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실이랑 운명 소재보니 몇년 전에 썼던 거 생각나서 올려봄ㅇㅇ (순문학소설 노잼주의..)



 붉은 실



 여자는 말했다.


 “보여요? 여기 손목에 감겨있는 거 이 빨간 실이 지금은 좀 헐렁해져 있지만 하루 종일 꽉 조여서 날 잡아당겨요. 손목을 끊어질 것처럼 조여서, 혈액이 잘 흐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야. 봐요. 여기 상처자국이 있는 여기예요.


 여자는 혈관이 짙게 비쳐 보이는 손목을 짚어보였다. 그곳에는 꽤 깊어보이는 자상이 남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장이 조여 오는 걸 느껴요. 피가 모자란 거죠. 그러면 내 몸은 불쌍할 정도로 달아올라요. 차라리 실이 당기는 쪽으로 가면 좋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이런 짓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누군데? 그 남자가.”


 “왜요. 가서 싸움이라도 하게?”


 “할 수도 있죠.”


 여자는 등을 구부려 그에게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그냥 알고 있으면 돼요. 요컨대 오늘 밤 당신이 날 안을 수 있는 건 그 빨간 실 때문이라는 거예요.”


 여자는 구부린 등을 펴고, 허리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남자는 불쌍할 정도로 헐떡이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왜? 왜?”


 “아니, 생각해보니 우스워서요. 당신은 아직 내 이름도 모르잖아.”


 물론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는 다음 날 남자가 깨기 전에 모텔을 나와서 새벽 거리를 걸어갔다. 약하지만 창백한 햇살이 생살을 바르려는 것처럼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여자는 외투 자락을 여미면서 걸어가 택시 위에 올라탔다. 그녀의 오피스텔로 갔다.


 여자는 방에 돌아와 한 번 더 몸을 씻은 후에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아까보다도 추워진 거리를 따라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표정한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자기가 가야할 곳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는 그들을 내려다보다가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실을 확인했다. 손목으로부터 현관문과 엘리베이터, 다시 도로를 건너서 이젠 기억나지도 않는 어떤 남자에게로까지 이어져있을 터였다. 그 실의 붉은 빛은 행인들에게 밟혀 더러워지기는 해도 지워지지는 않았다. 여자는 그 때마다 손목에 매인 실이 낮게 맥동하는 걸 느꼈다.


 여자는 그 맥박을 느꼈다. 사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그 실은, 다시 맞지 않는 반지만큼 세게 손목을 죄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그녀는 도리어 그 압력으로부터 어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도 두렵지 않을만큼 단단한 안도감이었다.


 여자는 시선을 들어 시체처럼 흐린 구름이 낀 하늘을 보다가 다시 커튼을 내렸다.


 오후에 그녀는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지난 반 년 사이에 새로 사귄 친구들이었다. 소은과 유진은 카페 한 쪽에 가죽 레깅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 겨울인데도 그녀들은 선명하게 보였다. 흘깃 훔쳐보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면 그저 신경 쓰려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그녀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고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두 사람이 주로 꺼내는 이야기는 지갑, 귀걸이, 네일 아트, 핸드백, 칵테일, 남자, 코트 같은 것들이었다. 여자는 아직 잘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말을 듣고 있는 것이 마음에 편했다. 다른 이야기들은 이젠 잘 듣기가 힘들었다. 여자는 가만히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기도 했다.


 “어제도 괜찮았나 봐요?”


 고개를 들자 소은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소은은 방긋 웃었다.


 “클럽에서 언니랑 같이 나간 사람이요. 저한테 문자 왔어요. 연락처 좀 알 수 없냐고.”


 우우, 유진은 입술을 내밀면서 라떼를 마셨다.


 “어때요. 연락처 받을래요? 그 사람 입은 건 괜찮던데.”


 여자는 어젯밤 끌어안았던 몸을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 그가 헐떡이는 소리를 떠올렸다. 그러나 새벽에 일어나서 본 자고 있던 얼굴과 그 시간은 잘 연결이 되지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아니.” 여자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해도 너무 단호하게 들렸기 때문에 얼른 덧붙였다. 그녀는 속삭이며 말했다.


 “그 남자, 속에 다 늘어진 트렁크를 입었더라구. 하늘색 방울 무늬 들어간 걸로.”


 그 말을 듣고 두 여자는 숨죽여 킬킬거렸다. 여자는 따라 웃었다.


 시간은 오후에서 저녁으로 천천히 넘어갔다. 여자는 두 여자 앞에 앉은 채로, 카페와 거리를 구분 짓는 유리창을 넘겨다보고 있었다. 행인들은 모두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카페에서 흐르는 신스팝이, 혹은 알앤비가 그들에게 색깔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여자는 평온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그것은 자신의 색깔은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붉은 실은 새로 조금씩 두꺼워지고 있었다. 다시 아파지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러다 거리를 걸어가던 한 남자와 눈을 마주쳤다.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천성적으로 무해하게 느껴지는 순해 빠진 얼굴, 피아노를 치는 사람. 그 남자는 놀란 듯 웃더니 손을 흔들고는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커다란 신디 사이저 가방을 메고서 어서 오세요, 하는 점원의 인사를 받으며 곧바로 걸어왔다. 먼저 인사를 꺼낸 건 소은이었다.


