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난 얼굴도 못생겼고 키도 작고 은따도 당했던 기억 때문에 우울증이 있었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 때문인지, 중고등학생땐 비행청소년으로 전락해 학업은 커녕 무단결석이 일쑤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 엄마와 내 친구들 만큼은 날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비 오는 날 집을 나갔을 땐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기어코 오지 말라는 내 으르렁댐에도 거리낌없이 엄마는 날 데리러 오셨지만, 난 그런 어머니에게서 도망쳤다.

그 때 등 뒤에서 어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난 들리지도 않는 척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다시 그 자리에 갔을땐, 검은색 우산 하나만이 달랑 놓여져 있었던 기억이 있다.


상술했듯 그 무렵에 나는 학교를 무단결석하는 게 일상이었다.

부끄럽게도 그리고 한심하게도 나는 학교를 며칠, 심지어는 일주일 내내 무단결석을 한 적도 있었고, 한달 그 이상의 기간동안 날 포기한 담임선생님에게서 한숨 섞인 조퇴증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잠이나 자는게 전부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 안에서도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지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난 그마저도 들리지 않는 듯 어두운 심연과도 같은 방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 병신머저리같은 일상이 지속되던 어느 날, 별다를 것 없이 산책이라는 변명으로 집을 나갔던 사이, 학교에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건지 걱정되었던 건지, 우리 집에 찾아왔던 모양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와 아버지가 아까 내 친구들이 잠시 들렀다며 말을 던졌고, 방으로 들어서자 내 책상 위에 츄파츕스 사탕 하나와 한 장의 포스트잇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1588-9191, 전화해봐, 힘들어도 학교엔 우리가 있잖아"


난 덕분에 달달한 사탕으로 울적한 기분을 잠시 달랠 수 있었다.

포스트잇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간 채로 말이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나는 고3이 되어 있었고, 학업 수준이 처참한 내 모습을 본 학교 선생님은 나에게 위탁전형(직업전형) 학교를 알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나도 그냥 이대로 망가지기보다는 뭐라도 배우는 게 낫겠다 싶어 강남에 있는 식품영양학과였던가, 그쪽으로 위탁 생활을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게 새로운 친구를 사귈 넉살좋은 성격은 없는 게 당연했다.

난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시간만을 버린 채, 고작 민간자격증 몇 개만을 손에 쥔 채로 졸업을 마쳤다.

그 후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갔을 땐 다들 이미 수능을 마친 뒤였다.

마지막으로 그 학교에서 졸업 사진을 찍었을 때는, 예전의 그 친구들과 다시 사진을 찍었다.

학사모를 던지는 우리의 모습이 담긴 그 사진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의 나는, 아주 잠깐동안일지라도 진심으로 행복했던 거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야박했다.

잠시간의 자유를 즐길 새도 없이 친구들은 대학교 문제로 각각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고, 나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예전 친구 중 한 명이 다니던 알바처를 소개받아 그곳에서 최대한 열심히 일하려는 것 자체로 만족하며 살 뿐이다.

나같이 벌레같은 삶에서 뭔들 더 원하랴, 이거면 충분히 부귀 영화인 셈이 아니겠는가.


저 친구들은 내 우울증이 현재 완치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카톡방에서나마 예전같이 하하호호떠들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한결같다.

저들에게 아무런 걱정도 끼치지 않는다면야, 내 역할은 충분히 마친 셈이다.

이제는 친구들을 넘어서, 난 내 부모님마저 속이고 있다.

난 행복하고 난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말이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한 듯 하다.

내가 어쩌다 인생을 포기하게 된 걸까, 대체 그렇게 소중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무슨 짓거릴 저지른 걸까.

있는 것 남은 것 하나도 없는 내 인생은 대체 무슨 가치란 말인가. 누가 알아주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모순적이게도 누가 날 좀 봐줬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복합적으로 내 뇌와 심장을 유린한다.

후회? 미련? 분노? 우울?

내 상태가 어떤지는 지금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아주 오래 전 적어 뒀던 자살기도와 유언장이 적힌 텍스트파일 하나는 아직 남아있다.

친구들은 이제는 그걸로 날 놀리고 있다, 너의 흑역사라면서.

하지만 이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눈치임에, 난 그저 여러 의미로 부끄러워 할 뿐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난 당신들에게 위처럼 극단적인 선택지를 강조하려는 생각은 없다.

그만큼 현실 속에서 받는 고통이 만만치 않음을 서로 알고 있기에 나의 이야기를 풀어 썼을 뿐이다.


부디 나처럼 망가지는 삶과 망가지는 정신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꾸준히 살아나가자, 열심히 살지 못할망정 꾸준히라도 살아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