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링크 삭제 이동 목포시 (r4 편집)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 기울임 취소선 링크 파일 각주 틀 == 역사 == 목포가 원래부터 독자적인 행정 구역을 가진 것은 아니었고, 무안 지역과 한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었다. 구한말 목포항이 개항하고 무안군을 목포부로 개칭하면서 목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추후 1914년에 도시 지역이었던 목포부 부내면 중에서도 일부만 목포부로 두고, 나머지 지역은 전부 무안군으로 환원했다. 이것이 목포-무안 분리의 시작이다. 목포는 당시 군산과 함께 전라도의 유이한 부였다. 나주평야의 곡물 수탈이 목포항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목포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고 단기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광복 시점에서 전라도의 부는 목포, 군산, 광주, 전주 뿐이었다. 당시 남한에서는 큰 도시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큰 도시였다. 1949년 8월 17일 목포부에서 목포시로 고쳐졌다. 광주의 빠른 성장세 때문에 광주와 격차가 심했지만 전남 제2도시 타이틀을 꼭 쥐고 있었다. 1973년 무안군 이로면 8개 리 중 5개 리를 편입했다. 1986년에 나머지 3개 리 중 2개 리를, 1989년에 이르러서야 원래 이로면 지역을 온전히 편입했다. 이후 간척을 제하고는 목포시의 추가 확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5년~1995년 기간 동안 목포시는 인구 10만에서 24만으로 성장했으나, 이것은 목포의 개발압력을 행정구역이 따라가지 못해 성장동력만큼 크지 못 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동 시기에 여수와 순천은 각각 18만, 17만까지 성장하여 통합 때까지 20만을 채 넘기지 못 했다. 결국 행정구역 추가 확장이 없자, 아예 시계를 넘어선 남악신도시와 대불산단까지 시가지를 확장하였다. 이에 따라 신도시로 인구가 이주하면서 목포시의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지만, 도시로서 목포는 꽤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변경 사항 요약 약관 동의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4.0 국제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문서를 하면 문서의 편집 역사에 (18.117.140.183)가 기록되며 이에 .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