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이 대략 열흘 전이다.

아무 생각도 않고, 밑그림도 그리지 않고 쓴 글.

대충대충 머리로 생각을 하고 쓴 글.


그 글 속에서 나온 인물은 목을 매어 죽는다.

탁자 위에 놓인 약과 물을 마시고는 거실에 놓인 의자 위에 오른다.

자신이 바라던 바다를 꿈꾸면서, 그 사람은 죽는다.


요즈음 들어 글을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쓰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전에는 남들의 글도 양껏 읽고 제 감상을 남기거나, 떠오르는 문장을 쓰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퍽 귀찮게만 느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책을 챙겨 도서관으로 향한다.

8시 50분 즈음, 도서관에 도착하면 10분 동안 뉴스를 본다.

9시가 되면 도서관 2층 문학실로 가서, 제일 창가에 앉는다.

가져온 책을 꺼내고, 강의를 듣는다.

3상 4선식이니, 와류손이니, 6m니 하는 것들이 책 속에 들었다.

그렇게 2시간을 앉았다가, 점심을 먹는다.

30분, 밖에 나가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온다.

책상에 앉아 다시 책을 본다.

그 속에 문학은 없다.

5시가 되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다른 이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꽤 힘이 쓰이는 일이다.

당신의 속 마음을 글 속에서 찾아 해석 해야 하고,

당신이 공들여 쓴 글을 한쪽으로 다시 흘릴 수는 없으니,

두 번, 세 번, 혹은 그 이상 보아야 한다.

그 행위는 퍽 힘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지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상의 글을 솔직히 좋아하지 않는다.

난해하기 때문이다.

힘이 들기 때문에, 내 진이 빠지기 때문에 나는 그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

화자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그 시를 썼다면,

화자가 그 의도를 꼬아서, 또 어지러이 놓아서 시를 썼다면,

어쨌건 그 시는 해석할 수 있는 시이기에

난해해도 상관이 없다.

누군가 써놓은 해석을 바탕으로 난해를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난해시들은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난해 하면 마치 자신이 이상과 동일 시 될까 생각하는 것일까.

우상, 자신이 언젠가 되고자 하는 우상을 닮아가는 것은 좋다.

그러나 기반을 다지지 않고 건물을 세울 수는 없는 것 처럼

무작정 있어 보이는 난해한 단어들의 나열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 빨간줄이 이따금 끄인다.

오탈자가 나거나 문법적인 오류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치지 않을 것이다.

0과 1로 이루어진, 트랜지스터 덩어리, 플립플롭의 집합체가

나를 조종하려 든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계가 퍽 건방지기에 나는 문법 검사를 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은 시라도 한 편 써보아야지.


그렇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