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는 학교에 오면 하루종일 책만 읽는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든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을 안 한다. 하루는 내가 물었다.

 

“하루종일 책만 읽으면 안 지겨워?”

“너희들도 하루종일 교과서 보고 휴대폰 보고 티비 보잖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학생들은 교과서를 펴놓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그는 언제나 지역 도서관에서 빌린 제목도 어려운 책들에 열중하는 광경은, 마치 그가 같은 반 학생들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그는 온갖 트집을 잡기 좋아하는 선생님들의 사냥감이었다.

 

“이봐 거기!”

윤리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아래쪽으로 고개를 처박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보고 소리쳤다.

 

“거기. 너!”

윤리 선생님이 다시 소리쳤지만 그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윤리선생님은 그의 자리로 갔다.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게냐?”

윤리 선생님이 자신의 휑한 대머리를 그의 얼굴 옆에 바싹 갖다 대면서 말했고 그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책 읽고 있었습니다.”

그가 자신이 읽고 있던 책을 슬며시 들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가 이걸 읽는다고?”

윤리 선생님은 그가 쥐고 있던 책을 뺏어 책으로 그의 머리를 톡 치더니 말했다.

 

“이놈아. 이런 건 기초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거야. 네놈같이 수업시간에 내 말도 안 듣고 딴짓만 하는 놈이 뭘 이런 걸 읽겠다고 그러는 게냐. 넌 이걸 이해나 하니?”

윤리 선생님이 말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안했다.

 

“그래. 이놈아 네 마음대로 해라. 네가 이걸로 밥을 해 먹던 라면을 끓여 먹던 죽을 쑤던 난 아무 상관도 안 하련다.”

 

윤리 선생님은 그의 책상에 책을 툭 놓으면서 말했다. 윤리 선생님이 다시 칠판 앞으로 가자 그는 책을 집어 다시 읽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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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점심시간이 되면 가끔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반 친구 누구도 그가 어디로 갔다가 뭘 하고 돌아오는지 몰랐다. 그의 이런 행적은 반 친구들의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야. 걔는 어딜 그렇게 갔다가 오는 거야?”

반 여자아이가 자신의 친구에게 말했다. 

 

“나도 몰라. 걔는 말도 거의 안 하잖아. 하루종일 책만 읽고 말이야. 그렇게 잘생겼는데 한마디도 안 하는 건 얼굴 낭비하는 거 아니야?”

 

“맞아 맞아. 진짜 잘생기긴 했지. 목소리도 좋다던데?”

“걔 목소리를 들어본 적 있어?”

 

“내가 들은 건 아니고.. 내 친구의 친구가 어쩌다가 걔가 노래하는 걸 들었는데 목소리가 정말 끝내줬데.”

 

“걔 노래도 해? 상상이 안 되는데.”

“나도 그냥 주워들은 거야. 정확히는 잘 몰라.”

 

그렇다. 그는 정말 잘생겼다. 콧날은 적당히 높았고 입술은 얇고 오목조목했다. 눈은 앵간한 여자 아이들 뺨칠 정도로 이쁘고 선했는데 학교 여자아이들 대부분이 그의 연하고 아름다운 쌍꺼풀을 보곤 그에게 빠져버렸다. 그가 이렇게 잘생기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여자아이들이 관심을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어디에서든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조용히 있고 싶어 했지만 얼굴이 화려해 누구든지 그를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아이러니한 아이였다. 그래서 많은 여자아이가 그를 좋아했다. 몰래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대놓고 좋아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몰래 그를 좋아하는 많은 여자아이 중 하나였다.

 

“저기 봐봐. 또 간다. 도대체 어디 가는 거야?”

그가 반을 나가는 것을 본 여자아이 하나가 말했다.

 

“우리 따라가 볼래?”

“무슨 변태도 아니고 왜 따라가? 그건 좀 아니다.”

 

나도 그가 어디로 가는지 항상 궁금했다. 저번엔 그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단체로 그가 학교 도서관에 가지 않을까 싶어 그곳에서 그를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학교에서 갈 만한 곳이라곤 도서관밖에 없었다. 그런데 도서관에 가는 것도 아니라면 그는 도대체 어딜 그렇게 가는 걸까?

 

“여기 미술부장이 누구야?”

다른 반 여자아이가 우리 반에 들어와서 말했다. 내가 미술부장이었다.

