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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야.




 "영웅" 렉스 일행의 활약으로 무사히 마왕군을 물리친지 약 10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네. 카린 추기경... 다음 서류입니다. 전사자 가족에 대한 위문 관련 서류입니다."


"..."




 모두가 잠든 밤중에, 문관복을 입은 두 사람이 초췌한 표정으로 묵묵히 일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촛불에 희미하게 비춰진 석조 테이블 위에는 흘린 잉크도 그대로인 채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 서류가 특별 사례금, 이 서류가 유족 지원금 청구, 이 서류가 부상자 기금 관련 서류입니다. 각각 절차가 다르니까 기입 방법을 잘 이해하고 시작하세요. 절차는 서류 맨 위에 자료로 놓여 있으니까요."


"......"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눈 밑에 거대한 다크서클을 만든 갈색 머리의 아직 어린 티가 남아있는 소녀였다. 자신의 키보다 높은 서류더미에 둘러싸여 눈빛을 잃은 채 조용히 서류 기록을 계속하고 있다.




"...... 저기, 엠마."


"네, 카린 씨?"




 그 옆에 앉아 있는 것은 독특한 사투리를 쓰는 교회 문장을 단 소녀였다. 어울리지 않는 문관 모자를 쓰고 마찬가지로 눈빛을 잃은 채 어린 소녀에게 건네받은 서류 처리를 계속하고 있다.




"...... 나, 이 일 그만둘래."


"그럼 지금 맡은 일을 마무리한 후 후임자를 준비해 주세요. 후임자 인수인계가 끝나기 전까지는 계약상 그만둘 수 없습니다."


"...... 아, 알겠어 ......."




 카린의 투정을 엠마는 무자비하게 잘라냈다. 수녀는 절망적인 표정 그대로 떨리는 손으로 서류 맨 위의 종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담담히 더 적은 나이의 소녀가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일단 나이는 더 많은 카린으로서는 엄청난 양의 일에 투정을 부리면서도 버릴 수는 없었다.




"쓸데없는 소리할 시간 있으면 서류를 한 장이라도 더 처리하세요. 추기경 되시지 않았어요, 카린 씨?"


"...알겠어. 근데 왜 하필 내가..."


"미노 씨를 규탄할 때 당신의 수완은 잘 봤으니까요. 정보 수집, 자료 정리에 공작 은폐까지. 당신은 분명 문관 적성입니다."




 후후후, 하고 망가진 목소리로 엠마는 카린을 비웃었다.




 페니 진영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근육덩어리들이었다. 소수 세력이었기에 페니가 이끄는 의용군은 지금까지 계속 엠마 혼자서 운영해 왔다.




 군대의 두뇌 노동을 엠마에게 맡긴 대가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막상 정권을 잡아보니 새 정권의 문관은 무능하거나 미노의 앞잡이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쿠데타 때 페니 편에 붙었던 귀족들 중 몇 할은 미노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었다니 탄복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엠마는 렉스 일행의 두뇌 담당 카린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녀를 '대죄인 미노를 고발한 공로'로 추앙하고 떠받들어 추기경에 임명한 것이다.




 이는 렉스 진영에 권력을 쥐어주는 것으로 페니파와 영웅 렉스의 친밀함을 어필하고, 옛 미노파에 대한 견제의 의도를 담은 인사였다.




"...정말 이게 끝나긴 하는 거야? 4일 전부터 밤새 일하고 있는데 서류는 점점 늘어나고 있잖아."


"전후 처리라는 건 진정될 때까지 이 정도는 당연합니다. ...사실 전시 중에 더 바빴는데, 그 괴물은 혼자서 다 해내더라고요."




 추기경에 임명된 초기에는 주위의 축하를 받아 기분이 좋았던 카린이었지만, 그것이 지옥행 편도 티켓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눈빛을 잃은 엠마에게 호출당한 4일 전이었다.




 성급했다. 추기경이라는 건 앞으로 평생 "민중의 노예"로 살아가는 증표인 것이다. 그것이 지금 카린의 심경이었다.




"...아아, 맞다. 확실히 왕도 변경에 엄청나게 일 잘하는 전 문관이 있다고 하더라.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좀 납치해서 도와달라고 하자."


