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노출증
개념글 모음

동아리ㅡ 라는 말은, 참으로 달콤하게 들리는 환상적인 케이크와 같은 단어다.


학생들이 자율로 운영하는, 취미와 진로를 위한 자율적인 모임.

바쁘고 삭막한 학업의 와중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청춘의 공간!


...같은 것을 기대했다가는, 반짝반짝 빛나는 케이크의 장식 아래에 있는 것은 평범한 시판용 빵이라는 것을 깨닫고 실망하게 될 것이니.


전생에도, 그리고 현생에서도. 대한민국은 입시 공화국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해 고등학생까지 삶의 지상명제는 명문대학교로의 입학이며, 그 이외의 다른 것들은 무시해도 상관없는 것들로 취급받는 세상.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점은 다른 세계에서도 달라지지는 않았으니, 대한민국의 연속성은 보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강남에 즐비한 수백만원짜리 입시학원과 입시 컨설팅 학원들, 재수 학원들의 명성과 그 암흑은 이세계에서도 보존되고 있었으니까.


어찌되었건, 그런 입시공화국에서 정말로 자유롭고 창의적이고 즐거운 동아리 활동.

그러니까 여름방학에는 해변으로 놀러도 가고, 방과후에 모여서 서로 즐겁게 수다를 떨며, 담력시험이니 문화제니 하는 즐거운 행사와 이벤트들이 중간중간 있는 아름다운 동아리 생활ㅡ 같은 것을 기대헀다면.


이 삭막한 입시공화국의 현실은, 고등학교를 애니메이션과 라이트노벨과 소설로 배운 학생들에게 차분하게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동시에, 그것이 반드시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었다.


학교에는 특권층이 있으니까.


사회적 계급이라던가, 돈이라던가, 권력이라던가ㅡ 같은 어른의 우중충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특권층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의 특권은 학교 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존재하기에 학교에'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내가 말하는 특권층은, 학교에 존재하는 특권층이다.

선생님들로부터 존중받고, 배려받으며, 사소한 일탈 정도는 가벼운 꾸지람으로 넘어가는.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명칭을, 우리는ㅡ



"아, 세연아 왔어?"


"응."



ㅡ『모범생』이라 부른다.



*



독서동아리의 구성 인원은 상당히 단촐하다.


나, 여동생 세윤, 소꿉친구 시우, 그리고 선도부원 지혜.


딱 넷 뿐인 동아리.

당연히 이런 동아리가 잘 돌아가나 싶은 의문은 드는 법이다. 아무리 독서부가 널널한 동아리라 해도, 4명 밖에 없는 동아리가 잘 돌아간다고ㅡ? 라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리는 실제로 잘 돌아간다.


이유는 두가지.


하나는, 이 동아리의 구성원들은 전원 모범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등생의 범주에는 들어간다는 것.

일주일, 널널하게는 한달에 책 한권 정도 읽어서 독후감을 쓰는 것 정도야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기에 적당히 활동 보고서에 채워넣을 내용은 나온다. 대충 사진 찍고, 책 내용을 넣으면 끝.


그리고 두번째는, 내가 이 동아리의 부장이기 때문.


[세연아, 동아리 활동 잘 하고 있지?]


[네.]


[그래. 열심히 하고.]


...이게 끝이었다.

정말로.


세연이라면 잘 하겠지. 세연이라면 믿을 수 있지. 세연이라면 문제 없겠지. 세연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세연이가 하는 일은 딱히 [확인 안해도] 되겠지.

신뢰와 방임 사이의 어딘가에서 내가 만든 동아리는 열심히 자유를 얻어 움직이고 있는 상태였으며, 대량의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는 내가 굳이 이 동아리의 활동비에 손을 댈 이유가 없었으니 동아리는 자유와는 별개로 잘 굴러가고는 있는 상태였다.


"미안, 조금 늦었네."


"괜찮아. 별로 늦지도 않았는걸~"


붙임성 좋게 말을 받아주는 사람은, 2X2의 배열로 놓인 책상에서 입구의 맞은편ㅡ 그러니까 가장 먼 쪽에 앉아있는, 단발의 소녀였다.

