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마저 죽어버려 공허만이 남은 방
이제는 빛이 무엇인지도 잊은건지

눈을 뜨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았다
준비해왔던 많은 것들은 어둠에 묻힌지 오래라
이제는 들였던 노고들도 잊은 채 머엉하니 누웠다


문은 부서진건지 막혀버린건지 아니면 원래 없었던가? 
과거를 잊고 현재를 보지못하고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망령은 알 도리가 없다

손을 더듬으며 엉기적 거리다 만져진 무언가에
찔려 피가 몸을 타고 흐른다

모든게 생생해져간다
이 고통, 이 피비린내, 이 따스함

닫혀있던 인식은 윤활제를 받아 살며시 떠지는데
이제야 보이는 육신은 지나온 시간속에 퇴색되어 

윤곽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혐오와 분노를 느끼며 손에 집힌 무언가로 몸을 죽일듯이 찌른 뒤 나온 유혈로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하고 명함을 넣는다
이차원의 그림은 이제는 진실이 되어 이 자리에 섰으니
손에 있던 무언가는 
사랑인지 우정인지 꿈인지 희망인지 희생인지
인내인지 고통인지 광기인지 무엇이든지
정해지지 않은 따스함만이 남아 부서졌던 심장을 다시 그려 넣었다

자 가보자 
이제 문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문을 열 수 있는 손이 있고 

문까지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있고 
이 모든걸 지탱하는 심장이 열렬히 뛰고 있으니
문 너머가 황천이든 천상이든 빛깔이 있는 곳으로


문을 열고 나온 그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그냥 또다른 방이었지만

이제는 지나온 방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며 또다른 문을 열러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