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에 영동지방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일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월드컵이고, 두번째가 바로 태풍 루사.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임에서 루사 얘기만 나오면 다들 한마디씩 썰을 풀 정도로 집단 트라우마가 된 엄청난 자연재해였다. 나도 그 날 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 기억하고 있음.

그 때가 8월 말이었음. 나는 강릉에 사는 초딩이었는데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나는 내 눈이 잘못 된 줄 알았음. 
코 앞에 아파트 바로 앞 동이 비 때문에 전혀 안보이는거임. 그런 빗줄기는 아마 죽을 때 까지 못볼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만 해도 태풍이고 나발이고 일단 학교에 가야하는 시절이었기 때문에(강릉의 모 고등학교는 야자까지 다 하고 갔다고 한다) 우산 하나에 매달려 동생과 등교를 했지. 물론 우산은 무용지물이었다. 분명 우산을 썼는데도 머리까지 쫄딱 젖는 신비한 경험을 했던거임. 1미터 앞이 안보이는 엄청난 빗줄기었음. 학교에 도착하니 같은 반 친구들도 다들 같은 꼬라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븅신같은 교장이었는데 그 태풍을 뚫고 기껏 등교를 했더니 1교시 끝나고 집에 가래. 시벌 꼬맹이들 하교 하다가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쨌든 다시 동생 손을 잡고 학교를 나왔음. 근데 큰 문제가 생겼으니 아까 지나왔던 길이 안보여. 죄다 침수되서 어디가 도로고 어디가 인도 인지 구분이 안됨. 그 때 내가 한 140cm정도 됐는데 내 배까지 물이 찼다. 게다가 차가 지나가면 파도가 생겨서 난데없는 서핑을 했지. 그때는 동생이랑 재밌다고 낄낄 거리면서 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했던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뉴스를 틀었는데 상황이 심각해보이더라 벌써 저수지가 터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도로가 유실되고 사람들이 죽고 난리가 났음. 지금도 기억하는게 대관령에 시간당 100mm가 쏟아졌다는거였음. 

그렇게 오후 내내 부모님이랑 티비보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때리는거임. 지금 성산면에 오봉댐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아파트 저층 사람들은 윗층으로 대피하라고. ㅅㅂ 우리집 2층인데... 아빠는 그 방송을 듣고 단독주택에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구출하러 바로 뛰어 나감. 나 진짜 아빠 다시는 못보는 줄 알았음.

그 와중에 정전이 되서 촛불켜놓고 있었는데 어린 맘에 존나 무서웠던 기억이 든다. 다행이 댐은 아슬아슬하게 터지지 않았고 할머니집은 무사했지. 밤이 깊으니까 그제서야 비가 좀 멎었는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나무위키 보니 1일 강수량 900mm 찍었다고 하네ㄷㄷㄷㄷㄷ

루사가 지나가고 강릉은 그야말로 초토화됐음. 길거리에 흙과 나뭇가지와 온갖 쓰레기가 쌓여서 썩는내가 진동했음. 집 떠내려간 이재민도 몇 만명이 생겼고...도로는 유실되고 산사태에다 하천의 둑이란 둑은 죄다 터져나가서 그거 다 복구하는데도 3년 이상 이상 걸렸음. 그와중에 1주일동안 휴교라서 신났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