 

“내가 미술부장이야. 왜?”

“미술 선생님이 널 찾으셔. 교무실로 내려가 봐.”

 

나는 교무실로 내려갔다. 미술선생님은 교무실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는데 학교 C동 3층에 있는 지금은 안 쓰는 미술실에서 판자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C동은 온통 거미줄 투성이에 깜깜했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발소리가 온 복도로 펴졌다. 입학하고는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입학생 중에서도 C동에 와본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B동이 새로 생기고 나선 버려진 건물이 되었다고 하니까. 

 

미술실은 버려진 지 몇십 년쯤은 돼 보이는 곳 같았다. 천창은 거미줄로 가득했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석고상과 팔레트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판자는 창문 옆에 있었다. 난 판자를 들고 미술실을 나왔다. 

 

문을 잠그고 있는데 복도 끝에서 쿵짝쿵짝 거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고 그 소리에 문틈에 쌓인 먼지들이 약간씩 진동했다.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복도 끝으로 갔다. 끝엔 음악실이 있었는데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소리는 음악실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난 음악실을 들여다봤다. 그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타 줄을 튕길 때마다 그의 부드러운 머릿결이 찰랑거렸고 이마에 송글송글 맻힌 땀들이 튀었다. 그는 내가 난생처음 들어보는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가사도 낯설었다. 

 

[언제나 슬픈 눈을 한 선생님은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네.]

 

나는 창문 밑으로 쪼그리고 앉아 노래를 들었다. 정말 끝내줬다. 기타 연주도 환상적이었고 목소리도 완벽했다. 가사는 어려웠으나 음악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곧장 휴대폰을 꺼내 녹음했다.

 

집에 와서 녹음한 것을 들어보았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지만 일반적인 아마추어 그 이상의 연주 실력이었다. 노래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 기타가 가능한 모든 음이 하나의 노래에 들어가 있는 듯했지만 결코 음들이 따로 놀지 않았고 오히려 조화를 이루어 언제 음이 바뀌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위대한 기타 음악들의 요소들만 골라 와서 만든듯한 그런 노래였다. 나는 피아노 앞으로 가서 녹음한 음악을 틀어놓고 음에 맞게 피아노를 쳤다. 기타 음에 맞게 피아노 음을 넣으니 제법 그럴싸하게 들렸다.

 

다음날 나는 음악실로 갔다. 그는 어제처럼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내가 음악실로 들어갔지만 그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계속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야?”

그가 약간 놀란 듯이 물었다.

 

“어제 심부름 왔다가 네가 기타 치는걸 듣고 오늘도 들으러 온 거야.”

그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그런데 너 기타 진짜 잘 친다. 누구한테 배운 거야?”

“아니. 혼자 했어.”

“시작한 지는 몇 년 됐는데?”

“일 년 조금 안됐을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의 기타 실력은 10년을 꼬박해도 할까 말까 한 연주였으니까.

 

“누구 곡을 연주한 거야? 정말 좋은 노래던데.”

“내가 작곡하고 작사했어.”

“작사작곡은 언제부터 한 거야?”

“그것도 기타랑 같이했는데.”

 

그는 거짓말을 달고 사는 허풍쟁이 사기꾼 아니면 음악 천재가 분명했다. 그가 보여준 것들은 도저히 음악을 시작한 지 일 년도 안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내가 이 기타 노래랑 어울리는 피아노 음을 만들어봤어.”

“피아노?”

“그래. 피아노. 한 번 들어볼래?”

“좋지.”

“그럼 네가 기타를 연주해줘야지.”

“알겠어.”

그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나는 피아노 앞으로 갔다.

 

[허공에 메아리치는 수만가지 눈빛들

비는 눈물이 되어 이 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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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피아노 괜찮지 않아?”

내가 물었다.

 

“괜찮았어. 그런데 [나랑 얘기해줄래요] 이 부분은 음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그가 말했다.

“그럼 그 부분 다시 쳐봐.”

 

[나랑 얘기해줄래요.

나도 애기해줄게요.

해가 저물어버린다면

내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까.]

 

“정말 음이 하나 높네.”

“그 부분만 조금 낮추면 완벽할 거야.”

“그런데 한 번 듣고 그걸 어떻게 알아차린 거야?”

“뭘?”

