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노래> - 박경리


히말라야에서 

짐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박경리는 어머니의 짐을 진작 치워드리지는 못할 망정 이제와 노새나 바라보며 슬피울던 박범신을 비판했다.


저 시를 처음 들었던 나이 17 고등학교 1학년의 나다.


난 그이후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그당시 공부 말고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설거지 청소기 돌리기 세탁기는 아직 사용 할 줄 몰랐기에 세탁이 끝난 옷들을 걸어 말리기가 전부였기에 그것들 만이라도 그동안의 불효를 부끄럽게 생각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시작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대견하고 고맙다고 하셨다.아침 6시 50분 일어나 밥을 챙겨먹고 설거지 그 후 등교.그렇게 생활한지 4개월쯤 되었을까 시험기간이 시작 되었고 강제로 학교에 10시 까지 있었다. 주말은 밥도 거르고 부족한 수면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3주정도 청소와 설거지 세탁물 개기 그 무엇도 제대로 되는것이 몇 없었다.시험이 끝나자 우리 가족은 가끔 속상한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다만 그렇다고 뭔가가 변하는 건 없다.감정만을 비워낼 뿐이다.어머니는 가족들을 모두 불러 집안일을 자기만 한다며 나눠 하자고 하소연을 하셨다.


집안일을 나누자는 것은 상관 없었다.당연하다고 생각했었으니.단지 어머니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나에게 상처였다.누나 형 아버지 모두가 어머니를 돕지 않았지만 나만은 당신을 도왔는데.


서운했다.억울했다.내가 들어드린 어머니의 짐은 이젠 내가 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대신 들어주는 것조차 아니란 말인가?난 노새와 소금장수 이야기가 떠올랐다.난 그날 이후로 내가 먹은것만 치우고 내방만을 치우고 내 세탁물 만을 가지고 간다.


아무도 돕지 않는 형제들과 아버지에 어머니가 안타까워 짐을 나누어 짊어지던 나는 어느샌가 노새였다.


지금이 되니 문득 궁금해졌다.박경리씨 당신이 살아 돌아온다면 어머니의 짐을 들지 못한 나또한 토종입니까? 아니면 내 어머니가 토종인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