"안 됩니다. 그 여자는 모든 권력을 박탈하고 두 번 다시 국정에 관여하게 해서는 안 돼요. 그렇게 페니 씨가 결정했으니까요."


"......"








 마왕 마돌프를 3명의 영웅이 쓰러트린 후,




 이전 왕이 살해당하고, 그 뜻을 이어 새로이 왕위에 오를 것을 선언한 페니에 의해 미노는 죄에 물어졌다.




 그 죄란 즉, 왕을 위험에 빠트리고 결과적으로 죽게 만든 군사로서의 능력의 죄였다.




 성 아래 마을 사건은 그녀의 공작으로 인해 죄에 잡히지 않았다. 또한 죄를 물어버리면 국민들에게 큰 혼란이 일어나고 국가에 대한 불신감이 커질 거라는 예측도 있었기에, 표면화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엠마는 판단했다.




 그리고 정당한 절차에 따라 재판이 열렸고, 미노는 왕을 살해당한 죄를 물어졌다. 그녀는 군사 겸 대장군이라는 지위를 박탈당하고 아무런 권력도 없는 일반인으로서 왕도 교외의 한 주택에서 은거하는 형식이 되었다.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것은 전후 재판에서 미노 전 대장군이 페니를 응시하며 한 말이었다.




"새로운 왕 페니, 너가 그 자리에 오른 이상 언젠가는 결단해야 할 때가 올 거야.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고 전체를 지킬 것인지, 작은 희생조차 용납하지 않고 전체를 위험에 빠트릴 것인지."




 전후 페니에 의해 구속되어 많은 귀족과 정무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대의 군사로 평가받은 미노는 미소 지으며 다음 '자신'의 입장이 된 엠마에게 시선을 주고는,




"그 답을 나는 땅속에서 지켜볼 거야. 어느 쪽을 선택하든 바라건대 ────"




 천천히 눈을 감고, 팔이 묶인 채 창으로 그 몸을 위협당한 소녀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국민에게 행복이 깃들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법정을 떠났다.














"놓치면 안 됐어. 그 여자에게 죽을 때까지 정무를 맡겼어야 했는데."


"이미 여생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마지막쯤은 쉬게 해 주라는 게 페니 씨의 뜻이에요."


"시끄러워, 그 여자도 엄청나게 저질러왔잖아. 지금 당장 납치해서 구속하자고."


"미노와 동거 중인 멜로 전 장군을 돌파하고 납치할 만한 인재라면 최소한 검성 님 정도는 움직여야 할 텐데요."


"...아악!!"




 카린으로서는 불만스러운 판결이었다.




 그렇게 역겨운 사건을 일으켜 놓고 미노는 사실상 무혐의다. 하지만 페니가 내린 결론을 뒤집을 만한 권력을 그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 여자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서슴지 않아."


"네."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써 버려도 된다고 봐. 오히려 본인도 그걸 바랄 걸."


"바라기는 했죠. 나 같은 건 죽을 때까지 써 버려, 살아있는 한 일을 도와주겠다고."




 미노는 '근신' 판결에 불만인 듯했다. 어차피 죽어가는 목숨이지만 살아있는 동안쯤은 유효하게 써야 한다며 화를 냈다고 한다.




 군사인 그녀에게 자신이라는 인간조차 써버릴 장기말 따위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그 냉철한 생각을 부정하고 싶었던 게 우리였으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예전과 달리 왕도도 발전해서 재정에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버려왔던 '소수'의 희생마저 주워 담아 구해야 합니다."




 엠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린을 향해 타이르듯 말을 이었다.




"짜증 나지만 그 괴물 덕분에 국정은 의심할 여지 없이 발전했어요. 겨우 몇 년 만에 페디아의 국력은 몇 배로 뛰어올랐죠."


"..."


"그 덕분에 앞으로는 잘만 하면 우리는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 엠마는 미노가 싫었다.




 평범한 상인의 막내딸에서 페니의 의용군에 참가해 출세한 그녀는 미노의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민중의 입장은 약하다.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냉혹한 생각을 부정하고 싶었고, 국가가 민중을 지켜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디아가 약소국이었던 과거의 정세에서는 사소한 민중 모두를 지켜내는 건 자원 면에서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미노야말로 필요한 인재였고, 그녀 덕분에 많은 죽었을 목숨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죠."