“피아노 음이 높다는 걸 말이야.”

“그냥 보여. 뭔가 안맞는게.”

“음악이 보인다고?”

“설명하긴 어려운데 하여튼 보여.”

그는 매고 있던 기타를 내려놓았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은데.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할 거야.”

그가 말했다.

 

“그런데 넌 피아노 언제부터 배운 거야?”

“어릴 때부터 배웠어. 괜찮은 실력이지?”

“그런 것 같네.”

“그런 것 같다니?”

“음을 하나 틀렸잖아.”

 

그가 슬며시 웃었다. 그의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은 전교생 중에선 내가 최초일 것이다. 웃으니 백배는 더 잘생겨 보였다. 나도 웃었다. 

 

“혹시 피아노 좀 가르쳐 줄 수 있어?”

그가 물었다.

 

“피아노? 아 그래. 가르쳐 줄 수 있어.”

“고마워. 피아노는 쳐본 적이 없거든. 오늘 들어보니까 곡에 피아노를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

 

그날 밤은 유난히 동그란 달이 떠 있었는데 문득 오늘 그가 부르던 노랫말이 떠올랐다.

 

[저 달은 검은 면에서 날 만나줄래요? 아무도 우릴 보지 못할 것이고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 듣지 못할 거에요.]

 

 

 

 

2.

그는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이토록 빨리 피아노를 배우고 자유자재로 다루는 사람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기본적인 원리와 구조만 알려주었을 뿐인데 자신이 들은 것을 그대로 연주했고 완벽한 박자로 건반을 눌렀다. 

 

“이 표시는 뭘 눌러야 하는 거야?”

그가 음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선 이 건반이랑 이 건반을 동시에 누르면 돼.”

내가 설명하자 그는 희고 긴 손가락으로 건반을 눌렀다.

 

“재미있는 소리네. 그런데 나 같으면 이 부분에선 이렇게 할 것 같은데.”

“그것도 괜찮네. 그런데 연결되는 뒷부분을 생각해보면 조금 높은 음이 아닐까?”

“난 기타가 같이 연주되는걸 염두에 두고 쳐본 거야. 기타 소리가 깔리면 피아노 소리가 좀 더 낮게 들릴걸.”

그는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 부분 좀 연주해줘.”

그가 말했다.

 

“그래.”

나는 피아노를 연주했다.

 

우리는 한 두시간 더 연주하다가 배가 고파질 때 즘이 되어서야 음악실을 나왔다. 학생들은 한 명도 없었고 운동장에선 동네 어린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그 애들이 자기 쪽으로 공을 차라고 소리치는 것이 들려왔다. 

 

“거기 학생들! 학교 끝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이제 집에 가야지.”

교문 입구에 있던 경비아저씨가 우리를 보곤 말했다.

 

“저흰 선생님께 허락받고 음악실에서 악기 연주하고 있었어요.”

“그럼 이때까지 C동에서 소리 나던 게 너희들이었구나?”

“맞아요.”

“맙소사. 난 무슨 음악 틀어놓은 줄 알았단다. 기타 연주가 정말 완벽하던데. 네가 연주한 거니?”

“아니요. 이 남자애가 연주했어요.”

“그럼 피아노는 네가 쳤고?”

“맞아요.”

 

경비아저씨는 몇 번이고 우리 연주를 칭찬했고 칭찬을 들은 그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 연주가 맘에 드셨나 본데.”

내가 말했다.

 

“네 완벽한 피아노 연주 덕분이지. 그건 그렇고 너 배 안 고파? 나랑 밥 먹으러 갈래?”

그가 물었다. 

 

“먹으러 가자. 나도 배고파.”

 

그는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야 하는 호수 근처에 있는 곳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큰 호수 하나가 있는데 거기 근처에서 밥을 먹고 호수 뒤에 있는 조그만 언덕에 올라가자. 장담하는데 경치가 정말 끝내줄 거야.”

 

우리는 밥을 먹고 호숫가로 향했다. 식당을 나왔을 땐 하늘은 반쯤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구름 몇 점이 외롭게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고 노을을 받아서 붉게 빛나고 있었다. 호수의 물들도 주황 하늘빛을 받아 반짝거렸으며 저만치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맞아 찰랑찰랑 물결쳤다. 우리는 호수 뒤쪽의 작은 언덕으로 향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돼. 다리가 좀 아플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괜찮아. 정 못 올라갈 것 같으면 업혀서 올라갈게.”

