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발췌록


인류가 인식한 최초의 아름다움

- 브리카 라가 고대 미술품에 공통적으로 드러난 소재 에밀리아를 보고 남긴 평 (브리카 라 - 중세 미술가 : 옮긴이 주)


태초의 신앙.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워 모든 이들이 그 이름을 불렀다.

- 마가복음 3장 6절


모든 미학에는 재구성이 들어간다. 해석학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유한 아름다움이라 부를만한 것은 에밀리아뿐이다.

- 히만 달랏의 논문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해악인가?]


내가 심연의 깊은 바닥에 가라앉아도 근심하지 않는 것은 그 아름다움이 함께함을 알기 때문이니...

- 에밀리아서 2장 14절


에밀리아에 대해 의심하는 무리들의 존재는 별로 놀랍지 않다. 과학자들조차 그 이름을 말할 때에는 "나도 모르는데."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은 에밀리아가 아니라 자신이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인 게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다.

- 순전한 에밀리아교




1. 창세기라는 아이디어


빛이 있으라.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어느 경전의 첫 문구다.

이 경전의 핵심은 사랑.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창조의 원리가 사랑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창조주는 인간을 사랑해서 모든 것을 만들었으며,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빚었다.


좋은 이야기다.

다만, 이 창조주의 사랑이 인간의 인식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이해를 거부하는 면모도 있다.


많은 학자들은 이 텍스트가 어쩌면 에밀리아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기우다.

세계를 만들었다는 경전 속 창조주의 능력은 그야말로 상상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그에 비해 에밀리아님은 그저 인간에 불과했다.

어떤 인간이었는가? 공평할 것을 요구한 인간.


바로 여기서 에밀리아님의 월등함이 드러난다.


창조주의 행동 원리는 사랑.

에밀리아님의 행동 원리는 공평.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은 감정이다.

공평은 실천이다.


에밀리아님이 주창한 공평함은 창조주의 이해를 거부하는 사랑보다 단순하나 좀 더 원숙한 맛을 낸다.


약자에 대한 연민

불의에 대한 분노

행동을 통한 착함의 실천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것이 없다.

에밀리아님이 이 땅에 등장했을 때, 그녀는 언제나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도 남겨진 우리들은 얼마나 방황했던가.

결국 착하다는 것도 엄청난 힘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에밀리아님의 요구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매순간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러나 창조주의 사랑은 다음과 같다.


나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으니 이해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우리에게 대항하는 족속들은 창조주의 이름을 걸고 절멸한다.

지금은 갈 수도 없고 보여줄 수도 없지만 너희들이 가야할 땅이 있다.


차라리 강요라고 부를 법한 이러한 규율에서 사랑의 모퉁이라도 발견할 수 있단말인가?

바로 이것이 문제다.


그런데도 나는 창세기라는 아이디어를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이 경전은 단지 좀 더 이른 시기에, 좀 더 월등한 가치를 지닌 에밀리아님의 가르침에 밀려 교세를 잃어버렸을 뿐이다.



2. 신부를 찾아온 아빌라바라


백발의 여인을 보았어.

자신을 에밀리아라고 소개하는 여인을 보았어.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어.


“길을 잃었어요…”


그녀의 말이었어.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


나는 되찾아야하는 걸 찾기 위해 길을 가고 있었지.

어쩐지 시무룩하고 자신감이 없는 그녀를 위해 잠깐만 쉬어가야했어.

들판에 주저앉아 말했어.


“난 아들을 찾고 있어. 하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네. 굳이 찾아가지 말고 어디에 있든 행복하라고 빌어주는 게 나은 걸까?”


에밀리아는 화들짝 놀랐어.

마치 벌레를 쳐다보듯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면서.

그럴것 까지야.

그녀가 말했어.


“절대 그러시면 안 돼요!”


마치 성질을 내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이 아이는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이겠지?


“저도 소중한 사람들과 갑자기 헤어져서… 어떻게 돌아가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저를 기다릴 거라고 생각해요. 분명히요!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건 배신이에요!”


당돌한 구석도 있네.

그녀가 말을 이었어.


“그러니까… 언니? 언니도 반드시 만날 수 있어요.“


인간에게 언니라는 소리를 듣다니.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구분하기 어렵다지만 이 아이는 눈치가 좀 더딘 모양이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니까, 나는 그냥 희미한 웃음을 입꼬리에 걸어두었어.


에밀리아의 확신, 어쩌면 단호한 믿음으로까지 비춰지는 그 감정이 내 심정에 맞닿으니 따뜻한 힘이 흘러들어오는 느낌이었어.


“힘이 되어줘서 고마워. 그럼 에밀리아 너도 소중한 사람들과 재회하길 바래.“


“반드시 되찾아요.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