"뭐, 예전 이 나라는 확실히 엉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그런 냉혹한 군략은 필요 없어요. 소수의 희생을 감수하는 미노의 정책 덕분에 이 나라는 소수의 희생마저도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거예요. 그래서 그녀가 실각한 이상 우리는 미노를 써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엠마는 미노의 성과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상업과 금융에 밝은 엠마가 미노의 정책에 감탄하고 말을 아꼈을 정도로 미노의 능력은 뛰어났다.




 이렇게 해 준다면 상업이 더 발전할 텐데 하는 상인의 입장에서 평소 늘 생각해 왔던 것들을 미노는 모조리 해내고 있었으니까.




"알았어. 그럼 나 좀만 자고 와도 안 돼?"




 엠마의 설득에 마지못해 납득한 카린은 화제를 바꿨다. 4일째 밤샘은 역시 힘들었다. 지금까지 서류 일 같은 걸 해 본 적 없는 카린으로서는 이제 한계였다.




"그러지 마세요. 당신이 자면 따라잡을 수 없게 됩니다. 이 서류가 내일까지 끝나지 않으면 부하들 모든 일이 중단됩니다. 자리를 비우고 몸을 풀어주는 정도로 해두는 게 무난할 겁니다."


"...안 돼?"


"업무가 중단되면 검성 님께 폐를 끼칠지도 모르겠네요."


"..."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다고 느낀 후부터가 진짜라는 걸 엠마는 잘 알고 있었다.




 참고로 이 후, 카린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던 건 3일이 더 지난 후의 일이었다.
















































"플라체!! 준비는?"


"끝났어. 자, 성으로 가 볼까."




 마돌프와의 결전으로부터 1개월 정도. 나는 예복으로 갈아입고 시간에 맞춰 렉스와 메이와 합류했다.




 놀랍게도 오늘, 우리 일행은 모험가 생활을 그만두고 페디아 제국 국군에 소속하게 된 것이다.




"난, 마음대로 하는 모험가 생활이 꽤 좋았는데 말이야."


"엠마 한테 부탁받았잖아요. 우리가 없으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대요."


"뭐 지금은 나라의 지도부가 크게 바뀌어서 힘든 시기니까. 도와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며칠 전, 우리는 페니와 엠마에게 불려가 왕이 죽었다는 것과 다음 왕은 페니라는 걸 전해 들었다.




 그래, 그 쓰레기 로리콘이 왕이 되어 버린 거다. 분명 곧 이 나라에 어린 소녀가 넘쳐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로리코니아로 나라 이름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 저 녀석이 왕으로 괜찮은 건가?"


"괜찮지 않을까? 그 연설 들었잖아."




 그리고 페니는 성 위에서 백성들을 향해 연설했다. 그 연설이 평판이 되어 지금으로서는 페니 왕 즉위에 큰 반대 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전 왕의 아들이 페니의 왕 즉위에 반대하지 않은 것도 컸다. 그는 무슨 일인지 과거에 페니와 한바탕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열렬한 페니 신봉자라고 한다.




 그 소아성애자, 무슨 짓을 한 걸까.










'......내가 인간 위에 설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건 너희들이 판단할 일이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주위에 휩쓸리지 말고, 내가 따라갈 만한 인물인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제군들 각자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주게.'




 페니는 백성들에게 그렇게 연설했다. 무조건 따라오라는 게 아니라 따라올지 말지 선택하라고.




'그러니까, 너희들 중에 나를 왕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는 자가 있다면 나에게 직접 따지러 와라. 날 쓰러트릴 자신이 있다면 내 목숨을 노려도 좋다.'




 그 거구는 자신만만하게 그렇게 내뱉고는,




'다만 ─────'




 자신을 둘러싼 엄청난 수의 군중 앞에서 페니는 눈을 빛내며 높이 선언했다.




'내 정의를 깨뜨릴 수 없는 한, 그 따위 도적에게 죽을 생각은 없다. 날 죽이고 싶다면 날 죽일 만한 정의를 가지고 덤벼 와라."




 그것은 위압이었다. 자신을 암살하는 것을 용인하며, 그 암살자를 향한 말이었다.




'100명이 있으면 100개의 정의가 있겠지. 자신의 정의를 끝까지 지켰다면, 그 앞에 내가 있다면 가차 없이 덤벼들어라. 나와 나를 믿어주는 자들이 정면으로 상대하겠다."




