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무위키에서도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이 그리스-터키하면 존나 사이 나쁜 나라인줄 아는데, 솔직히 2019년에 들어 한일관계와 터그관계를 보면 터그관계는 절친임. 그저 축구나 올림픽 경기 할때나 서로 국가 나올때 야유하고 지랄하고 지네 대표팀이 상대나라 못이기며 좀 난리날 뿐.


나는 터키 문화에 꽃혀서 터키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사회학 전공하고있는데, 사실 그 전에도 여러번 그리스에 여행했었고, 짧은 기간동안 답사 겸 인터뷰 해서 살아본적도 있다. 그리스어도 배웠고, 여튼 오늘은 그리스에서 살아본 이야기 좀 풀어놓으려고 한다.


1. 언어

솔직히 그리스인들은 영어 잘 함. 보통 잘하는게 아니라 진짜 잘 함. 심지어 그리스어 문법에 영어 요소들이 자꾸만 유입된다고 그리스 국어원이 경고할 정도로 영어가 흔하고 또 자주 많이 씀. 예를 들면 그리스어로 취미를 뜻하는 단어는 따로 있는데 다들 χόμπι χόμπι 하니까 원래 그리스어 단어를 거의 모를 정도로. - 라틴자로 전사하면 hompi라고 쓰는데 hobi(호비)라고 읽는다. 니 취미는 뭐니? Τι είναι χόμπι σου; 같이.


그리스어 알면 매우 유용함. 원래 그리스인들 친절하고 정 많기로는 터키 뺨치게 유명하긴 한데 그리스어로 알면 더더욱 친절해짐. 나는 콧수염도 기르고 있고 피부도 여기 살다보니 좀 많이 타서 동양인처럼 안보이는건지, 그리스 올때마다 터키사람으로 오해 많이 받는데 그리스어 할 줄 알아서 특별대우 받은 적도 많았음. 예를 들면, 메테오라의 오래된 수녀원에 방문했는데 입구에서 표 주는 수녀님이 그리스말로 "너 어디 사니?" 하고 묻길래, 그냥 대수롭지 않게 "터키 콘야에서 사는데요." 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랬더니 수녀님이 눈을 치켜뜨고 "그럼 목에 걸린 십자가 목걸이는 웬거니?" 하고 묻길래 "가톨릭 신자인데요?" 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수녀님이 성호를 세번 긋더니 뭐라고 짧게 기도하듯이 말하더니만 환영한다고 하는거야. 나는 "표 얼마였죠?" 라고 물어봤는데, 수녀님은 그냥 지나가라고 하심. 덕분에 3유로 굳었음ㅋ 아무래도 내가 터키인 가톨릭 신자인줄 안 모양인데 수녀님은 어디서 사냐고 물어봤으니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 나는.


그리고 그리스어를 배우긴 했는데 솔직히 잘은 못해. 여행가서 가격 투쟁하고, 길 묻고, 간단한 회화나 편지 할 정도지(유럽언어기준으로 B1) 그래서 막히면 터키어 단어 섞어서 쓰는 버릇이 있는데, 한번은 슈퍼마켓 아저씨가 "너 터키에서 왔니?" 하고 묻더라고. 거기서 산다고 했더니 갑자기 유창한 터키어로 이래저래 말거는것도 봄. 고향이 트라키아 지방인데 이웃들이 죄다 튀르크인들이라 터키어도 배웠다더라고.


2. 담배

잊지마라, 그리스는 세계 1위의 흡연국가고 실내흡연 합법인 나라다. 애초에 식당 안에 들어가면 터키에서는 실외 테이블에서만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어있는데 그리스에선 식당 안에도 재떨이 있고 담배도 뻑뻑 피운다. 특히 밤 10시 넘어서 술이랑 간단한 식사거리 파는 따베르나 가면 백퍼 너구리굴이다. 담배 극혐하는 사람들은 그거 감안하고 여행해야함. 나는 흡연자긴 한데, 그리스 있을때 제일 편하기도 했고, 제일 불편하기도 한게 이거였음. 길빵? 당연한거고. 유모차 끌고다니면서 담배 뻑뻑 피는 여자들도 많이 봄. 다만 성직자들은 길빵만큼은 안 하는것 같아.