 “아, 선배. 어쩐 일이예요?”


 “앉았다 가도 돼?”


 “물론이죠.”


 유진은 말없이 빨대를 물고 있었다.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밖에 완전 춥다.” 남자는 의자를 끌어 와 앉았다. 소은은 유진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이름은 재우라고 했다. 유진은 눈꺼풀이 가늘어지며 웃었다. 그는 체격이 좋고 아주 잘생긴 편이었다. 남자는 인사를 끝내고서 여자를 보며 물었다.


 “잘 지냈어? 졸업하고 어떻게 지냈니?”


 “그냥 그랬어요. 학과에서 알선해 준 곳에 다니다가 얼마 전부터 좀 쉬고 있어요.”


 “그래?”


 “선배는요?”


 “나야 늘 똑같지. 실력은 느는데, 여유는 없어.”


 여자는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늘 그렇게 느긋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순박하게 물었다.


 “피아노는? 계속 치고 있어?”


 유진이 끼어들었다. “오, 언니 그런 것도 했어요?” 목적은 따로 있었지만 눈을 뜬 것이 놀란 건 사실인 듯 했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유진을 보며 말했다.


 “드뷔시를 치지. 너희들도 소리를 들어보면 놀랄 걸?”


 그러나 여자는 고개를 돌려 카페 입구로 이어져 있는 붉은 실을 쳐다봤다. 사람들은 그 실을 보지 못하고 밟으며 지나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맥박은 단단해지며 실을 더 굵고 조이도록 만드는 것 같았다. 여자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를 봤다.


 남자도 그녀 쪽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다정한 빛을 띠는 얼굴이 잠시 그립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 저는 먼저 가볼게요.”


 “어? 그러니?”


 소은은 일어선 여자를 올려다봤다.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언니, 오늘도 달릴 거예요?”


 유진은 “나는 아직 몰라요.”하고 말하면서 웃었다.


 “응, 있다 오게 되면 봐.”


 여자는 실이 매달린 손바닥을 들어 흔들고는 카페를 나왔다. 남자의 시선이 뒤따라오는 걸 느꼈지만 돌아보진 않았다. 건널목을 건너 멀어지기 전에 카페를 돌아보니, 소은이 웃으면서 뭔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듣고 있는 남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은이라면 충분히 많은 것을 얘기해 줄 터였다. 이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마구 같이 자요.’ 그러나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게다가 어차피 그런 것 따윈,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여자는 언젠가부터 피아노의 블루 노트 보다, 스네어의 떨림 보다, 가상악기로 찍어내는 울림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적어도 더 편해진 것만은 확실했다. 사람보다도 더 커다란 앰프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는, 놀이기구처럼 계속 움직일 뿐이었지만, 그 소리는 머리의 빈틈을 메꿔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거기에 익숙해 졌을 때 얻을 수 있는 부유감이 마음에 들었다. 너무 큰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해지다 못해 일종의 마취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클럽에서 그녀는 늘 자신이 아무 것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붉은 실에 매달려 있다고 느꼈다. 물론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또 호흡으로 달궈진 공기나 웃음 소리 역시 그녀를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것들엔 색이 없었다. 오직 실의 날카로운 맥박만이 살아있었다. 여자는 맥박이 뛸 때마다 통증을 느꼈지만, 그래도 이대로 매달린 채 기다리면 곧 실이 느슨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붉은 실은, 이제야 안심했다고. 당신은 내게서 떨어질 순 없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슨해졌다.


 여자는 그렇게 춤을 췄다. 교도소 내부에서만 허용되는 산책처럼 잠깐이었지만, 그 때만큼은 아이처럼 웃을 수 있었다. 진공 상태로 된 어두운 동굴 같은 공동 속에서 원색적인 불빛들이 번뜩였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 소은의 웃는 낯을 잠시 스쳐본 것 같았다.


 여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손에 몸을 맡겼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익숙한 다정함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모두 다 같은 사람들. 갈 곳을 알지 못해서 스스로를 이런 곳에 몰아넣는 불쌍한 사람들. 드뷔시는 바보. 스트라빈스키도, 프리데리크 쇼팽도 모두 바보였다. 여자는 활짝 웃으면서 대신 눈 앞에 있는 남자에게 매달렸다. 그의 손이 자신의 가슴을 더듬는 것처럼, 그녀는 붉은 실이 느슨해진 왼손으로 그의 심장을 만지면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맥박이 잦아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낮이 되면 다시 살아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클럽의 모든 소리와 불빛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렸다. 정전이었다.


