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이나 장소명을 타 언어로 바꿀 때는 원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놓기만 할 것이냐, 아니면 상대 언어에서 말이 되게끔 번역할 것이냐 중에서 선택을 하는데, 나는 이것을 각각 표음주의와 표의주의로 이름하였음.

 

표음주의는 원어 명칭 전체를 원어->상대 언어 표기법을 바탕으로 옮겨적은 것으로, 일본 장소명을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줬는데 미국인이 영어 번역 그대로 물어보면 일본 사람이 못 알아듣는다는 논리에 입각해 일본에서 참 잘 써먹었음. 국회의사당앞역에 Kokkaigijido-mae라고 쓴다던가... 하지만 원어 지식이 없으면 상대 언어 화자는 원어의 발음만 파악할 뿐이지 대략 어떤 장소를 가리키는지, 이게 국회의사당인지 해군기지인지 당최 알 수가 없고, 이는 표의주의의 근거에 해당함. 표음주의 하는 일본도 살짝 찔리는지 나리타공항만큼은 Narita-kuko라고 안 쓰고 표의주의 해서 Narita National Ariport라고 해놨고, 도쿄메트로는 요새 표의주의 표기를 병기하고 있더라.

 

그럼 표의주의는 뭐냐? 원어 명칭을 형태소 분석 후 적절히 상대 언어로 말이 되게 번역하는 것임. 분석했을 때 고유명사인 부분은 번역하지 않고 그냥 발음을 옮겨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일반명사인 부분은 상대 언어에서 그에 대응하는 어휘로 바꿔놓음. 위에서 말한 나리타공항 같은 경우는 '나리타'는 고유명사라 그냥 Narita라고 썼지만 '공항'은 일반명사라 공항을 뜻하는 영어 단어인 Airport를 썼음. 국제공항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National까지 적절히 붙여놨음.

 

근데 상대 언어의 어종에 상관없이 표음이나 표의 중 하나를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체로 중구난방임(...). 일본 같은 경우는 영어 표기에는 표음주의를 고집하지만 한국어 표기에는 표의주의를 한다거나, 반대로 한국은 영어 표기에 표의주의를 하는데 일본어 표기에서 표음주의를 고집한다거나. 한편 중국어는 별도의 소리문자 없이 한자만을 사용하는 것도 있고, 또 한자문화권에선 한자를 보여주면 거진 알아먹기 때문에 한자문화권 특성상 원 한자 표기를 갖다 보여주는 게 음역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함. 그래서 한->중, 일->중은 모두 대체로 표의주의 비슷하게 가는데, 역시 원어 한자 표기가 아닌 표준중국어에서 쓰는 어휘를 쓰는 등 사실상 표의주의로 볼 수 있음.

 

참고로 한국에선 서울교통공사가 일본어를 표음주의로 표기하기 때문에 표음주의가 널리 퍼져있는데, 광주 지하철에서는 일본어를 표의주의로 했음.

 

참고로 본인은 표의주의를 지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