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를 벗어나 절정, 또는 그 이상의 영역에 닿은 자들에게 붙이는 접미사는 다양하다.

왕(王), 제(帝), 극(極), 신(神) 등이 여기에 속한다.

무림맹주 맹공이(孟紅利)는 무림에 존재하는 신(神) 중 한 명을 찾았다.

초절정에 달한 고수 설빙절(䨮氷準).

절대영도, 영구결빙 등등 무수한 칭호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중 가장 으뜸은 단연코 빙신(氷神)이었다.

무림맹주가 빙신을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그만 겨울을 멈춰주실 수 없겠습니까?"

정파의 정점에 위치한 자가 고개를 숙이며 존대하는 것과 달리, 말에는 어쩐지 원망이 담겨 있는 듯 했다.

"..."

빙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무림맹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 제 자그마한 성의입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대답을 기다리다 지친 무림맹주는 가져온 금은보화와 영약, 음식을 두고 일어났다.

무림에 닥친 위기를 생각하면 이는 무림맹주가 준비할 수 있는 최대의 성의였다.

"오늘도 허탕인가...."
"곧 겨울이 된 지도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대로 가다간 다 죽게 생겼어요!"
"하지만 무슨 수로 빙신을 설득하겠나. 무력으로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거늘."

무림을 지배하는 기나긴 겨울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빙신은 한 때 무림맹 최대의 적이었던 녹업스트림 토벌전에 참가했었다.
그 때 화산파 당주와의 불화가 있었는데, 직후 사용한 절기가 무림의 날씨를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불기 시작한 한파와 폭설은 장장 2년이 다 되어가도록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리 삐졌... 아니, 화가 난 건지."

화산파 당주가 사망한 지금 와서는 알 방법이 없었다.
한편, 빙신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빙신녀 설빙희가 빙신 설빙절을 뵙습니다."
"들어오거라."

빙신녀(氷神女)는 빙신의 딸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명으로, 일류 고수인 그녀조차 빙신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음을 의미했다.
그런 그녀가 빙신을 찾은 이유는 빙신이 시킨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좀 찾아 봤느냐?"
"...."

빙신녀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빙신은 한탄했다.

"이번에도 허탕이란 말인가...."
"아버님, 외람되오나 이제 진실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喝!!! 어찌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그 사실을 밝혔다간 우리 가문은 무림공적이 될 지도 모른다!"
"하오나..."
"썩 물러가거라!"
"알겠습니다."

무림에 찾아온 겨울... 그것은 빙신의 절기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빙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의 강함이었다.
초절정에 오른 후로 자신과 동등하거나 더 강한 상대와 겨뤄보지 않았던 탓에, 자신의 수준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괜히 상대가 좀 강하겠거니 하여 절기를 쓴 게 이런 결과를 낳을 줄은...

"하 시발... 나도 멈추고 싶다고...."

담배를 뻑뻑 피우는 빙신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억울함이 배여 있었다.

'그때 그 새끼가 도발하지만 않았어도 힘조절 했는데...'

그 새끼라는 말은 故 화산파 당주를 의미했다.
화산파 당주는 절정이었는데, 빙신이 초절정에 오른 걸 질투하여 비꼬고 내려치는 바람에 빙신이 쓸데없이 힘을 쓴 것이었다...고 빙신 본인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본인도 화산파 당주 앞에서 여봐란 듯이 절기를 자랑할 속셈이었기 때문에 이 결과는 필연이었다.
그저 심마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 때문에 자기 좋을 대로 변명할 뿐.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이 겨울을 멈추고자 가족들을 통해 몰래 정보를 찾고 있었으나 멈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무림에선 화산파 당주와의 불화 때문에 화가 나서 무림맹 전체에 천벌을 내린 게 아니냐는 풍문이 돌았다.
고수들은 워낙 괴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이가 많으니, 예순이 넘게 다 큰 남정네가 사사로운 다툼 가지고 이런 생떼를 부리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실을 함부로 밝힐 수도 없게 된 진퇴양난의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어쩔 수 없군... 이젠 정말 이 방법 뿐이다."

담배를 다 피운 빙신은 식솔들에게 폐관수련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이미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 뭐가 아쉬워서 폐관수련을 한단 말인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돌파한 사람이, 초절정마저 초월하려 하는가.
그가 폐관수련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무림 전역으로 퍼졌다.

무림인들은 최고존엄의 자리에 올라서도 끝없이 정진하는 그의 모습에 깊은 감동과 영감을 받아 너나 할 것 없이 수련에 들어갔다.
한 사람의 폐관수련이, 무림맹 최대의 적이 사라져 의욕을 잃은 자들을 구원했다.
무림맹주 맹공이 역시 눈물을 흘리며 지금껏 고깝게 보고 있던 사실을 후회하다 수련에 들어갔다.

실제론 '씨발 내가 화공도 배워서 초절정 화공 절기로 겨울을 끝내겠다!!!' 라는 터무니없는 발상에서 시작한 폐관수련이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2년 후... 여전히 겨울은 끝나지 않았지만 빙신 설빙절의 폐관 수련은 끝났다.
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 문 밖에서 기도하고 있던 수많은 무림인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설빙절은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으나, 갑자기 밀려드는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찔끔 훔치고는 입을 열었다.

"나 설빙절이, 이 영원할 것만 같은 겨울을 끝내겠노라!"

사람들이 또 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이야아압!!"

설빙절이 공중에 떠오르며 주문을 읊었다.

"수습생! 대마법사! 메아리! 환영물약!"

주문이 끝나고, 빙신은 마침내 절기의 명칭을 외쳤다.

"무한염구(無限焰球)!!"

빙신이 치켜든 양 손에서 거대한 불꽃의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불꽃의 덩어리는 점점 작아져 한 점으로 수렴하다가, 이내 폭발하여 수천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대굉건(大轟乾)..."

그러자 한파와 폭설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겨울이 드디어 끝나다니...
사람들은 빙신에게 감사의 큰절을 하며 그에게 새로운 이명을 붙였다.
불꽃을 다루는 빙신... 염빙신(炎氷神)...!

축제가 열리고 모두가 염빙신의 귀환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수 시간만에 날씨가 급격하게 더워졌다. 아니, 더움을 넘어 뜨거워졌다.
사람들은 절기의 여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뜨거운 날씨가 일 년을 넘어가게 되자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헉... 헉... 설마... 이번에는 여름으로 복수를...."

더위를 견디지 못한 무림인들이 속속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경(化境)에 올라 추위와 더위를 느끼지 못하는 설빙절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으나, 초절정을 넘어선 화경의 위력으로 발산된 절기... 설빙절은 이번에도 힘조절에 실패한 것이었다.

"아버님!! 지금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염빙신녀가 된 설빙희가 찾아와 염빙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염빙신은 자신의 빙공과 화공을 사용해 무림을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하려고 해도 컨트롤이 어려운 탓에... 그는 매 해마다 내내 위력과 비율을 조절하여 절기를 사용했다.

화경에 이른 탓에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반영구적인 생명을 얻었기에, 그는 그만 지쳐 계절 그 자체가 되고 말았다.
동양에서 계절을 나누는 말로 절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 이 때부터였다.
그러니 앞으로 날씨가 좆같을 때는 염빙신을 떠올리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