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노출증

운동을 한 뒤에는 샤워를 해야한다.


물론, 미녀의 땀은 더럽기는 커녕 황홀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운동을 끝마치고 나서 송글송글 땀을 흘리는 모습을 스르로 거울에 비쳐보이면, 그것만큼 매혹적인 모습도 없으니까. 땀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검은 생머리와, 턱선을 타고 가슴골 사이로 주륵 흘러내리는 자극적인 땀방울.

아마도, 내가 남자였다면 그대로 가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고 혀를 핥으며 정신없이 얼굴을 가슴에 비볐으리라.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정도로, 정말로 뇌쇄적인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다가.


이 몸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땀도 더럽거나 불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살짝 짠 맛에 더해서 자극적인 맛까지 나기도 했다. 운동을 하면서 가끔 땀이 입에 들어갈 때도 있었으니, 그 때 느꼈던 맛은 불쾌하기는 커녕 약간의 달콤함마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땀 나는 운동을 하고 나서 스스로의 팔을 핥짝핥짝 핥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이유도 없고. 아무리 신기한 맛이 난다고 해도 땀은 땀인데, 그걸 왜 굳이 핥는단 말인가? 달콤한걸 마시고 싶으면 핫초코나 음료수를 마시면 되는데.


어찌되었건 그렇게 운동을 하고 나서.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샤워였다.


결국 땀은 땀인 만큼 샤워를 해야 말끔해지는 법이니까. 땀에 젖은 몸으로 교복을 입는건 여러모로 찝찝하기도 하고.


그렇게 운동으로 달아오른 몸을 미지근한 물로 식히면서. 화장실의 거울에 비치는 아름다운 미소녀의 모습을 볼 때 마다, 18년 넘게 익숙해졌는데도 가끔 신기하기는 하다. 아니, 따지고보면 어릴때는 그냥 귀엽고 예쁜 정도였고 본격적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몸이 된 것은 2차 성징 이후니까... 몇년 안되기는 했지만.


나올데는 나왔으면서도,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간 몸. 차가운 인상의 외모. 기름이라도 바른 것처럼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머리카락. 아름다운 분홍빛 첨단. 눈썹아래로는 털이 조금도 없는, 마치 조각상이라도 되는 것만 같은 육체.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어지간한 모델이나 연애인보다도 지금의 '내'가 더 예쁘리라는 것에 의심은 없다. 메이크업을 할 줄도 몰라서, 솔직히는 하기가 귀찮아서 안하고 있는데도 이런 외모라는 점에서 더더욱.


쏴아아아아아ㅡ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멍하니 맞으며, 우수에 찬 눈빛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미소녀.

마치 그 눈빛에 슬픔과 애환이 담겨있는 것만 같아서,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을. 남자도, 여자고 가리지 않고 모두 유혹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


평소라면, 이 정도로 만족했겠지만.

'나'의 외모에 만족하고, 이 아름다움에 만족해하며, 평소처럼 몸을 씻고 나갔겠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나'의 모습.


피부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모습.

순수한 물과, 소금이 섞인 땀은 그 성분이 다르다. 땀은 훨씬 더 끈적끈적하고, 짠 맛이 나고, 무엇보다도 땀을 만들어내는 땀샘은 엄연히 배설기관. 몸에서 필요없는 것을, 쓰레기를 몸 밖으로 배설하는 배설기관.


땀이 더럽고 불결하다는 인상은, 단순한 인상이 아니라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지금 내 몸은 타고 떨어지는 물은, 수돗물은 순수하고 깨끗한 물이며. 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것이지만.


지금 이렇게, 거울 너머로 보이는 모습은.

물방울. 아니,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은.


마치.


"읏..."


그들이.

오전의 산책길에서, 나를 바라보며 음흉하고 음란한 상상을 하고있었을 추잡한 남자들이.

나잇값 못하는, 추잡하고 음탕하고 위선적인 그들이 했을 상상과.


ㅡ너무나도, 비슷해 보인다.


그 사실을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몸에 살짝 열기가 돈다.

밖에서 산책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질 때와 비슷한 감각. 그 감각이, 보여진다는 감각이 상상하는 것 만으로 달아오르면서 재생된다.


스타킹으로 감싸진 얇은 종아리부터,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허벅지. 걸음을 걸을 때 마다 살짝씩 유혹하듯 움직이는 엉덩이. 땀에 젖은 운동복이 몸에 착 달라붙어 드러나는 잘록한 허리. 스포츠웨어로 압박되어 출렁거리는 않지만, 거꾸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가슴.


그 모든 것을, 옷으로 가렸지만 옷 너머로 보는 것처럼 뚫어지게 바라보던 병신같은 남자들. 다리 사이에 뇌가 달려서, 이성이 성욕에 지배당해버린 쓰레기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러 왔으면서도, 운동을 하기는 커녕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음습한 시선으로 여자의 몸을 바라보던 쓰레기들.


