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을 머금고 오늘도 下

빨간머리 앤 다시 쓰기

 

얼룩은 지울 수 없었다. 다만 청소하면서 남자는 한 가지 깨달았다. 누군가 이 집에서 죽지 않았어도 여기에서는 아마 비슷한 썩은 내가 났었을 것이라고. 쓰레기통은 먹다 버린 음식이 다른 쓰레기들과 구분 없이 담겨 있어 바퀴벌레의 소굴이 되어 있었고, 귀찮아서 대충 매동그려 부엌 한켠에 쌓아 놓은 쓰레기봉투들은 바퀴벌레 소굴이 하나뿐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기본 살림살이가 이 모양인데 빨래라고 꼬박꼬박 챙겨서 할 리가 만무하여 빨래 바구니에는 연필심 냄새에 식초를 끼얹은 듯한 악취를 풍기는 누런 빨래들이 너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가관인 집안 꼴에 넌더리가 난 남자는, 잔뜩 긴장을 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기껏해야 곰팡이 슨 음식만 들어 있는 것을 보고 후유 안도를 했다.

 

남자는 작정을 하고 모조리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봉투가 모자라자 단지 입구 상가에 다시 들러 대용량 쓰레기봉투를 사서 꾸역꾸역 담아 버렸다. 쓰레기를 버리는데 갑자기 바퀴벌레가 손에 스멀스멀 타고 오른다던가, 쳐다보기도 싫은 빨래를 봉투에 넣으려고 만진다던가 할 때, 처음에는 손에 도드라기라도 돋는 듯 움찔거렸지만, 일이 익숙해진 나중에는 별스럽지도 않게 휙휙 던져 넣어댔다. 홀린 사람처럼 해가 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남자는 온 집안에 널린 쓰레기를 정리하여 내다 버렸다.

 

쓰레기를 다 버리고는 다시 신문지를 뭉쳐 집 전체 바닥을 사악 닦아냈다. 냄새가 없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으로 봤을 때 훨씬 봐줄 만한 집이 된 것을 확인하자, 남자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수건을 버린 바람에 물기는 닦지 못한 채, 벗었던 옷을 어깨에 걸치고 집을 나섰다.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달리 갈 곳도 없어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시원한 밤공기가 폐를 씻어내자, 문득 남자는 담배가 그리워져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댕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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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그 날 따라 개인 작업에 영 진전이 없었다. 하기 싫은 날에도 해야 하는 게 프로라고 마음을 다 잡아보려 했지만, 붓을 씻을 때도, 색을 섞을 때도, 그림을 쳐다보고 있을 때도, 자꾸만 원장의 마지막 한 마디가 떠올라 집중을 흐트러뜨렸다. 작업을 어느 정도 진전시킨 채로 학원을 떠나고 싶었지만, 여자가 사는 집은 너무 늦은 시간에는 혼자 다니기 조금 겁이 나는 골목길에 위치하여, 시계가 8시를 넘어서자 여자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정리를 시작했다.

 

잡생각이 끼어드니 정리하는 손도 평소보다 느려져, 학원 문을 잠그고 건물을 나서니 이미 밤 9시였다. 지금이라도 서두르지 하고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오전에 만났던 남자가 담배를 태우며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담배를 참 맛있게 피우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생각에 잠겨 걷던 남자는 갑작스런 인사에 놀라 입을 벌렸고, 꽁초는 땅에 그대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입술에 있던 온기가 순간 허전하여, 고개를 숙여 떨어진 꽁초를 쳐다봤다. 다시 여자 쪽을 쳐다보는데,

 

“아, 죄송해요.”

 

“아뇨, 거의 다 피웠었습니다.”

 

남자는 발끝으로 꽁초의 불을 사그라뜨리며 시원스레 웃었다. 오전에 봤던 억지웃음보다는 훨씬 보기 좋은 웃음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이제 일 마치셨나요?”

 

그렇다고 대답하며 여자는 가방에서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는 자기가 물고, 다른 한 개비는 남자에게 권했다.

 

“아뇨, 방금 피웠었습니다.”

 

“저 때문에 떨어뜨린 게 죄송해서 그래요.”

 

여자의 고집 있는 어조에 더 거절해봤자 뜻을 굽힐 것 같지 않아 남자는 한 대 받아 물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라이터 불이 흔들리지 않도록 한 손을 가린 채 불을 붙여주었다.

 

“고마워요.”

 

“담뱃값도 비싼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남자는 뒤이어 여자가 건넨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맛보는데, 멘솔이었다. 가끔은 멘솔도 좋지 싶어 혼자서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그 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를 참 맛있게 피우시네요.”

 

“그런가요?”

 

“오전에도 그래서 눈에 띄었어요. 연기를 내쉴 때 그 눈이 뭐랄까, 바로 앞이 아니라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계신 것 같았어요. 보고 있으니 갑자기 담배가 당기더라고요.”