 그것은 결코 농담이나 가벼운 말이 아니었고 페니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당당하게 덤벼들라고.




'하지만 부디 나와 함께 와 주었으면 좋겠다. 제군들이 내 정의에 동의해 준다면 나는 전력을 다해 너희들을 지켜주며 나아가겠다. 너희 모두를 짊어지고, 아무리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절대 버리지 않겠다.'




 사실 이 연설은 의용병 시절부터 그의 특기었다.




 적의 정의를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의와 어느 쪽이 더 옳은지 겨루는 것. 상대가 자신보다 옳다고 납득하면 페니 자신도 주장을 바꾼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길이었다.




 그래서 페니에게 패배한 적들 중에는 그를 원망하지 않고 따르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페니가 이끄는 의용군은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나라도 괜찮다면, 여기 있는 모두를 짊어지게 해 주게.'




 그렇게 말하며 페니는 연설을 마쳤다.



























"로리콘 주제에 제법 말은 한다니까."


"로리콘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에, 엠마를 좋아할 뿐이에요. 클라리스한테도 입을 털었지만 아마..."




 그리고 새 정부로부터 나와 렉스는 대장군직을, 메이는 궁정 마도사직 제의를 받았다.




 미노는 퇴임하고 멜로는 미노를 따르는 형식으로 사직했다. 두 사람은 왕도 교외에 주택을 사서 미노가 죽을 때까지 조용히 살 모양이다. 이로써 대장군 두 자리가 비게 되었다.




 남은 페니도 왕이 되어 버려서 결국 옛 3대 장군이 모두 자리를 비우게 되었다.




"클라리스 정도가 남아 있는 전력이네, 이전 정권으로부터."


"플라체 님이 항복하고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듣고 이번에야말로 죽었구나 싶었죠. 도대체 뭐죠?"


"저 꼬맹이는 어떻게 해야 죽는 걸까."




 그런데 나와 함께 마왕군에 잡혔던 클라리스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마돌프를 쓰러트린 즈음에 걸어서 돌아왔다.




 무슨 일인지 마왕군의 세뇌 기술로 그녀도 세뇌당할 뻔했다고 한다. 하지만...






'크하하하하!! 나야말로 마왕군 제일의 마법사 클라리스 님이다!!'


'오오!! 세뇌에 성공했나!!'


'인간들을 모조리 학살해 주마... 응, 왠지 머리가 아프네... 아가, 가가가가가, 삐--'


'뭐, 뭐야? 이 인간은 망가진 톱니바퀴 같은 소리를 내면서..."'


'인격 복원 중... 인격 복원 중... 헉!? 나는 도대체!!'


'말도 안 돼, 정신이 돌아왔잖아!?'


'진정해! 서둘러 다시 세뇌하자!'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세뇌 대책을 세워놓은 꼬마는 끊임없이 세뇌에 저항을 계속했다고 한다.




 뭐지? 그런 기술이 있다면 나한테도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는데.




'무리야, 지금 우리 기술로는 저 녀석을 세뇌하는 건.'


'어쩔 수 없군, 죽이는 수밖에.'




 반나절 정도 분투하고 마족들은 결국 세뇌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클라리스의 처형을 결정했다.




'히야아아앗!!!'




 마족들은 모여들어 죽은 동료의 원수와 잔혹한 전투 본능에 이끌려 그녀의 사지를 뜯어내고 목을 잘라냈다고 한다. 하지만......




'가가가, 삐--. 육체 복원 중... 육체 복원 중... 헉!? 나는 도대체!?'




 개량된 클라리스의 수수께끼 마법 덕분에 아무리 죽여도 금방 클라리스는 부활했다고 한다.




'우와아아!! 뭔가 재생했어!?'


'히익! 서둘러 한 번 더 때려잡아!'


'괴, 괴물!?'




 클라리스는 지난번에 목이 잘려 죽을 뻔 했기에 이번에는 폭사해도 죽지 않도록 마법을 개량했다고 한다. 정신 나간 짓이다.




 역시 마족들도 대혼란에 빠졌다. 인간이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 거야. 아무리 죽여도 죽일 수 없다면 이길 수가 없잖아.




