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소리야!"

"이게 참말이야?"

"아니, 이제 우리 어디서 살라고!"

갑자기 한 쪽에서 웅성웅성거리고 곡소리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대도시 라스트 오리진의 푸른 입구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땅을 치며 통탄해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한 명을 잡고 물어봤다. 그 사람은 패닉에 빠져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 했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고 있는 거죠?"

그 사람이 안절부절 못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입을 뗐다.

"우리 마을이 강제로 철거됐어."

"철거요? 도대체 왜요?"

"국회에서 무슨 이상한 법이 통과됐대. n 뭐시기였는데 이름이 뭐더라..."

"n번방 방지법이요?"

"아, 그거다, 그거. 그 법이 2D 야짤까지 막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이쪽 사람들이 강제로 쫓겨나고 있다고."

놀라서 잠시 말이 막혔다. n번방 방지법. 그 전에 텔레그램과 스너프 필름을 막을 것이지 가상의 캐릭터들이나 막아서 욕을 먹고 있다던 그 법에 대해서 별로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많은 난민들을 보니 그 법이 얼마나 무서운 법인 지 세상 체감이 되었다.

"우리 도시만 이러는 줄 아냐? 소녀전선이니 붕괴3니 툴리우스니 뭐니 하는 곳들이 통째로 철거당하고 있어."

"그럼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가요?"

"몰라. 이제 알아서 찾아가야지."

그 사람이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앞으로가 걱정된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래 살던 곳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지만 마음만은 한 때 대도시였으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라스트 오리진에 있었기에 그 사람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대도시 입구로 옮겨갔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현실에 좌절한 듯 슬픈 낯빛을 띄었다.



"그런데 너는 어디서 왔어?"

"저요? 저는 다른 나라에서 왔어요. 이중국적자죠."

"이중국적자?"

"왜, 요즘 다중국적자 많잖아요. 루리국이랑 일베국의 시민권을 동시에 따낸 사람들도 있다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죠."

이 말을 듣고 그 사람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였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왼손 손바닥을 치면서 말했다.

"그래, 그걸 생각 못 했네. 다른 나라에 가서 난민촌을 만들면 되겠어!"

그러고는 내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너무 가까이 와서 부담스러웠다. 그랬기에 답할 때 반사적으로 얼굴을 떨어뜨리며 민망했기에 손가락으로 뺨을 긁었다.

"그 뭐냐... 나무라이브에서 왔...어요."

"나무라이브? 그게 어디야?"

"통칭 남라국이라고도 하죠. 학문의 중심지로 유명한 나무위키의 파생 국가요."

"나무위키? 이상한 유사학자들만 드글대는 곳?"

그 사람의 눈에서 반짝임이 조금 가셨다. 나무위키의 명성을 잠시 잊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이건 또 무슨 반응인가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해할 수 있었다.

"거기 사람이 세웠지만 그래도 지금은 거기서 거의 독립한 국가에요. 거기랑은 거의 상관 없어요."

"그럼 뭐, 괜찮으려나?"

"저는 괜찮죠."

그 사람이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나무라이브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작은 국가였고 군데군데 황무지가 많은 데다가 인지도도 매우 적은 약소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 특징 좀 말해봐."

"일단 시민권을 얻으면 원하는 마을을 직접 만들 수 있고..."

"오? 그거 좋은데? 거기 일베나 여시나 그런 데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오케이, 그럼 잠시만?"


그러자 그 사람이 라스트 오리진의 난민들에게 달려갔다. 깡총깡총 뛰어가는 모양새가 신나보였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많이 기다렸지?"

"흐이이이이이이ㅣ이!!!"

그 사람이 난민촌을 세우자는 이야기를 퍼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마무시한 숫자의 사람들이 그 사람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얼추 훑어보아도 나무라이브 전체 인구의 3분의 1은 가뿐히 넘어 보였다.

"자, 여러분! 우리들의 대도시가 다시 부활할 때까지 남라국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읍시다!"

"아니 이렇게 많이 오면..."

그러나 그 뒤의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나를 한 줄기 빛으로 여기고 구름같이 몰려든 인파들의 앞에서 거절의 선언을 하기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아 예 뭐 따라오시죠."

"와!!! 거기서 야짤 뿌려도 되요?"

"새로운 보금자리라니 야 기분 좋다!!"

처음에 당황해서 잘 못 봤지만 지금 찬찬히 보니 노무현을 외치는 사람들과 야한 사진이 두 팔을 넘어 두 트럭 가득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아니, 그 사람들로만 가득 찬 듯 했다.

나 정말 이대로 나무라이브에 가도 괜찮은 걸까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