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보이는 것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회색 책상. 그 위에는 컴퓨터와 전화기 등 각종 집기들이 놓여있었고, 왼쪽을 바라보니 화장실이었다. 대충 보니 사무실인 것 같았다. 그렇다. 대충 보면 사무실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현상이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 현상을 믿지 못한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떠보았다. 그러나 눈 앞의 믿지 못할 광경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책상 위를 날아다니는 의자와 소파, 바닥을 기어다니는 소화기, 그리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고 있는 키보드. 일반적인 상식으로서는 전혀 있지 못할 일이었다.

 

"야, 너 빨리 안 숨고 뭐해?"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다름 아닌 소변기였다. 이제 물건이 말까지 하는구나. 역시 죽을 때가 다가온 것인가.

"야, 멀뚱멀뚱 있지 말고 빨리 숨으라고. 43초 안에 숨어야하는 데 너 시간 다 날릴 셈이야?"

"근데 내가 왜 숨어야 되는데?"

내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야 술래한테 들키면 죽으니까 그러지. 난 운 없어서 소변기가 되서 글렀지만, 너는 전화기잖아? 모처럼 다가온 행운 놓치지 말라고."

와... 세상에 소변기랑 대화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근데 잠깐만, 내가 전화기라고? 이게 무슨 소리야? 소변기의 말을 듣고 잠시 내 몸을 훑어보았다. 내 몸이 진짜로 전화기가 되어있었다.

내가 전화기가 되었다는 충격에 잠시 얼어붙어있자 소변기가 안쓰러웠는지 내게 숨을 곳을 알려주었다.

"저기 책상 많은 곳 보이지? 저기 위에 올라가서 멈춰있어. 절대 움직이지 말고. 알았지? 그럼 나는 이만 간다."

소변기가 콩콩 뛰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속는 셈 치고 책상 위에 올라가서 전화기와 물아일체가 되어보았다. 진짜로 세상에 내가 전화기가 다 되어보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내가 자리를 잡은 곳 옆에서는 아까 그 키보드가 아직도 팡팡 뛰고 있었다. 그러고는 자세를 잡더니 정지 자세에 들어갔다. 내가 물었다.

"근데 여기 뭐하는 데야?"

"너 여기 뉴비구나?"

키보드가 단번에 대답했다.

"여기가 어디냐고? 뭐긴 뭐야, 게임이지. 우리들이 43초동안 숨으러 다니는 동안 술래들도 똑같은 시간동안 레플리카 공간에서 사물들의 위치를 외워놔. 그리고 43초가 되면 들어오는 거야. 그리고 레플리카 공간에 없던 우리같은 사물들을 잡아내."

"근데 잡히면 어떻게 돼?"

"곧 네 눈으로 직접 보게 될거야. 어, 저기 술래 온다."

 

키보드가 말한 곳을 보니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술래라고 불리는 그 사람들은 키보드의 말을 증명하듯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앞에 있던 소파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러자 놀랍게도 소파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소파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 광경은 내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소변기의 말을 믿기 잘했다는 생각과 그에 대한 감사까지 이어졌다. 살다살다 소변기에게 감사를 하게 될 날이 오다니.

 

술래 한 명이 내가 있는 책상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모니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나 모니터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 술래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다른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내가 물었다.

"이건 어떻게 된거야?"

키보드가 답했다.

"아, 술래들이 우리같이 숨어있는 애들이 아닌 걸 때리면 생명이 하나씩 깎이거든. 술래의 생명은 총 5개고. 그 5개가 깎이면 술래도 아까 그 소파처럼 죽는거야."

술래들에게도 생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때였다.

 

그렇게 2분하고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뒤에 있던 팩스가 술래의 공격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졌고 아까 내게 나아갈 길을 알려준 소변기도 순식간에 사망했다. 벽 너머의 창고에서 박스 3개가 한꺼번에 학살당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기분은 뭐라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앞에서 술래가 두 개의 화분을 놓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둘 중 하나를 치더니 그 순간 갑자기 뇌졸중이라도 온 듯이 쓰러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증발했다. 저게 바로 키보드가 말했던 술래의 죽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사물은 4개가 남았고, 시간이 45초가 남게 되었다. 그러자 계속 신중한 자세를 취했던 술래들이 모든 물건을 때리기 시작했다. 남은 물건 4개를 찾겠다고 자기 생명을 버리는 행동을 보며 비웃음을 쳤지만 키보드의 표정은 예상과는 다르게 잔뜩 굳어있었다. 뭔가 잘못된 건가 하고 눈치를 보는 나에게 키보드가 말했다.