 이렇게 클라리스의 감시와 세뇌를 맡은 마족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쳐 버렸고, 그녀는 스스로 구속을 풀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는 왕도성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도대체 뭘까, 저 애는.




"클라리스 같은 건 저런 놈이에요. 진지하게 생각하면 손해 보는 것뿐인 비상식이에요. 저는 녀석이 화염마법으로 증발해도 걱정 안 하기로 했어요."


"메이, 달관했네."


"그런데 말이야. 궁정 마도사로 임명된 메이라는 마도사도 병사들 사이에서는 '걸어 다니는 대마족 최후 결전 병기'라고 불리며 클라리스와 나란히 비정상적인 존재로 취급되고 있대."


"...에? 그건 처음 듣는데요. 에?"




 나는 세뇌당해 있어서 보지 못했지만,




 들어보니 메이는 말도 안 되는 위력의 마법을 쏘아댔다고 한다. 꽤나 불안정했다고 해서 본인도 돌이켜 보면 "우연히 제어할 수 있었던" 상태였다고 한다.




 조금만 잘못되었어도 메이는 왕도를 통째로 날려버릴 뻔했다고 한다. 잘도 그런 마법을 쓸 생각을 했구나.




"엄청 언니한테 혼났어요. 마력에 취하는 건 미숙자의 증거래요. 솔직히 저 같은 게 궁정 마도사여도 되는 걸까요."


"엠마가, '일단 검성 님 일행 전원을 정부 간부로 삼겠습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우리 진영의 유력자가 필요하니까요.'래 아마 거절해도 억지로 취임시킬 걸. 장식이라도 좋으니까 이름 좀 빌려달래."


"...선전이라는 건가? 미노랑 수법이 똑같네, 엠마."


"그렇게 나쁘게 말하지 마. 뭐, 나 같은 나라의 간판이 필요한 거겠지."




 그러고 보니 엠마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던 것 같다. 원래 렉스는 민간 최강 모험가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니까.




'마족을 때려눕힌 지금, 다음 위협이 되는 건 주변국입니다. 마족의 공격으로 혼란스러워진 틈을 노리려고 하는 하이에나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요. 우리 페디아는 절대 시비를 걸어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걸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 검성 님이나 그 일행들의 이름은 주변국에 크게 퍼져 있으니 당신들의 대장군 취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라고 한다. 페디아를 시비 걸어서는 안 되는 나라로 여기게 하는 게 엠마의 방침인 모양이다.




"뭐, 우리는 장식용이야. 실무는 엠마랑... 뭔가 카린도 나라의 중추로 일하게 된다던데, 그 둘이 주로 해 줄 거래."


"이제 카린 씨가 추기경이니까요. 어느새 나라의 초 대단한 분이 되어버렸어요."


"엠마가, 악인의 생각을 아는 카린은 정부 쪽에 있으면 상당히 유능하대. 뭐, 저 녀석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낼 거야."




 헤에. 왜 나한테 두뇌 노동 일이 없나 이상했는데 카린이 해 줄 거였구나. 나나 렉스는 생각하기보다 베는 게 특기니까 적재적소라는 거네.




"자, 가자. 곧 취임식이야."


"그렇네요, 렉스 님."


"또 그 융숭한 의식에 참석해야 하는 건가."


"플라체 씨, 상대는 페니 전 장군이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고 보니 왕은 로리콘이었지."




 왠지 모르게 긴장감이 사라졌다.






















































"흠, 재밌네. 플라체."




 한때 국군 최악, 이 나라 최고봉의 회복술사 미노가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구나. 너가 그 '바람베기', 렉스에게 흑성을 남긴 그 민간 모험가였구나. 그 활약도 납득이 가네."


"여자 몸이긴 하지만 말이야."


"흠, 원래 너의 검은 힘이 약해도 다룰 수 있는 거 아니었어?"




 미노가 해고되어 교외에 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몰래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많은 희생을 치르며 지금의 페디아 발전에 기여한 괴물. 동시에 내 "소망"을 이룰 방법이 있다면 그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몸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가능해?"


"...음, 미안하지만 어려울 것 같아."


"알겠어."




 그래. 자리바가 죽은 지금 나를 남자로 되돌릴 수 있는 건 이 나라 의료의 정점에 선 이 여자밖에 없다.




