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었다.

공부... 꼭 해야될까?

검지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의미가 있을까?

중지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었다.

차라리 기술을 배우는 건 어때?

약지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절에 들어갈까?

새끼손가락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난 뭘 해도 안되지 않을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을 뿐.

눈을 가리고 앞을 보지 않으려 했다.

어느새 눈앞에는 20대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10대일 줄로만 알았는데.

그래, 그건 주마등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나이가 생각났다.

내가 30살이 되면 부모님은 80, 산수의 나이다.

10년 정도 남았다.

나야 100세 시대에 태어났지만 우리 부모님은?

군대가 떠올랐다.

10년의 세월 중 2년을 버리는 쓰레기통.

폭력으로 얼룩진 지상 최악의 집단.

내 성적이 떠올랐다.

어중간한 5등급, 가장 잘 맞은 등급은 3등급.

경기도의 집값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노동으로 점철될 나의 일상이 떠올랐다. 피곤에 쩔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 그건 주마등이다.

다시 한 번 내 눈을 눌렀다.

손가락에 가해지는 압력.

그리고 오염.

손가락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비명을 뚫고 소리가 들렸다.

날 똑바로 바라봐.

내가 온다고 죽는 게 아니야.

. 나는, 나는,

너무 두려웠다.

10대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사람들과 부닥치며 사는 것이.

미성년자라는 보호막에서 벗어나는 것이.

나를 바라봐.

난 네 눈앞에 있어.

.

왜 사람은 철이 들어야 하나요?

왜 사람은 어른이 되어야 하나요?

어린 제제와 어린 왕자의 그 물음.

.

아직 손을 떼지 않았다.

다만 어둠속에서 스쳐지나가는 그 주마등을

아직도 보고 있는 가엾은 영혼아.

이 불쌍한 10대들아.

순백이기에 더럽혀져야만 하는 학생들아.

 

더럽혀진 손가락들은 울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아직, 내 손은 두 눈을 가리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