 

내가 농담을 하자 그는 웃었다. 정말이지 그의 미소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신이 가장 심혈을 다해 빚은 사람의 미소가 있다면 저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덕을 올라갔다. 나무는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면 붉은 나뭇잎은 나무에서 뚝 떨어져 흙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해서 떨어진 낙엽들은 이미 흙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안 힘들어?”

그가 뒤따라오는 나에게 물었다.

 

“올라갈 만해. 숨은 좀 차는 것 같지만.”

“조금만 힘내. 거의 다 올라왔어.”

 

몇 번의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니 내 허리 정도 까지 자란 강아지풀로 뒤덮인 평지가 나왔다. 강아지풀은 산들바람에 맞춰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가 정상이야. 저 앞으로 가면 호수가 한눈에 보여.”

 

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는 너무 오래되어 앉으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나무 벤치에 앉았다.

“내 옆에 앉아.”

그가 말했다. 나는 그와 약간은 떨어진 채 앉았다.

 

“여기 앉으면 호수랑 도시가 다 보이는데 사람들은 안 보여. 정말 신기하지?”

“그러게. 그렇게 높은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는 몇 분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경치를 즐겼다. 사방이 나뭇잎 스치는 소리로 가득 찼고 이따금씩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은 연한 민트색 파스텔이라도 칠해놓은 것 마냥 빛을 내고 있었다.

 

“저기 저 구름 말이야. 흰색 색연필로 색칠한 것 같지 않아?”

그가 말했다.

“하늘도 색칠한 것 같아. 너무 아름다워.”

내가 말했다.

“하늘이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들어.”

 

그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기 있잖아. 내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앉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니면 내가 붙을까?”

그가 다시 물었다.

“그래도 되고.”

내가 대답했다. 그는 내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여기가 맘에 들어?”

그가 물었다.

“응 마음에 들어. 경치도 좋고 조용하고.. 이런 곳에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야.”

“정말 다행이네. 힘들에 올라왔는데 마음에 안 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넌 여기 자주 와?”

“책을 읽거나 작곡을 할 때 올라와. 여기 있으면 글자도 더 잘 읽히고 곡도 더 잘 써지는 것 같거든.”

“내가 처음 음악실에 간 네가 날 연주하던 곡도 여기서 만든 거야?”

“응. 여기서 만들었어.”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나무 벤치에 앉았다.

 

“저기 있잖아. 나 사실 이번에 학교 축제에 나갈 거거든.”

그가 말했다.

“그런데 네가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고 피아노도 내 노래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말인데 우리 시간 날 때 여기 와서 축제에서 부를 노래 만들어보지 않을래? 강요하는 건 아니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 나는 그냥 네가 피아노를 잘 치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빛을 어딘가 모르게 흔들리고 있었고 내가 그의 눈을 바라보면 그는 슬며시 내 눈을 피했다가 다시 바라보고 피했다가 다시 바라보는 것을 반복했다.

 

“정말 내 도움이 필요해?”

“도와주면 정말 고마울 거야.”

“그럼 도와줄게.”

“정말?”

“정말이야.”

 

그는 환하게 웃었다. 

 

“가사는 조금 만들어놨어. 한번 불러볼 테니까 어떤지 말해줘.”

“알겠어.”

 

[사랑이 충만한 가을이네요. 우리가 처음 만난 그 가을.

내 사랑은 저 나뭇잎 되어 바람 타고 멀리 날아갑니다.

겨울이 와서 나뭇잎 얼려버린 데도 내 사랑은 괜찮아요.

언젠간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쳐도 내 사랑은 괜찮아요.]

 

그는 노래를 다 부르곤 부끄러운지 얼굴이 새빨개져선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좋은 가사라고 칭찬하자 그는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나를 쳐다보면서 웃었다. 살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미소는 그런 미소가 아닐까. 그가 지금 내게 보인 노래와 미소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겨울이 와서 나뭇잎을 얼려버린 데도, 언젠간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친다 해도. 

 

어디선가 바람이 삭 불어와 단풍나무를 흔들었다. 단풍잎은 우수수 떨어졌는데 흙바닥엔 그렇게 떨어져 쌓인 단풍잎이 한가득이었다. 그는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곤 가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