 그래서 안 될 수도 있겠지만 부탁해 본 건데... 역시 어려운 모양이다.




"그나저나 뇌 이식이라니.... 그건 흥미가 있었는데, 플라체와 좀 더 친해질 걸 그랬네."


"무슨 뜻이야?"


"내 몸은 뼈의 조혈조직이 종양화되고 있거든. 건강한 몸을 만들어서 뇌를 이식할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완치되는 거지."


"에, 진짜로?"




 그렇구나. 뇌를 이식할 수 있다면 미노도 건강한 클론을 만들면 완치되는 거구나.




"...후후. 뭐, 너에게 사용된 기술이 정말로 뇌 이식이라면 말이지."


"응?"


"이식할 수 없어. 뇌 같은 건."




 미노는 싱긋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살짝 슬픈 듯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응, 역시 그런 거구나. 자리바 라는 좀비는 열심히 한 거네."


"...뭐라는 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너는."


"인간에게는 면역이라는 게 있어.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한다거나 하면 굉장한 거부반응이 일어나. 유명한 이야기로는 죽은 다른 모험가의 팔을 치유마법으로 억지로 붙였더니 온몸이 부풀어 오르다 죽었다든가 말이야. 완전히 유전자가 일치하는 클론이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장기는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없어."


"...?"


"그래서 자리바는 뇌 전체를 이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야. 중요한 건 인격과 기억이지 예를 들어 손바닥을 움직이는 기전이나 운동의 원활함을 관장하는 부분 같은 건 원래 육체의 뇌에 맡기고 사람으로서 필요한 부분만 이식하기로 한 거지. 거부반응을 작게 하고 싶었던 거겠지."


"어려운 얘기를 하네."


"...자리바는 뇌의 인격을 관장하는 곳만 이식하려고 한 것 같아."


"과연."




 요컨대 뇌를 통째로 바꾼 게 아니라 잘라서 일부분만 바꾼 건가.




 ...... 상상하면 무서운데.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에게 이식된 뇌 조직은 이미 죽었어."


"...응?"


"응. 확실히 말할게. 자네가 한때 '바람베기'의 시체에서 이식받은 조직은 죽어서 지금은 활동하지 않아. 자리바의 실험은 실패한 것 같네."


"뭐!?"




 어.......?  뭐라고.




 자리바의 시술이 실패했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플라체 씨는 지능을 관장하는 부분을 이식받은 것 같은데, 완전히 죽어서 활동하지 않고 있어. 최근에 조금 머리 회전이 둔해진 적은 없었어?"


"아니, 전혀."


"...그러면 원래 지능이...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래서 기억과 관련해서는 '기억 이식 마법'으로 부여된 거겠지. 너의 대뇌변연계에 손을 댄 흔적은 없었으니까 기억 이식에는 원래 존재하는 마법을 사용한 거야."


"...저, 저기. 그러니까 미노는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미안, 충격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말할게. 너는 모험가 '바람베기'가 아니라 그의 기억을 가지고 지능이 떨어진 자리바의 어린 모습을 한 클론이라는 거지. 뭐, 인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 하아아아아!!!?








"아마 자리바는 인간의 뇌를 통째로 이식해서 거부반응으로 대부분의 실험은 실패했을 거야. 그래서 일부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바꿨지만 기억을 관장하는 부위가 어딘지 몰랐어. 그래서 다양하게 시도한 거라고 생각해."


"..."


"그래서 대부분의 다른 실험체들은 이식된 '생명 유지에 필요한' 부분이 썩어서 사망했지만 플라체는 우연히 지능 부분만 이식되어 죽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야. 자리바는 그걸 성공이라고 여겼겠지."


"...하?"


"즉, 역시 내가 완치될 방법도 없고 플라체가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해. 아니, 오히려 지금의 몸이야말로 '원래 몸'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 그럼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결국 나는 자리바인 건가? 아니... 자리바가 아닌 건가? 아니... 역시 자리바인 건가!?






"그럴 리가. 그럼 나는 대체."


"플라체 잖아?"


"에?"




 정체성이 무너져 생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을 때, 미노는 단순명쾌하게 내 의문을 해소시켰다.




"자기 자신이란 건 남이 어떻게 보느냐와는 상관없어. 요는 자기가 누구인지는 스스로 정하는 거야."


"하, 하아."