그런 쓰레기들이 했던 상상을.

집으로 돌아가서, 추잡하게 자지를 발기하며 했을 상상을.

입으로는 파렴치하다고, 외설적이라고, 음란하다고, 추잡하다고 말하며, 생각으로는 저렇게 야시시한 복장은 운동복이 아니라 말하면서도, 정작 눈은 내 몸을 쫓고 코는 내 뒤를 향하며, 몸은 나를 뒤따랐을 그 병신같은 남자들이 했을 상상을.


나는, 지금.

여기서, 실제로. 내 두 눈으로 보고있다.


그 미묘한 우월감. 승리감이.

다른 사람은 못하지만, 오직 나만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이 보고, 즐기고, 만지고,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무언가, 가슴을 간질거리게 만들었다.


상상은 자유다.

사상의 자유ㅡ 같은 헌법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아직 인류는 생각을 읽는 기술이 없는데다가 단순하게 생각을 하는 것 만으로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없으니까. 그런 만큼 그 남자들이 나를 가지고 그 어떤 상상을 하건 나는 그 상상을 볼수도, 들을수도, 느낄 수도 없지만.


남자들이 할 상상이라는 것은, 뻔하지 않겠는가.


하고 싶다. 범하고 싶다. 능욕하고 싶다. 괴롭히고 싶다. 깔아뭉게고 싶다. 박고 싶다. 취하고 싶다. 얻고 싶다. 유린하고 싶다.


수컷의 정복욕과, 우월감과, 승리욕과, 가학심을 잔뜩 만족시키는 상상들.

보나마나 그런 상상을 하며 자기위로를 하고,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있겠지만.


정작, 그들이 하는 일은 추잡하게 그들의 자지를 흔드는 것 뿐인데. 그런 상상을 하며 스스로의 늙고 주름진 손으로, 제 일도 못하는 물건을 만지며 자위를 하는 것 뿐인데.


나는, 그들이 원하던 것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렇게 만지는 것도.

살살 쓰다듬는 것도.

머리카락을 쥐는 것도.

몸의 냄새를 맡는 것도.


손을 움직여 스스로의 가슴을 살짝 쥐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가슴살이 살짝 일그러지며 그 끝의 분홍빛 첨단이 살짝 움직인다.

손가락 끝으로 피부를 쓰다듬으면, 살짝 소름끼치는 느낌이 들면서 닭살과 함께 야릇한 기분이 든다.

머리카락을 손에 쥐면 물에 젖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흘러내린다.

몸의 냄새를 맡으면 부드럽고 달콤한 살내음이 비강의 안을 가득 채워, 마치 중독적인 마약과도 같은 향기를 풍긴다.


남자들이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했을 행동들이.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했을 행동들이.


나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왜냐하면 '나'니까.

내가 바로 주인이니까.


내가 바로, 그 남자들이 상상하던 여자의 주인이니까.


우월감.

그 감정에 도취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추잡하고 병신같이 상상만 하며 허리를 흔드는 병신들에 비한다면, 실제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나는 훨씬 더 뛰어나고 우월한 것이 아닌가.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뿐이지만. 나는 실제로 할 수 있는데.


"......"


눈 앞의 거울에, 얼굴이 붉어진 미녀가 보인다.

'내'가 손을 뻗으면,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아니, 기대하는 것처럼 얼굴을 붉히고, 다리를 꼬고, 가슴 밑에 팔짱을 끼면서 가슴을 자랑하듯 돌출시킨다.


다른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그녀가. 부러워하는 그녀가.

바로, '나'니까.



그렇게 거울을 향해 뻗은 '나'와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ㅡ


ㅡ쾅, 쾅!


"ㅡ!"


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언니, 자ㅡ?"


문 밖에서 들려오는 세윤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아니, 응. 곧 나갈꺼야."


여동생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뒤늦게 머리카락을 훑으며 물기를 줄이고. 수건으로 몸을 닦으며 샤워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보다 살짝 늦기는 했지만, 애초에 10분 여유를 두고 등교하는 편이니까 문제는 없으리라. 다른건 몰라도 우등생이라는 타이틀은 놓치기에는 다소 아까운 편이니까, 성실하게 잘 유지하는 것이 편하다. 우등생은 어지간한 일탈로는 선생님들이 터치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대충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서 샤워실을 나가려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수건으로 몸을 가렸지만, 수건이 몸에 착 달라붙어 등과 허리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고개를 돌리면서 틀어진 몸을 통해 윗가슴이 살짝, 아주 살짝 드러나는 내 모습은.


꿀꺽.


남자의 음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다음 '산책'에는.

조금 더, 조금만 더.


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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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는 아마 일상편일 겁니다.

여동생 세윤, 소꿉친구 시우가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