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로마인들이 단결했다.


유명한 민주주의 혁명가였던 '마누일 플레톤'이 제국 정부로부터 제국에 대해 불경한 발언을 하였다는 죄목으로 체포 후 사형이 언도되었는데, 그는 단지 유명한 혁명가 였던 것을 넘어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는 저명한 인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각계각층에서 그에 대한 자비로운 선처 또는 사면, 무죄 석방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황제 요안니스 11세는 그러한 여론을 모두 무시하고 그에 동조하는 이들을 모두 엄벌하겠다고 선포한 것이, 

노바 콘스탄티누폴리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사건을 폭발시킨 것이다.


당대의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들이 먼저 반기를 들었으며, 나라가 혼란해지자 국가에 불만을 가진 빈민들이 일제히 항거한 것이다. 


수십만명이 노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부터 행진을 시작했으며, 니케포루스 감옥에서 마누일 플레톤 을 탈옥시키곤...

다 함께 아테네로 진격했다.

수백명의 수도방위군이 막아섰으나 


혁명군 2500명

수도방위군 97명 이 전사하는 끝에 

시위대는 수도로 진격했다.


황궁과 구 의회의사당을 점령한 혁명군은

요안니스 11세를 체포하면서 혁명을 완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