 여자뿐만 아니라 클럽 안의 모든 사람들이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들은 귓속이 먹먹하게 울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삽시간에 닥친 어둠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달랐다. 어떤 이벤트인 줄 알고 웅성거리다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킬킬거리다 투덜거리는 소리도 있었다. 개의치 않고 숨소리를 내며 서로를 더듬는 손길도 있었다. 모든 소리는, 그러나 결국에는 낮은 웅성거림이 되어 클럽 내부를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곧 그들을 가로지르며 안내하는 외침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3분 정도 지나면 돌아올 예정입니다.”


 그러나 안내하는 목소리가 끝나자 곧바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코올로 흐트러진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절실하게 느껴지는 필사적인 비명이었다. 사람들은 뭔가 사고가 벌어진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 비명 소리는 불이 다시 들어올 때까지 거의 5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곧 백열등처럼 밝은 조명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에 있는 여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뒷걸음 쳐 생겨난 공동 중앙에 혼자 주저앉아 있었다. 마치 태어나 처음 바다에 빠져 본 사람처럼 자신의 몸을 껴안고 주위를 둘러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소리와 조명이 한순간에 사라진 순간, 그녀가 두르고 있던 흐릿한 장막까지 함께 사라졌던 것이다. 여자는 알몸으로 서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 역시 그 모든 게 거짓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게 정말 사라져버렸을 때, 그녀는 여지껏 상상해본 적도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타인들이 둘러싸고 그녀의 비참함을 구경하고 있었다. 여자는 지금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기 힘들었다.


 잠시 후에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온 스태프의 손을 잡고서야 그녀는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부유감을 빼앗긴 채 딛고 선 바닥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여자는 땀에 젖어 차갑게 식은 몸을 이끌고 입구로 걸어갔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직원에게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왔다. 소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지나, 여자는 강철로 된 아치교 위를 걸어갔다. 주홍색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차들이 간헐적으로 차가운 바람을 이끌며 빠르게 지나다녔다. 여자에게 다리 건너편은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몸을 안고 걸으며,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시꺼먼 강물 위에 포르말린에 절인 것 같은 달이 떠 있었다. 여자는 아까 다리 앞에서 게워낸 속이 다시 뭉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갑자기 모든 것이 역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리 위의 주홍색 전등도, 풍경이 눈에 번져 보이는 것도, 힐을 벗은 맨발에 시멘트 가루가 밟히는 것도, 추위도, 매연 섞인 매캐한 공기도, 자신의 옷차림도, 도시도, 이런 밤과 다시 다가올 모든 아침까지도 전부 역했다. 그럼에도 그녀를 묶고 있는 붉은 실만은 선명한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바닥을 향해 벌린 입에서 침이 길게 늘어져 떨어졌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대체!” 그녀는 그녀가 죽을 수 조차 없게 만드는 기억들이 새로 태어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걸 느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살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여자는 비명을 질러야 했다.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라구우. 그런데 대체, 왜!”


 여자는 붉은 실을 움켜쥐고서 바닥을 긁었다. 네일아트를 한 손톱이 부러질 때까지 긁었다.


 그녀는 그대로 영원히 울고 싶었지만 눈물은 금세 말라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철제 난간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밤은 정말로 길었다. 여자는 울음을 멈춘 후에도 하늘은 빛깔하나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


 여자는 다시 걷기 전에 다리 건너편에 잔뜩 쌓여 있는 세상을 쳐다봤다. 지겨운 세상, 젊음, 그런데도 피부는 하얗다니. 어쩌면 그래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지, 여자는 얼어붙은 어깨를 제 손으로 감쌌다. 붉은 실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녀는 다리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오피스텔로 돌아와 여자는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누웠다. 핸드백에서 떨어진 휴대폰에 알림창이 떠 있는게 보였다. 오후에 본 남자에게서 온 것 같았다. 여자는 내용을 읽기 싫었다. 하지만 장차 그 남자돠 결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오늘은 안될 것 같았다.


 여자는 자기 전에 가위로 붉은 실을 잘랐다. 절단면에서는 잠시 죽은피가 흘러나오더니, 곧 시뻘건 피가 방안 가득 터져 나왔다. 잘린 실은 시위하는 팔뚝처럼, 그렇게 한참 동안 피를 사방에 흩뿌렸다. 그 후에 움직임은 멎었지만 수도를 틀어놓은 것처럼 피는 계속 콸콸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자는 그대로 이불을 덮었다. 흘러나온 피가 시트를 적셔서 축축했지만 그대로 두 눈을 감았다.
 붉은 실에서 나오던 피는 다음 날 아침이 다 되어서야 멎었다. 그리고 이내 느슨해 지더니 여자의 손목에서 떨어졌다. 여자는 계속 잠을 잤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자고 일어난 여자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왼쪽 손목에는 아주 짙은 흉터자국만 남아있었다.



/끝



원래 파트2에 하얀실에 매달린 남자도 나오는디

너무 길어져서 잘랐다ㄷㄷ..


운명이라는 게, 잘라내고 포기하는 게 핏줄만큼 아프고

힘든 일이라는 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