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노출증

사방에서 쏠리는 시선.


당연한 말이지만, 시선을 받는다는건 엄밀히 따지자면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광이라도 뿜어져나온다면 모르겠지만 눈은 빛을 내는 발광기관이 아니라 빛을 받는 감각기관이고, 상대방을 본다는 것도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방에게서 반사된 빛을 눈을 통해 받아들이는거지 마치 레이더처럼 빛을 내서 상대방을 보는게 아니니까.


그러니가까, '시선을 받는다'라는 감각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상대방이 내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하는 상상. 내 눈 앞에서야, 상대방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니 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지만. 등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절대 알아차릴 수가 없고, 그런만큼 어디를 바라보는 것인가ㅡ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의 영역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학생들이 나에게 보내는 시선은 분명 평소와 같을 것이다.


교복도 평소의 교복이어서 딱히 바뀐 것도 아닌데다가, 내가 딱히 이상한 짓을 하고 있던 것도 아니니까. 음심을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양아치들이 몇 있긴 하지만, 어차피 그런 양아치들은 모범생인 나를 건드릴 의지도 힘도 없다. 기껏해야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정도가 끝일 뿐.


그러니까, 분명 평소와 같은 시선일텐데도.


어째서인지.


"......"


무언가, 화끈거렸다.

사방에서 시선이 쏠리는 것 같았다.


단순하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마치.

산책을 할 때.


산책하는 것 처럼, 나를 바라보던 남자들의 추잡한 시선처럼, 내 몸을 범할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이ㅡ


"...네."


...여기서 가만히 있는건 이상하다.

자꾸 이어지려는 생각을 억지로 끊으면서, 칠판을 향해 걸어갔지만.


한발짝 한발짝 걸으면서 나무로 된 마루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낼 때 마다, 사방에서 쏠리는 시선은 어째서인지 점점 더 강하고 끈적거리게 느껴질 뿐. 약해지지도, 평소처럼 돌아가지도 않았다.

분명, 사방에서 쏠리는 시선은 평소처럼 '선망'과 '부러움'의 시선일텐데. 아니면 '친구'들이 보내는 '자랑스러움'이라는 시선일텐데.


대체, 왜?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면서도. 교복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몸을 향하는, 치마 밑의 맨살을 향하는 시선은 마치. 이른 아침의 새벽처럼 느껴졌다. 발정나버려서 나잇값도 못하는, 체면과 도덕을 집어던져버리고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추잡하게 자신의 욕망과 성욕을 채우기 위한, 타인의 존엄과 생각은 전혀 고려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담긴 것처럼.


대체, 어째서?


왜.

나는.


이렇게 '느끼는'거지?


그렇지만.

머릿 속 한켠에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를 손상시키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있는 이성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칠판에 적혀있는 수학문제.

대충 눈으로 훑어보았을 때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으니, 별달리 문제가 될 것도 없었다.


"문제에서 주어진 조건은 함수 f(x)가 삼차함수라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우선 삼차함수 f(x)를 설정하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고, 전제조건은 a가 0이 아니니까, 다음 조건은ㅡ"


말을 읊는 것과 동시에 손은 거침없이 풀이를 적어간다.

이미 풀이와 정답을 알아냈기 때문에. 단순하게 머릿속에 정리된 풀이를 칠판 속에 출력하는 일만이 남을 뿐인 머리에는 여유공간이 지극히 많이 남았기 때문에.


딱. 딱.


분필과 칠판이 부딪히며 나는 나직한 소리가 울려퍼질 때 마다, 몸의 흥분이 조금씩 달아오른다.


분필을 움직일 때 마다 까닥이는 가녀린 손목이, 보여지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일 때 마다 살랑거리며 흔들리는 머리카락에 반쯤 덮여진 허리에, 시선이 몰리는 것 같다.

점 하나 없이 매끈한 종아리에, 무릎 뒤편의 부드러운 굴곡에 시선이 쏠리는 것 같다.