3. 물가

오랫동안 경제침체를 겪었기 때문인지 물가가 실제 생활수준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야채, 생선, 육류같은건 터키랑 비슷하거나 좀 더 비싼 수준인데, 버스 지하철 같은 공공서비스나 공산품같은건 한국이랑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쌈. 예를 들면 아테네 지하철 이용권이 2009년에는 1유로였는데 2017년엔 1.45유로였음. 그리고 아테네에서 트리칼라까지 기차타고 가는데 4시간 거리인데 31유로. 그 돈이면 터키에선 이스탄불-앙카라 고속철로 두번 왕복할 수 있다. 담배값도 제일 싼게 4유로니까 터키보다 1.5배 더 비쌈. 술값은 그래도 터키보다 싼거 같아. 맅터단위로 파는 하우스와인 1리터당 단돈 2유로다. 그리스와인 알려져있지 않아서 그렇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와인생산국답게 존맛있음. 지금도 순전히 돼지고기랑 와인 가져오려고 그리스 갔다오기도 함.


4. 종교

그리스에 가면 아마 제일 낯설게 보일 수 있는게 도시나 시골 어딜 가든 검은 사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많이 돌아다닌다는거야. 보통 그리스어로 깔빠끼라고 하는 모자의 생김새를 보고 교구사제인지, 아니면 수도사인지 식별할 수 있는데 어느쪽이든 정교회 성직자들은 머리 절대로 안 깎고 수염도 안 깎고 기름. 모자 벗으면 그래서 묶어놓은 머리카락 볼 수 있음.


그리스는 터키랑 달리 국교가 있는 나라이긴 한데, 솔직히 종교적인 분위기는 못느끼겠음. 러시아도 가봤는데 오히려 러시아인들이 더 종교적인거 같아. 다만 문화의 영향은 남아있어서 아줌마, 할머니들이 성당 안도 아닌데 검은색이나 색깔있는 천으로 머리카락 싸매고 가리는거나 일상 생활속에서 하느님, 성모님, 성인들 이름을 주워섬기는건 있음.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랑 비교해보면 그리스인들도 굉장히 활달하고 다혈질적인 성격이긴 한데, 동시에 매우 종교적이고 침착하기도 함. 세르비아도 가봤는데, 대체로 정교회 문화권이 가톨릭, 개신교 문화권보다 더 종교적인듯. 그리고 그리스 어딜 가든 이콘과 성당 십자가, 비잔틴제국 국기는 흔하게 볼 수 있음. 터키랑 그리스가 문화적으로 매우 비슷한 나라지만 가장 큰 차이라면 바로 종교임.


한국에 있었을때 처음 그리스어를 배운 곳이 마포에 있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었고 그러다보니 나도 그리스에 있는 동안에는 찾기 힘든 가톨릭 성당은 못가고 정교회 성당에 갔었는데, 사람들도 친절하고 보통 정교회는 가톨릭 신자들이 자기네 영성체 하는거 안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특별허가로 정교회식 영성체도 해본 적 있음.


5. 교통

그리스도 철도는 터키 몫지않게 빈약한 나라이긴 한데 그래도 주요 도시들은 철도로 갈 수 있어. 아니면 버스도 있긴 한데, 터키나 불가리아랑은 달리 그리스에선 시외버스가 오직 공기업인 ΚΤΕΛ만 있음. 색깔도 청록색으로 존나 단순하게 도색해놔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음. 아니면 터키회사인 Metro나 Ulusoy같은 버스들도 있긴 한데 그건 터키 내에서는 잘 타고 다니지만 그리스 갈땐 안타봐서 모르겠다. 근데 아테네-이스탄불 왕복인데 8시간 걸리고 250리라인가밖에 안하더라고. 다음엔 그거 타볼 생각임.


