거의 남은 물이 없다고 말해주고 있는 물통을.

"어제 내가 요리하느냐, 물통에 담긴 물을 거의 써버리고 말았어. 식수 공급처라도 발견하면 좋을 텐데."
"물이라면 내가 구해줄 수 있는데. 이렇게 액체 흡수 마법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습기로 물을 모을 수 있거든."
"그래서 오늘 아침에 그-영양식 만들 때도 이렇게 물을 얻은 거야?"
"맞았습니다, 성운 학생. 여긴 특히 습기가 많아서 물 모으기 매우 좋거든."

어쩐지. 저녀석 혹시 가방속에 물을 담은 대야를 넣었나 했는데. 아니면 장작 처럼 수많은 물통을 넣었거나.

"그러면 좋긴 하지만, 가능하면 마력을 아끼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해 키스."

키스가 손짓으로 물통을 가리켰다. 끼익-하는 뚜껑 빼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떠 있던 물방울은 그대로 속으로 들어갔다.

"어제처럼 언제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을지 모르잖아. 마력은 가능하면 아껴야 하는 것이, 지금 최우선이 아닌가 싶어."
"음…. 그렇긴 하네. 조금이라도 아껴야 하는 상황이긴 해."

키스는 검지로 볼을 두들긴 체 고개를 끄덕였다. 무게가 느껴지는 물통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나 얼굴도 제대로 씻지도 못했네. 그 덕분에 눈꺼풀이 여전히 끼어져 있었고.

은근히 거슬렀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서 수돗물에서 나오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젖힌 뒤, 비누로 눈가 쪽을 닦았는데. 눈꺼풀을 한치라도 더 지우기 위해. 지구에서 당연하다는 것을 여기서 못하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난 정말 편한 환경에서 살아왔구나 라는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뭐 분수대라도 없으려나아. 마력 소모 없이 언제든지 이 깜찍하고 귀여운 미소녀의 외모 관리를 할 수 있게 말이-"
"잠깐."

내 손을 귀 뒷부분에다 대면서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다. 왜 그래? 라는 키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감은 체 정신을 집중시켜 보았다.

"확실해. 물소리야."
"물?"

나를 따라 하듯, 키스 역시 한 손으로 귀를 대면서 위를 바라보았고, 풀밭에서 놀던 블레이즈 역시 작은 손으로 자신의 귀를 대보았다.

"네 말이 맞네? 자세히 들으니 물소리 비슷한 게 들려.
"그치?
"캬악!"

이쪽이야! 라고 말하듯 블레이즈가 앞장서 날아가면서, 나하고 키스는 그대로 쫓아갔다. 우리 두 사람이 쫓아가는 소리와 블레이즈의 날갯짓 외에 들리지 않다가, 목적지에 서서히 가까워졌다는 듯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촬촬촬-하는 물소리가.

블레이즈를 따라 도착한 곳은...

"분수대다."
"이런 곳에 물이 나오고 있었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석상이 세워진 분수대였다. 사자 석상의 입에서 나오는 물은 밑에 받침대를 향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옆에 단발머리는 소녀의 석상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체 요염한 자태로 미소를 지은 채 앉아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비록 석상이었지만 상당히 디테일 하게 제작되었다.

사자의 석상도 그렇고 단발머리의 소녀도 석상이 아니라 진짜 소녀였다면 이라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매끄러운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키스만큼은 아니지만 이목구비를 보면 미소녀 상의 얼굴이었고.






…착각인가?
사자의 입에서 나오는 물이 옆에 앉아 있는 소녀의 석상 얼굴을 젖힐 때, 눈가에 흐르는 물은 마치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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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3 시작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두번째 히로인 등장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편부터 하루에 한번씩이 아닌 한국시간으로 노벨피아에 금요일 6시이후에 올릴 예정입니다. 물론 아카라이브에도 올리고요.

감사합니다. 꾸벅.


p.s 피드백 및 오타 지적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