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서 고려·발해유민 기사 > 원사 > 『원사』권208 열전95 > 임연의 반란으로 고려 최탄 등이 귀부하고 고려 정벌 논의가 이루어지다

음력 1269년 11월 미상

지원 6년 11월에 고려도통령 최탄 등이 임연이 난을 일으켰다 하여 서경 50여 성을 들어 들어와서 귀부하였다...전 추밀원경력 마희기 또한 말하기를, “지금의 고려는 곧 고신라·백제·고구려 삼국이 합하여 하나가 된 것입니다. 대저 번진의 권력이 나누어지면 통제하기 쉽고 제후가 강성하면 신하로 삼기 어렵습니다. 

저들 주성 군민의 많고 적음을 조사하여 나누어 둘로 하여 그 나라를 나누어 통치하고 권력이 가지런하고 세력이 동등하게 하여 스스로 서로 제어하게 한다면, 천천히 좋은 계책을 의논하여도 또한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고려도통령 최탄 등이 서경 지역 일대 50여 성을 가지고 몽골 제국에 귀부할 때 몽골 제국 내에서는 고려를 둘로 나누어 각각의 제후들이 통치하게끔 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왔음


고려사 > 권26 > 세가 권제26 > 원종 11년 > 2월 > 몽고가 서경을 귀속시키고 동녕부로 이름을 고치다

음력 1270년 2월 7일 정축,
양력 1270년 2월 28일

정축 최탄이 몽고 군사 3천 명을 요청하여 서경에 주둔시키자, 몽고 황제가 최탄·이연령에게 금패를, 현효철·한신에게 은패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 조서를 내려 서경을 직접 몽고에 속하게 하고, 동녕부라고 이름을 고쳤으며 자비령을 고려와의 국경으로 삼았다.


그 이후에는 서경 지역 일대를 몽골 제국에 직접 속하게 했고, 동녕부로 이름을 고쳐서 자비령을 고려와의 경계로 삼았음


고려사 > 권26 > 세가 권제26 > 원종 11년 > 2월 > 몽고 황제에게 서경 귀속을 청하는 표문을 올리다

음력 1270년 2월 10일 경진,
양력 1270년 3월 3일

경진 왕이 표문을 올려서 서경을 다시 고려에 속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 대략에서 말하기를,
최탄과 이연령 등은 본래 국가에 원한을 가진 자들이 아니고, 권신이 함부로 국왕을 폐위시키자 처음에는 의를 내세우고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이 귀국에 일을 보고하면서 세자에게 기대를 하였습니다. 이제 신이 권신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귀국에 군대를 요청하여 귀국하여서 섬에 살고 있는 신민을 데리고 나와서 옛 수도에 다시 도읍을 정할 것입니다. 

최탄 등은 이치상 군대를 버리고 본래대로 돌아가야 할 터인데 도리어 그 영토를 분할하여 각각 제후국이 되려고 하니, 이는 처음에 군사를 일으킨 행적에는 어긋납니다..."


며칠 뒤에는 고려 원종이 표문을 올려서 최탄 등이 영토를 분할하여 각각 제후국을 만들려함을 비판하였음


고려사 > 권26 > 세가 권제26 > 원종 11년 > 8월 > 몽고 황제에게 서경 등을 돌려줄 것을 청하다

음력 1270년 8월 1일 무진,
양력 1270년 8월 18일

또 아뢰기를,
“작년에 우리나라의 서북면 총관 휘하의 아전 최탄이 서경의 분대어사·감창사·유수관 및 속현의 수령들을 살해하고, 서북면의 여러 성을 협박하여 자신의 도당을 만들어놓은 뒤에 바로 황제께 나아가 거짓말로 고소하였습니다. 

영토를 나누어 다른 나라를 세우려는 의도를 가지고 나라에 재난이 있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 함부로 행동하였으니 그 죄악은 천지간에 용납할 수 없으며, 또 서북 사람이면서 원래 개경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지금 마구잡이로 잡아가니 그 패륜과 반역이 어찌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좁은 땅에서 다시 서경 이북의 여러 성을 떼어내어 따로 나라를 만든다면, 신과 더불어 조공을 감당할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수개월 뒤에 원종은 최탄 등이 영토를 나누어 따로 다른 나라를 세우려함을 다시 비판하였음


최탄이 동녕총관부의 총관으로 임명되었던 건 알고 있었는데

아예 다른 나라를 세워서 또다른 제후가 되려고 했던 건 처음 알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