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던가, 사람도 등불도 모두 죽고
찌르르 들풀 소리만 메말라가던 때가 있었다.

뒷맛이 매캐해 황급히 비비어 끈 돛대서부터
창을 너머 연기가 피어 내려갔다.

쇳가루로 회칠된 아스팔트 바닥 위로
노송의 굵은 가지 지팡이를 짚고
남루한 행상인이 하나 걸어들어왔네ㅡ

사람도 등불도 더는 없는 곳에
제 멋대로 돗자리를 펴고 물을 뿌렸지.

심긴 씨앗이 있는지도 모를 더미들 사이에
늙은 수통으로 명화를 그려라,
고심하며 지은 데에 썩 마음에 들질 못해
발길질이라도 훽, 하곤...

이만 떨군 담뱃재에 막 피려던 싹도 묻히고
녹색이란 페인트칠 속에만 남은 색이라 하더군.

죽음의 도시라네, 사람도 이젠 없지.
말뚝도 매듭진 끈이 해지고 무뎌졌어ㅡ
도리어 평탄한 이곳이 온전한 평야로다,
고함도 탄성도 더는 없는 곳.

언제던가, 흙더미 위로 돌덩이가 깔리고
그 위로 모두가 걸어 보던 때가 있었다.

그때의 표상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했네,
남아 있을 이유라고는, 더는 없다지마는

기다리는 한 줄기 있을지 몰라
쥐어짜낸 물살에도 반동은 없었다.

누군가께 소중했던 것을 되살릴 일이야 추호도 없었다
초목 한 포기만이라도 색을 칠해주면
펜화로 가득찬 오늘에 있어
당신이 돌아올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하고ㅡ
하지만 들쳐메고 온 팻말은 떨구어졌겠지.

이젠 사람도 등불도 호수도 스러진 도시여라,
그래서 자네에게 편지를 보내건대

부디 이리로 오지 마오, 부디 이리로 오오ㅡ
오고서 후회일랑 하지 마오.
빈집 아무데서나 잠을 청하고
길가에 나뒹구는 쇠가루를 퍼먹으며 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