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용사님. 나의 용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법사라고 합니다.
딱히 이름같은건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어렸을적부터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던지라 여러 마법 학회에서 스카우트도 왔지만 저는 저를 어렸을적부터 키워주셨던 할아버지가 좋아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집에 남아있었습니다.
집은 산골짜기 깊숙한 오두막으로 된 곳이다보니 사람의 발길도 드물었고 오히려 주변을 배회하는 몬스터가 더 많았답니다.
온순한 몬스터와는 교감을 나누며 함께 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은 몬스터가 더 많았기에, 저는 자연스럽게 마법으로 몬스터들을 퇴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에서 읽어보니 몬스터들은 마왕이 이끌고 온 군대라고 써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저와 우리 할아버지를 못살게 구는 몬스터들의 수장인 마왕을 격퇴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창 몬스터를 격퇴하며 마법을 수련하던 중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물론 거동도 불편하시거니와 나이도 드실대로 드셨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줄은 몰랐지요.
무덤을 만들고 한참을 울던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닥치는대로 몬스터들을 유린하기 시작했습니다.
몬스터만 아니었더라면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었다고 분노했던 것인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달래줄 거리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던 중 하급 악마를 만나게 되었고 저는 주저없이 악마를 참살했습니다.
그 악마는 죽어가면서 유언을 남겼지요.
"너는 동반자를 만나 그 사람과 평생동안 묶여 살게될 운명이다." 라고 말입니다.
저는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말을 흘러넘겼습니다. 
몇년이 지났을까요, 몬스터를 학살하던 기간이 오래가진 않았으니 1,2년 정도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악마의 말대로 동반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마력은 미미하게 감지되는 정도지만 검술에 있어서는 앞날이 기대되는 초보 용사님이었습니다.
아직 초보이기에 약한 몬스터들과 팽팽하게 대립하는 중이었지만, 싸우면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용사님의 그 늠름한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용사님도 마침 마왕을 무찌르기 위해 나온 길이었기에 저는 용사님과 합류해서 모험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적당한 몬스터들을 상대하면서 용사님을 서서히 성장시켰고 제 마법 실력 또한 점점 일취월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마왕의 수하들을 순차적으로 하나씩 없애나간 뒤 용사님과 저는 마왕성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참, 그렇지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넘길뻔했네요.
마왕의 수하들 중 유독 강한 드래곤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만나 싸우기 시작해서 다음날 동이 틀때까지 피투성이가 된채로 승리를 거둔 상대였습니다.
몸에 힘은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에서 저와 용사님은 무언가에 홀린듯 아무말없이 서로를 마주본 뒤 조용히 입을 맞추고 껴안았습니다.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사랑? 전우애? 그 이상을 뛰어넘는 유대감?
저와 용사님은 서로의 몸을 탐했답니다.
수컷과 수컷이 하는 교배행위는 아무런 의미따위 없을터인데도 마치 동물처럼 뒤엉켜 뒹굴었습니다. 몇시간을 뜨겁게 행위를 하고 난뒤, 지쳐 잠들었다가 깨어난 저희는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이내 손을 꼭 잡고 다녔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 갈 것을 맹세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낯뜨거운 기억이지만 그만큼 황홀한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저와 용사님은 마왕을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마왕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강한 상대였습니다. 나름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저의 마법도, 용사님의 검도 마왕에게 닿지 않았고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채 꼴사납게 패배해버렸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되던 그 순간에 저는,
오래전 할아버지와 함께살던 집에서 본 책이 떠올랐습니다.
금지된 마법들이 기록되어있었던, 표지조차 없던 허름한 책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시간을 역행하는 마법이 있었답니다.
다른 선택지따윈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그 마법을 행했고, 또 성공했습니다.
용사님과 마주치기 직전의 시간으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