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전에 있던 전투 중 가장 처절한 전투였다. 

천살 한 명을 상대하는 데에 천우맹의 중진 다수가 갈려나갔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당소소는 문득 하늘의 틈새를 벌린 듯한 초승달을 발견했다. 


달이 작은지라 밤은 어둑했고, 여기저기 곡소리가 울렸다. 

당소소 역시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어서는 안 됐다. 눈물을 흘릴 시간에 한 사람을 더 살려야만 했다.


지금 흘린 눈물이 슬픔을 덜어도, 그로 인해 살리지 못한 이들은 더 큰 후회를 불러올테니까.



당군악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은 초승달이 그보다 조금 더 채워진 사흐레가 지난 밤이었다.


*  *  *


"사형."

"... 응. 무슨 일이야."


뭐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가 죽어서 슬프다고? 그게 너무 괴로우니 한 번만 안아달라고?


그렇게 울며 그에게 안기려고 했다. 

그 넓은 품에 안기면 잠시라도 슬픔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러나 마주한 것은 너무나도 초라한 뒷모습이었다. 어깨가 축 쳐진 채 무기력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청명의 모습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해 온 것인지. 

제 아픈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그를 더 크게 상처줄 뿐이라는 걸.


당소소는 그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이내 그녀는 청명이 앉은 자리 옆에 앉아 그에게 머리를 기댔다. 축 처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형."

"응..."

"우리, 돌아가면 혼인할까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 마음을 알았다. 

눈부시게 빛나 사랑을 약속하는 마음을.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면, 영원히 당신에게 고백하지 못 할 마음을.


그제야 당소소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는 웃음이었다.


동시에 그 때, 청명은 알 수 있었다.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구나.

정말 지독히도 사랑하고 있구나.


네가 말한 사랑의 끝이 어떨지 가늠할 수 없지만, 심장이 하늘의 끝을 내달리듯 박동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 수는 없을 테니.

내가 없는 언젠가, 네가 많이 아파하지 않아야 할텐데.

그러려면, 이 마음을 받아서는 안 될텐데.



그래. 


단지 두 음절을 뱉어내기가 너무나도 무겁고 힘겨웠다.


"잠 좀 자라. 너도 의원이기 전에 사람이야. 몸 좀 챙기라고."


당소소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가늠이 갔다.

그러나 차마 그걸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돌리고 몸을 일으켰다.


*  *  *


그렇게 달이 차올랐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달이 차고 기울고 또 차고 기울고... 그러던 어느 날.

달이 이지러진 곳 하나 없이 둥그렇게 뜬 어느 보름.


청명은 스스로 현종에게 찾아가 절을 올렸다.


"장문인."

"안 된대도! 난 결코 허락 못 해준다!"

"아시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되는...!"


현종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힘없이 의자에 몸을 뉘였다.

청명은 말없이 웃음을 지으며 뒤돌았다.


이 이상은 아무 의미 없다. 결국 천마와 결착을 내야 하는 것은 그 자신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청명은 홀로 산문을 나섰다.

모든 것을 사랑했다. 화산에 존재하는 모든 걸 사랑했다.

그리고 죽을만큼이나 사랑했다. 


마지막 미련을 떨쳤다고 믿고 앞으로 고개를 든 순간.


그건,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죽어가고자 하는 고결하지만 오만한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당소소가 울고 있었다. 모든 걸 직감한 듯 쓰러지며 흐느꼈다. 

이지러지는 그 눈동자만큼이나 숭고한 희생을 향한 의지가 박약해져갔다. 


"소소야."

"아, 아니잖아요... 왜 혼자 가요... 왜... 응? 아니라고 해요... 제발..."

"... 소소야."

"왜 맨날 사형만 희생해, 왜! 맨날 제일 많이 다쳐오고, 몸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굴더니, 이러려고 그런 거였어요? 그래?"

"... 그게 내 사랑이야."

"..."


그녀의 눈이 잠시 멍해졌다. 심연을 허우적대는 듯한 표정은 잠시간 빛을 본 듯 반짝였다, 이내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치듯 무너졌다.


"이게... 나를 향한 사형의 사랑이에요?"

"그래."

"... 사랑해? 나를?"

"... 그래."

"사랑하면 어떻게 이래요... 나를 사랑하면..."


얇은 여체는 힘없이 그에게로 쓰러졌다. 더 이상 짜낼 힘도 없다는 듯한 발악만이 남은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그는 그녀를 제 품에 안았다.


"... 속상해. 너무 속상해요, 나."

"응."

"왜 말 안 해줬어요... 사랑한다고..."

"네가 더 속상할테니까."

"... 하."


그녀가 이내 바람빠진 조소를 뱉어냈다. 

청명을 사랑했다. 매일 다쳐오고 골치아프게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는 아이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사랑했다. 

그래서 사랑했다. 

그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당소소는 한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그의 이런 점 마저 사랑하고 말아버리는 머저리였으니까. 

아무리 상처주고 슬프게 해도 자신을 위한 작은 한 조각의 행동에도 사랑에 잠겨 어쩔 줄 모르는 미련한 여자였으니까.


"... 우리, 다 끝나면 혼인해요. 화산도 떠나서, 아니... 사형이 싫으면 화산에 있어도 돼요. 하지만 괜찮다면... 서쪽으로 가 보고 싶어요. 비단 길을 따라서 저 먼 곳으로, 사형이랑 같이."


눈물이 흘러 볼을 타고 아득하게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떠난다는 정인을 붙잡지 못하는 미련을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한이 맺히는데. 


"그 땐... 날 아껴줘요. 날 가장 아껴줘요. 사형이 가장 아끼는 것보다 날 조금만 더 아껴주세요. 그보다 덜 사랑해도 좋으니까... 그건 마음대로 안 되는거니까... 그냥 조금만 더 아껴주세요. 전 그거면 돼요. 그니까..."

"알았어."


당소소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 

짙은 매화향이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섰다. 


"살아서 돌아올게. 부인."


당소소의 입에서는 짠내음이 났다. 눈물이 섞여서 그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