"45초가 남으면 술래들은 생명이 깎이지 않아."

"뭐 그런게 다있어?"

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키보드가 재미를 위한 장치라고 설명해도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래들이 내 옆 책상을 치고 있었다. 모니터, 메모지, 파일꽂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키보드가 최후의 궁리를 짜냈다. 그리고 키보드가 말했다.

"이 때는 도망치는 게 답이야."

"뭐? 그럼 바로 잡히잖아?"

"현란한 스텝으로 돌아다니면 걔네들도 잡기 어려워. 이걸 전문용어로 무빙이라고 하지. 너도 전화기니까 작잖아. 그니까 잘 안 잡혀."

 

그래,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달려보자. 빈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렇게 우리들은 책상에서 벗어나 점프를 하며 바닥을 질주했고 술래들이 우리들을 향해 쫓아왔다. 술래들이 계속 허공을 때렸다. 내가 불안해서 키보드에게 이래도 되냐고 물었으나 키보드는 스테이플러랑 의자가 잘 숨어있으니까 괜찮다고 안심시켜줬다. 그 말을 듣고 스테이플러가 어디 숨었는 지 슬쩍 보니 소파 옆 작은 공간에 들어가 꽁꽁 숨어있었다. 저러니 안 들킬만 하지.

 

계속 뛰다보니 체력이 떨어졌다. 점프하는 높이도 낮아졌고 달리는 속도도 줄어들었다. 키보드가 잠시 술래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쉬자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불행한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스테이플러가 술래에게 결국 들키고 만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왔고, 계속 뛰어다닐 수 밖에 없어졌다.

키보드가 말했다.

"우리 따로 뛰어보자. 이제 체력도 충전됐고."

"그래. 지금까지 고마웠다."

"아, 그리고 폭탄 조심하고!"

키보드가 그 말을 끝으로 주위를 돌아다녔다. 나도 어서 자리를 떴다. 그나저나 폭탄이라니, 뭘 말하는 건지 두려워졌다.

 

그 뒤로 몇 초 정도 지났다.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던 키보드도 마침내 궁지에 몰리더니 컨트롤 실패로 술래에게 잡히고 말았다. 키보드가 잡히다니, 이제 나랑 의자만 남은건가?

아까 키보드를 쫓던 술래들까지 나를 잡겠다고 가세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필사적으로 뛰었다.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혼신의 투혼을 했다. 그러나 술래 한 명이 어째서인지 나를 보고 가만히 있었다. 뭐지 하는 순간 술래가 폭탄을 던지더니 내 몸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결국엔 사망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관전실 비슷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까 죽은 사물들과 술래들이 모두 모여 이야기꽃을 나누고 있었다. 내 목숨을 지켜준 소변기와 키보드도 있었다. 나는 연신 감사인사를 날렸다. 소변기랑 키보드가 고맙다는 멘트를 보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곳의 이야기는 내가 살아있었을 때도 침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그나저나 의자는 어디 숨어있는 걸까? 나는 아무리 사무실을 둘러보았으나 결국 그 의자를 찾아낼 수 없었다. 나같이 무빙하는 사물들도 스테이플러 같이 꽁꽁 숨은 사물들도 모두 잡혔는데, 마지막 사물은 대체 얼마나 잘 숨어있는 걸까?

 

그리고 마침내 발견했다. 술래들이 그 스폿에 몰리더니 허무한 표정으로 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다. 의자가 벽을 뚫고 넘어간 것이었다. 키보드가 말하길, 의자는 벽에 대고 사정없이 비비고 있으면 벽을 뚫을 수 있다고 한다. 여기 시스템도 참 신기하다.

 

그렇게 나를 잡느라 폭탄을 써버린 술래들은 망연자실하게 벽을 뚫고 들어간 의자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타이머는 게임의 종료를 알렸다. 그리고 사물팀이 이겼다는 표시가 떴다. 죽은 사물들의 환호소리와 의자를 향한 찬사가 내 주변에서 끊어지지 않았다. 이곳도 참 이상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