"너가 '바람베기'와도 자리바와도 다른 사람이라면 그건 플라체라는 하나의 인격 아닐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거지."


"..."


"지금의 플라체가 받아들여야 할 건 자신이 '바람베기'라는 남자가 아니었다는 사실뿐이야. 그것만으로 자리바 어쩌고 하는 마족의 일은 잊어버려도 돼. 상관없으니까."


"그, 그런가. 그런 건가?"


"그래."




 그, 그런가. 내가 '바람베기'가 아니었다는 얘기일 뿐인가, 요컨대.




"그러고 보니 플라체가 밝힌 제자라는 표현, 굉장히 잘 어울리네. '바람베기'의 검술을 계승한 별개의 존재라는 의미니까."


"...오오."


"그러니까 사실상 제자나 마찬가지잖아? 앞으로도 그런 입장으로 가는 게 어떨까?"




 뭐, 뭐라고. 나는 '바람베기'의 제자였단 말인가.




 말하고 보니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




"...아, 고마워 미노. 뭔가 이것저것 알게 돼서 머릿속 정리가 안 되지만."


"천천히 고민하면 돼. 네 인생은 길잖아. 나와는 달리 말야."


"..."


"그런 표정 짓지 마. 병자의 농담이라는 거야."




 그거, 별로 농담이 안 되잖아.




"아아, 하나 조언할게. 플라체. 지금까지 자신이 남자라고 생각해 왔기에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감정에 거짓말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할걸."


"응?"


"지금 한 말이 필요해지는 건 내가 죽은 후일지도 모르겠지만. 뭐,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두라고."




 그렇게 말한 그녀는 처음 보는 것 같은 진심 어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랑이란 건 생각보다 괜찮아, 플라체."


"응?"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신을 유명한 검사라고 잘못 알고 있었던 그저 하나의 소녀일 뿐.




 그 검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에 엄청난 속도로 검술을 연마할 수 있었을 뿐인 일반인.




"...아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겠구나, 이런 거."




 나탈이 들으면 분명 슬퍼할 거야. 렉스도 나랑 미묘한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




 이건 혼자 고민할 수밖에 없어. 고민하고 또 받아들여 나가자.




 몸을 되찾을 방법이 없는 나에게는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으니까.








 아니, '나에게는' 이라고 해야겠지.
















































"아아, 허례허식한 의식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솔직했네."




 페니로부터 받은 대장군 임명식은 매우 간단명료했다.




 예전처럼 형식을 차린 게 아니라 로리콘과 연단에서 악수하고 "앞으로의 세대를 이끌 영웅들을 위해 건배!!"라고 성 안의 병사들에게 잔을 들게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의식은 국민 앞에서 하면 된다. 렉스 일행에게는 일단 우리를 가족으로 여겨 주길 바랐거든.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해 본 거지."


"배려가 있었군, 아저... 왕."


"감추려면 최소한 님이라도 붙이세요, 검성 님."




 여전히 예의를 모르는 친구는 수많은 병사들 앞에서 페니에게 반말을 했다. 엠마에게 째려봄을 당하자 황급히 수습하고 있었지만.




"플라체도 잘 부탁한다. 나에게 힘을 빌려 다오."


"알겠습니다, 로리... 왕 리콘 님."


"그 수습 방법은 뭐냐."




 하지만 렉스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왠지 페니를 왕이라고 부르니 위화감이 굉장하다. 로리콘 개자식이라고 부를 뻔했어. 위험했어.




"플라체 님. '로리콘'은 늘 병사 여러분들도 페니 씨의 애칭으로 쓰고 있으니 수습은 불필요합니다."


"아, 그런 거구나. 잘 부탁해 로리콘."


"그래도 되는 거야!?"




 하지만 페니와 엠마에게는 로리콘은 허용 범위인 모양이다. 다행이다. 내가 예의 없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겠어.




"뭐 아무렇게나 불러다오. 난 권위 같은 거 필요 없어. 내게 필요한 건 함께 걸어갈 동료니까. 권위 같은 게 있으면 한 걸음 뒤에서 걷게 되는 거다."


"...뭐, 그게 아저씨답지."


"검성 님!!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저씨는 자제해 주세요."


"그래, 로리콘 개자식이라고 불러야지."