 

“보건복지부가 싫어할 사람이겠군요.”

 

남자의 실없는 농담에 여자는 가볍게 쿡 웃었다.

 

“세수를 진작시키니 정부에서 좋아할 수도 있죠.”

 

“그런가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방금 해주신 말씀, 미술 하시는 분께서 하시니 그냥 들어 넘기지, 다른 사람이 했으면, 작업 거는 줄 알겠네요.”

 

여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미술 하는 사람은 왜요?”

 

“왜 그런 것 있지 않나요? 사물을 훑는 조금 탐미적인 그런 시선, 일상을 보면서도 일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시선이 말이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요즘 사람 눈을 여러 방법으로 달리 그리는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쳐다봤나 보네요.”

 

남자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조금 가까이 붙어 걸으려다가 담배 냄새를 뚫고 퀴퀴한 썩은 내가 고개를 들이밀자,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두운 밤길에도 남자는 여자의 그 낌새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냄새가 좀 나죠?”

 

“좀 나네요.”

 

“오늘 장례식에 죽은 사람, 그 사람 집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혼자 살다 죽었는데, 죽은 지 꽤 지나서야 발견이 되어서 시신만 수습했지, 집안 꼴이 엉망이었죠. 보다 못해서 청소를 좀 하고 나오니 썩은 냄새가 옷에 배었나 보네요.”

 

여자는 고인과 남자의 관계가 갑자기 궁금해졌지만, 의문을 표하기 전에 남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장례식이란 게 있어보면,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 좋자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다들 자기 기분에 북받쳐서 훌쩍이거나, 소리를 꺼이꺼이 내는데, 정작 죽은 사람 아들인 저는 아무 느낌이 없더라고요. 무리도 아닌 게, 딱히 좋은 기억도 없는 사람인데, 안 본 지 삼십 년이 넘어서 다시 본다고 막 눈물이 솟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갑작스런 심각한 이야기에 여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마당에 자기감정에 소주까지 얹어서 취한 사람들 주정을 이틀이나 계속 들어주니, 못 참겠더라고요. 의리 있는 친구였느니, 머리가 비상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느니, 그만큼 살다 갔으니 호상(好喪)이었다느니. 그 사람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 아들놈인 저는 어디서 뭘 하다 이제서야 나타났냐고 호통 치는 양반은 차라리 어이가 없어서 웃어넘길 수 있었는데, 제일 진저리 나는 경우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절더러 그 사람을 똑 닮았다고 말하는 어느 할머니였네요. 그 말을 들으니 온 몸에 소름이, 하하하…….”

 

사람은 한 동안 담배만 뻐끔뻐끔 태우면서 걸어갔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가로등 빛에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두 사람은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다.

 

“미안합니다. 즐겁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네요.”

 

“아뇨, 아뇨. 좀 따라잡는 데 시간이 걸려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렇겠죠.”

 

“장례식장에 계시기 껄끄러우셨겠어요.”

 

“술주정 난생처음 듣는 것도 아니고, 그게 뭐 별 겁니까?”

 

“별 거죠.”

 

“……맞네요. 별 거네요.”

 

“……장례식장으로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사실 잘 모르겠네요.”

 

“저, 그러면 염치없는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제가 사는 곳이 좀 후미져서 밤에 혼자 걷기가 그런데, 괜찮으시다면 좀 바래다주실 수 있으신가요? 밤길에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지도 모르고요.”

 

남자는 여자의 파렴치하다는 부탁에 묘하게 배려를 느껴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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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기에 자신이 남자와 너무나 무관계한 사람이라, 여자는 무슨 이야기부터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하는 동안 집 방향으로 가는 버스가 나타났고, 여자는 남자를 데리고 버스에 올랐다. 승객이 거의 없어 두 사람은 뒤쪽에 두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담배 피우는 여자가 익숙하신가 봐요. 불까지 붙여준 분은 정말 오랜만인데.”

 

남자는 외국에서 근무할 때 같이 다녔던 여자 동료 하나를 떠올렸다. 궐련을 위한 필터, 담뱃잎, 종이를 다 따로 사서는, 지하철 안에서 아무렇게나 전을 펼쳐서 즉석으로 담배를 하나 마는데, 거기에 부끄러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방금 만 담배를 귓바퀴에 꽂아서는, 열차에 나오자마자 불을 댕기던 그녀를 떠올리며,

 

“담배 피우는데 남자 여자가 무슨 상관인가요?”

 

“왜 다들 그러잖아요. 애기 낳을 몸인데 그래도 되냐고.”

 

“아가씨 앞에서 하기 민망한 소리지만, 그러면 불알은 담배 피워도 안 썩는답니까?”

 

남자의 상스런 말에 웃기게도 여자는 조금 통쾌함을 느끼며 웃었다.