활발하다거나, 귀엽다거나. 강아지상이라는 분위기가 저절로 어울리는 미소녀. 살짝 갈색 빛이 도는 머리카락의 아름다운 소녀를 보면 저절로 마음이 풀어지는 아름다운 효능이 있는 법이었다.


물론 나도 지극히 아름다운, 아니, 세상 최고의 미소녀지만, 아름다움에도 결이 있듯이 나와 다른 형태로 아름다운 미소녀도 있는 법. 저렇게 활발하고, 붙임성 좋아보이는 미소녀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훈훈해진다는 점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었고.


그래서 쏙 집어왔다.


아무래도 학생부원의 동아리 활동은 어렵다는 학생부의 자그마한 항의는 성적이 전국 최상권에서 노는 아름다운 미소녀의 권력 앞에서 무너져내리고 말았으니, 이것이야말로 모범생의 특권 아니겠는가.


내 자리 옆에 앉아있는, 귀여운 내 동생 세윤.

내 맞은 편에 앉아있는 소꿉친구 시우.

내 정반대편에 앉아있는, 선도부원 지혜.


단촐한 구성.


"책은 다 읽어왔지?"


"응."

"네."

"으응."


제각기 각양각생의 대답들.

미소녀들의 목소리에 섞인 사내의 목소리가 살짝 거슬리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거슬린 것은 아니기에 제자리에 앉으며 적당히 동아리비로 산 책을 꺼내든다.


그 와중에도 육체파이기는 하지만 두뇌파는 아닌 지혜는 끙끙대며 내 눈치를 살피기는 했지만, 나도 이 동아리를 제대로 굴릴 생각은 없었기에 슬쩍 넘어갔다.

동아리를 제대로 굴린다니, 내가 왜? 귀찮은 일만 생길텐데.


"흠, 흠. 눈먼 시계공이라는 것은,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가 기본이야. 생물체의 구조는 극도로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한 생물학적 구조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어렵다는게 창조론. 반대로 단계적인 진화를 통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진화론. 그 대략적인 내용이야, 여기있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ㅡ"


그렇게 시작되는 독서 토론.

사실 토론이라기 보다는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서로 다툰다거나 주장을 설득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토론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이야기에 가깝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칠판으로 다가가려는 순간ㅡ


♪♩~


"......?"

"...??"


때아닌 귀여운 노래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노래소리를 향해 일제히 쏠리는 시선.


"아... 자, 잠깐만...!"


사방에서 일제히 쏠린 시선에 당황한 지혜는 다급하게 치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들어올리다가ㅡ 순간 실수로 휴대폰을 놓쳐서 앗, 엣, 엇, 하고 귀여운 소리를 내며 휴대폰으로 스마트폰을 잡으려고 하다가, 간신히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휴대폰을 잡고서.


휴우ㅡ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서는, 에헤헤ㅡ 하고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했다.


"미... 미안... 잠깐, 학생부장한테서 전화가 와서..."


"응. 받아, 받아."


잠깐 전화를 받는 것 정도야 상관 없으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허락하자 지혜는 전화를 받고서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다가ㅡ 이윽고 놀란 듯 다급하게 우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앗, 네, 네. 저도 일단 학생들한테 알리고서 찾으러 갈게요. 본관 계단으로 가면 되죠? 네, 넵."


무언가 놀란 듯한 표정.

귀여운 지혜의 그런 표정이 신기해서 지혜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 지혜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얘들아... 지금 집으로 좀 돌아가야 할 것 같다는데, 혹시 괜찮을까?"


"집으로요...?"

"집으로?"


그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윤과 시우.

둘의 이야기를 들은 지혜는 잠깐 끙ㅡ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저기, 그게에... 지금, 학교에 외부인이 멋대로 들어온 것 같다고 해서... 지금 학교에 남아있는 학생들 모두 하교하라고 하시네...?"


자신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아니면 진짜 당황했다는 듯.

목소리를 떨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