그리스는 기차랑 버스 모두 빈약한 대신에 배가 엄청 빠방함. 그리스 전국 어느 섬이든 배로 갈 수 있고 배 시설도 좋음. 가격은 싸다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자주 타던 루트는 사모스섬에서 피레아스 가는 노선인데 밤 22시에 배가 뜨면 다음날 오전 7시쯤에 도착하는 노선인데 선실 뭐 그런거 없고 그냥 갑판에서 자리깔고 자겠다 하는 사람들은 단돈 25유로에 탈 수 있고, 제일 싼 선실이 80유로인가 했던걸로 기억함. 배 안에 카지노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별거 다 있음. 기도실도 있는데, 이건 그리스 배라면 다 있는듯. 터키배에도 기도실 없는 배가 없는데, 거긴 대신 이슬람식이고 그리스배의 기도실은 정교회식이라는게 차이일뿐. 아 짧은 거리라면 고속선도 있는데, 크기는 한강유람선보다 좀 작은 수준인데 엄청 빠르다. 배멀미 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대신 일반 페리로 4시간 걸리는 거리를 1시간만에 갈 수 있음. 그리스 여행하면서 배 타고 대항해시대 기분을 만끽하는 것도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으니 배여행 적극 권장함. 술님 제독은 적당히 합시다.


6. 음식

솔직히 나는 그리스요리랑 터키요리의 차이를 모르겠다. 특히 후식류는 거의 똑같고 육류도 터키랑 비슷함. 그나마 차이 있다면 터키에서는 자즉(cacık)을 식사 전에 곁들이는 애피타이저 정도로 생각하고 먹는데, 그리스의 자지키(τζατζίκι)는 오만 요리에 다 찍어먹는 만능소스라는 점이랑 그리스요리에는 돼지고기가 있다는 거 정도? 그리고 생선요리 많은거. 터키에선 생선 거의 안먹거든.


그리스에서 가장 싸게 한 끼 때우고 싶으면 수블라키 삐따 강력추천. 피타 빵에다가 원하는 야채 넣고 (보통 양파, 토마토, 양상추 같은거 나옴) 감자튀김 넣은 다음 돼지고기나 닭고기 꼬치 하나 올리고 자지키를 듬뿍 뿌린 다음 말아주는데 비싸봤자 개당 2유로고, 빵이 워낙 두툼해서 1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함. 맛도 좋음. 생선 요리들은 맛은 있는데, 그리스의 생선요리법은 튀기거나 그릴에 굽거나 둘 중 하나고 생선값이 워낙 비싸서 아마 한국 생각하면 매우 창렬한 메뉴에 절망할지도 모름. 그나마 새우랑 오징어가 저렴한 편임. 아 그리고 그리스는 유럽에서 스페인이랑 함께 유이한 문어먹는 나라이기도 해. 근데 그리스의 문어요리는 삶은 문어나 오븐에 구운 문어 두 종류뿐임. 개인적으론 오븐에 구운 문어가 더 맛있음.


7. 한류?

터키랑 비슷함. 여기도 어린 여자들중에서 한국 드라마 보는 애들 있고 방탄소년단 좋아하고 하는데, 솔직히 터키에 비하면 한류는 좀 덜 알알려진 편임.


8. 인종차별?

솔직히 터키에 비해 지낸 기간이 짧아서 그런건지도 모르겠는데, 한번도 겪어본 적 없다. 황금새벽당 뭐 그런 애들 있긴 한데, 걔들의 목표는 시리아인이나 흑인이나 그런쪽이지 동양인에 대해선 딱히 혐오하는건 없는 거 같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안심해도 됨.



그리스에서 직장을 다녀보거나 일을 한 적은 없어서 이 이상은 못쓰겠는데, 대신 댓글로 질문 남겨주면 최대한 답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