같다, 느끼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어디까지나 내 상상의 범주일 뿐. 사실은 아닐 것이다.


"조건에서는 0에서 1 사이의 구간에서 최댓값이 3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합성함수의 미분법을 이용해 문제를 풀면 0.5에서 미분값이 0이 되는 값이 있으니, 함수의 미분값에서 부호가 바뀌는 지점이 2개 이상 더 존재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ㅡ"


내가 하고 있는 것은 문제의 풀이이며, 학생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은 분명히 칠판의 풀이지 내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문제를 푼다.

아니, 이미 푼 문제의 풀이를 칠판 위에 적어나간다.


깔끔한 풀이. 그리 길어지지 않는 해답.


"ㅡ따라서 함수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며, 조건의 값을 함수에 대입하면."


"오..."


뒤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탄성의 목소리.

일부러 말했다기 보다는 저절로 흘러나온, 감탄의 의미가 담긴 목소리.


수학문제으 정답을 적느 것과 동시에 흘러나온 그 목소리를 소리를 들은 나는 안심했다.

방금 전 까지 두근거리던 가슴은 제 박동을 되찾았고, 끈적하게 내 몸을 훑는 것만 같던 시선은 사라졌다. 추잡한 남자들처럼 내 몸을 훑던 남자들의 시선은, 이제 내가 아니라 칠판을 바라보며 깔끔한 풀이를 보고 감탄하고 있다.


평소처럼.

일상처럼.

평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처럼.



...다만, 어째서인지.

두근거리지 않은 심장은, 어째서인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지만.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 이상한 생각에서 의식을 돌리고 뒤로 돌았다.


방금 전 까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녹색의 칠판과 달리, 눈 앞을 채우는 질서정연한 책상들과 학생들의 모습. 정직하게 칠판의 풀이를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을, 친구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움과 부러움. 선망과 시기. 질투와 질시.

모범생을 향하는 시선들을,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을 향하는 부러움의 의미를 담긴 시선들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나는 칠판에 밑줄을 그으며 정답을 입에 담았다.


"답은 이렇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실에 찾아온 정적.

카리스마, 라던가 인기라던가 하는 점들은, 개인적으로 나와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모범생. 우등생에 대한 경외.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에 대한 경외.


사방에서 쏠리는 그 시선을 받으며, 나의 자존심과 우월감을 충족시키는 그 시선을 받으며.


나는, 미소지었다.



"그래, 잘했다. 이제 자리로 들어가고."


"네."


선생님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돌아가는 나.

뒷자리에 앉아있던 시우가 가볍게 미소지으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나 역시 가볍게 미소지으며 답하자 그 미소를 받은 시우는 어째서인지 잠깐 뻣뻣해졌다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서 다시 공부하는 척을 했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교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일상.


다시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펼치고서, 페이지에 끄적끄적 글씨를 쓸 때 마다 주변에서 슬쩍 몰려드는 시선.

마치 모범생의 공부비법을 어떻게든 훔치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모이는 시선이, 펜의 끝에 모여서 무슨 글자를 쓰는지 알아보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러면서도 살짝 몸을 움직이면 부끄럽기라도 한 건지, 잘못된 일을 한다는 자각이라도 있는건지 흠흠, 거리며 시선을 돌리고 괜히 딴짓을 하는.


평화로운, 일상.


...이었, 겠지만.



"아, 그러고보니 세연아."


"응?"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낮춘 시우의 말에, 나는 잠깐 고개를 들며 대답했고.


"오늘 독서 동아리에서 읽을 책은 생각해놨어?"


"아ㅡ"


그러고보니, 오늘은 동아리 활동날이지.


금요일 오후 5교시와 6교시를 차지하고 있는 동아리활동 시간.

시간표를 슬쩍 바라보며 고민한 나는, '친구'들과 보낼 시간을 상상하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이고, 밝고, 활기찬.

"행복"을 얻을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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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비일상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주인공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