"플라체 씨!! 당신마저 그렇게까지 말하는 건 아니라고요!!"


"하하하하하!! 전혀 공경할 생각 없는 그 태도야말로 내 동료다운 느낌이 들어 좋군. 대장군직을 맡아 줘서 고맙다, 렉스, 플라체."


"아, 신경 쓰지 마."




 우리의 건방진 태도에 페니는 꽤나 즐거워하며 웃고 있었다. 역시 로리콘, 아이를 좋아하는 만큼 도량이 넓구나.




"자, 마셔라 병사들아!! 우리의 새로운 대장군, 그 두 사람의 문을 여는 건배다!!"




 그 구령과 함께 나는 따라준 와인을 목구멍에 흘려 보냈다.




































"다음은 메이의 취임식이군."


"그건 마도원에서 하는 모양이야. 역시 술은 가져갈 수 없대."


"그건 당연하지."




 그런 식으로 의외로 즐거웠던 의식은 끝나고 다음은 메이의 첫걸음이다.




 궁정 마도사 필두의 비정상적인 언니인 클라리스가 직접 메이에게 지위를 수여한다고 한다.




"메이, 긴장했는데 괜찮을까."


"언니가 어떻게든 하겠지. 내버려 둬. 저 녀석은 걱정 없어."




 보기만 해도 긴장하고 있던 그녀였지만 렉스로서는 걱정이 필요 없는 모양이다. 이 녀석이 더 오래 알고 지냈으니 렉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자, 가자 플라체."


"아, 잠깐 기다려 봐 렉스."


"왜?"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다.




 요즘은 메이가 늘 렉스 곁에 있어서 단둘이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그녀 나름의 소녀 감으로 방해하고 있었던 걸까.




 그래서 이 표창식 타이밍이 되기까지 좀처럼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정리를 해 두려고 해. 결전의 날, 너에게서 마음을 고백받은 걸 그냥 넘어갔으니까."


"으윽... 지, 지금 그거냐."


"아니, 거절할 거면 빨리 하는 게 좋았을 텐데 메이가 착 달라붙어 있어서. 이 타이밍 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거절한다고..."


"미안해 렉스. 너를 그런 식으로 본 적이 없었어."


"아아..."




 싹둑. 이걸로 끝날 이야기니까 더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이상적으로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된 뒤 '나는 바람베기다'라고 밝히고 그대로 이야기를 흘리는 방향이 좋았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졌으니 제대로 거절할 수밖에 없어졌어.




 하지만.




"그래서 말이야. 다음에 둘이서 식사라도 하러 가자, 렉스."


"응?"


"너를 그런 식으로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야. 그런 식으로 보면 어떨지 좀 시험해 보고 싶어져서."




 나는 '바람베기'가 아니야. 내가 누군지.




 성별은 남자로 괜찮을지, 여자인지. 성격은 어떤지, 렉스나 동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나는 나를 알아야만 해.




"어, 어?"


"싫어, 렉스?"


"그, 그런 건. 어라, 거절한 게 아니었어?"


"아아, 지금 시점에서는 나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어. 이런 상태로 '응, 사귀자'라니 이상하잖아."


"...아아. 그러고 보니 넌 엄청 성실했었지. 그렇게 되는구나."




 뭔가 납득한 듯한 표정을 짓는 렉스. 사실 렉스와 사귀는 건 뭔가 거부감이 들지만.




 내 성 정체성이 여성이었다면 분명 나는 렉스 외의 상대를 선택하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상관없으니까, 그날 있는 대로 어필해 봐. 역시 그런 식으로는 볼 수 없었다면 싹둑 잘라버릴 거고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생각해볼게. 네가 할 수 있다면 말이야."


"...크. 크크크, 한 번 해 보자는 거구나 플라체. 즉, 내가 플라체를 사로잡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라는 거로군."


"말했잖아. 기대하고 있다고, 동정 쓰레기 자식아."


"시비 걸고있어? 이 녀석이!!"




 나의 마음 없는 폭언에 얼굴을 붉히며 격분한 듯한 렉스. 그런 친구의 질문에 나는 돌려줄 대답이 정해져 있다.




"아아, 시비 걸고 있어."




 그것은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말.




"자, 승부다. 렉스."




 그리고 분명 영원히 변치 않을 말.










 ──── 그때,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