 

“선을 보러 나가면,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 취미가 뭐냐, 무슨 직업 하시냐, 그 직업은 어떤 일 하시냐 이런 시시한 질문을 서로 주고받고 나면,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것인지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인지 잘 모를 이상한 질문을 남자들이 해요. 그 붉은 머리는 염색을 한 것이냐, 애는 얼마나 낳고 싶으냐 그런 것들이요. 늦은 나이에 선 자리 나왔으니 다급한 마음도 있어 횡설수설 그럴 수 있겠지 싶어 대충 얼버무리곤 해요. 그러고는 식당을 나와 같이 걷는데, 남자가 담배 피울 때, 나도 같이 하나 꺼내 피우면, 다들 어이없다는 표정을 가리려고도 하지 않아요.”

 

“그런 분들도 있죠.”

 

“그런 분들만 봤어요.”

 

“그러면 선을 안 보시면 되겠네요.”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러게요.”

 

여자는 이 이야기를 해도 될까 입을 떼다 말고, 주위에 승객이 거의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는 말을 다시 이었다.

 

“부모님께서 저를 낳고 얼마 안 되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외할머니하고 외할아버지께서 절 키우셨죠. 부모님 없이 키운 것이 계속 마음에 끼이시는 건지, 제 시집까지 잘 보내야, 할 일을 다 마치신 거라 생각하시는 모양이에요. 그걸 알고 있으니, 할머니께서 권하시는 자리는 피하기도 힘들고요.”

 

“그런 분들 계시죠.”

 

“모르겠네요. 왜 그렇게 없는 누군가를 열심히 찾아야 하는지.”

 

“마음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여자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보니, 남자는 여자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도 참, 저보다 더 큰 일을 맞은 분 앞에서 제 불평만 하고 있었네요.”

 

“웬걸요. 저야 내일 지나서 잊으면 그만이지만, 선생님은 내일이 지나도 그대로인걸요.”

 

“하하하, 전혀 위로가 안 되네요.”

 

“감히 누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세상인가요?”

 

여자가 누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세상이냐는 남자의 되물음을 곱씹는 동안, 남자는 생각에 잠기는 듯한 여자를 가만히 두고, 고개를 돌려 차창 너머 밤거리를 멍하니 쳐다봤다. 규칙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을 하염없이 눈으로 쫓다가, 귀에 스쳐지나가는 도로교통상황이나 유행 지난 외국 음악을 주워 섬기며 시간을 죽였다. 우연히 시선이 차창에 비친 여자에게 닿자, 그래, 내일이 지나면 끝날 일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다짐했다.

 

버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내려야 할 곳에 도착했다. 정류장에서 조금 더 파고들어 골목길에 들어가니, 가로등이 드문드문 있어도, 과연 여자가 혼자 다니는 것을 꺼릴 만큼 을씨년스런 구석이 있었다. 갈림길에서 여기로 가야 한다던가, 이쪽으로 오라는 말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가까이 붙어 걸었어도 서로 다른 생각에 골몰하여 있었기에 둘 사이에 자리한 침묵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뚜벅뚜벅 밤길을 걸어갔다.

 

“여기에요.”

 

“확실히 혼자 다니기는 좀 그렇네요.”

 

“같이 걸어주셔서 감사해요.”

 

“저야말로, 덕분에 밤산책 잘 했네요.”

 

“오전에 뵀을 때보다 훨씬 쾌활해 보이네요.”

 

“그렇습니까?”

 

“그래요.”

 

“그러면 이제 마저 일하러 가봐야겠네요.”

 

“가세요?”

 

“가야죠.”

 

“그래요. 살펴 가세요.”

 

남자는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섰다. 여자는 건물 외벽에 붙은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 옥상 위에 자리한 자신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우레탄 방수처리가 되어 미련하게 초록빛 일색인 그 옥상을 여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색깔도 색깔이거니와, 미끈거리는 바닥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삐적삐적거리는 소리가 꽤나 귀에 거슬렸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나, 안개 낀 날에는 그 소리가 더 심했다. 하지만 오늘 밤에는 그 초록빛 우레탄 옥상의 어떤 것도 그녀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여자는 평소 버릇대로 열쇠를 찾아 가방을 뒤지던 손으로 담뱃갑을 먼저 집고는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대문 옆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듯 몸을 던지고는 가만히 밤하늘을 바라봤다. 첫 모금을 깊게 머금고는 내쉬는 걸 잊은 듯 잠시 가만히 있다가, 기침하듯 내뱉었다. 급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가 골목길로 뛰쳐나갔다. 급히 던져 넣은 바람에 장초는 미처 불이 꺼지지 않은 채로, 후르츠 칵테일 통조림을 재활용한 재떨이 안에서, 조용히 스스로를 태우며 밤하늘에 구름을 만들고 있었다.

 

구름 속 달이 아름다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