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분명히 며칠 전 딸은 곧 기다리던 휴가가 온다며 묻지도 않은 휴가 계획을 떠들었다.
 휴가 중이라면 전화를 받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혹시 딸은 아빠의 전화보다 휴가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전화기를 두고 갔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약간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난 몇년간 열심히 공장에서 일 해 꼬박꼬박 용돈을 부쳐주던 딸이 연락 한 번 없다고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였다.
 더군다나 시장에 가서 찬거리라도 사와야했으니, 하루종일 전화기만 붙들고 있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였다.
 양말을 신으며 어제 저녁 틀어놓고 끄는 것을 깜빡한채 그대로 잠들어버려 아직까지 켜져있는 TV를 바라봤다.
 뉴스에서는 멀쑥한 양복을 입은 아나운서가 최근 새로운 독감이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청진 독감의 감염자는 309명으로, 사망자는 2명입니다. 보건당국은 예방수칙을 지켜 추가적인 감염을 막아야한다고 밝혔습니다."
 뭐,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였다. 매년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 우리를 모두 죽일 것처럼 겁을 줬지만, 만약 그 바이러스들이 전부 위험했다면 벌써 이 나라는 남아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서둘러 읍내로 향하는 버스가 다니는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읍내 시장에 도착해 찬거리를 사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 받지를 않았다. 아마 지금 시내에서 친구들이랑 쇼핑이라도 간 모양이였다.
 다시 집에 돌아와 무의식적으로 TV를 켰다. 아내를 사별한 이후 조용해진 집이 싫어 하루종일 보지도 않는 TV를 켜두었다.
 "네, 다음 소식입니다. 서울에서 함경도 봉쇄를 주장하는 집회가 열렸습니다. 주최측은 함경도 봉쇄를 통해 국민들의 안전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매번 그 놈의 독감 이야기만 나오는 뉴스에 질려 다른 채널로 옮기려하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시계를 보니 점심때를 약간 넘겼다. 아마 딸이 점심을 먹고 불현듯 아빠에게 전화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전화를 건 것 같았다.
 나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혹시 정순봄씨 아버님 되십니까?"
 "네? 실례지만 누구신지..?"
 "청진 보건소입니다. 따님께서 저희 보건소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검사가 진행 중입니다만.. 아마 최근 유행하는 청진 독감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청진.. 청진 독감이요?"
 뉴스에서만 보던 그 독감에 딸이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일단.. 양성 판정이 나오면 청진대학병원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딸의 얼굴이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딸이 혼자서 얼마나 무서울지 생각하자 더 두려워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겨우 전화기를 붙들은 채 입을 겨우 열었다.
 "면회.. 가능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청진 독감 감염자에 대한 면회는 일체 금지되고.. 또 저희 보건소도 지금 감염이 의심되서 방역할 예정입니다."
 말 대신 어이없는 한숨만이 나왔다. 딸이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죽을병이라는 청진 독감에 걸렸는지 몰라 숨이 턱턱 막혔다.
 나이가 들어 참기가 힘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내의 사별 이후 처음으로 흘린 눈물이였다.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얼마 되지 않아 창밖에는 시골 풍경은 사라지고 높은 빌딩이 보이는 한산한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버스나 거리에서도 사람들은 보이질 않았다. 도시가 사람들 하나 살지 않는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렸다.
 청진대학병원 앞에서 내리자,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병원 앞에서 하염없이 서 있었다.
 오열을 하는 사람, 밖에서 가족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 멍한 얼굴로 벤치에 앉아 담배만 피워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병원에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된 채 경찰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한숨을 쉬는 나를 바라보던 한 중년의 남자가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형씨도 가족이 감염된거요?"
 "..네, 그렇습니다. 딸이.. 감염되었다고.."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나는 우리 마누라여. 또 어디를 싸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되었는지 참.."
 순간, 그도 감염된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들어 몸을 움추리자 그가 알겠다는 듯 말했다.
 "걱정하지 마쇼, 예전에나 마누라였고, 지금은 남이 되어서 산지 꽤 된거라.."
 "아.. 예.."
 그는 뻣뻣하게 굳어있는 나를 보며 등을 쳤다.
 "너무 걱정하지 마쇼. 사망자가 둘 뿐인 병인데, 다들 호들갑 떠는거지.. 별일 없을거요."
 ".. 그래야겠죠."
 ".. 그러고보니 통성명을 아직 안 했네.. 난 윤상철이오. 여기 시내에 철물점하는."
 "아.. 전 정동규라고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는 안쪽 호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건냈다.
 "우리 철물점에 쌓여있는거 들고온건데, 하나 받으쇼."
 "수첩은 왜..?"
 "혹시 이 병 관련해서 정보가 언제 어디서 나올지 어떻게 알겠수? 그런 정보도 빨리 알아내서 적어야하고.. 또, 너무 할 짓이 없어서 딸 생각만 나고 그러면 뭐라도 적어서 잊으라고."
 "아.. 네, 감사합니다."
 사내, 아니 윤상철은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근처에 있는 문방구를 찾아 연필을 사서 나왔다.
 다시 대학병원으로 오는 길에 계속해서 생각나는 딸을 잊기 위해 무언가라도 기록을 해야겠다고 생각해 오늘의 날짜를 적고 뭐라도 기록했다.
 어떤 사람이 울다 쓰러져 실려간 내용도, 사람들이 나누는 뜬소문들도, 의사가 밖에 나올때마다 달려들어 질병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기록했다.
 그러다보니, 강박적으로 기록을 하는 습관이 생기기도했다. 기록을 하지 않으면 혼자 남겨진 딸이 생각나 슬퍼지기만할 뿐이였다.
 그렇게 며칠을 대학병원 앞에서 보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잠에 들었다.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철렁이는 가슴을 안고 달려갔고, 딸이 아님에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오십줄이 되도록 한번도 믿지 않은 신을 믿으며 기도했다.
 기도하고, 기록하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다 잠들었다.
 때로 잠이 들지 않는 밤에는 딸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부디 딸과 다시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