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고1 초때 뭣도 모르고 급식먹으러 학교다니던 때인 4~5월. 그때 중국에 임시정부 사적지 탐방하러 갈 사람 지원하라 해서 지원했다. 

비행경비가 공짜라는데 눈이 돌아가 일단 신청부터 했다. 1차 서류면접 통과 후 서면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면접보러 온 인원이 딱 뽑아야 할 만큼 있어서(...) 거기 오신 장학사님들도 어리둥절하시고;; 하여튼 덕분에 프리 패-스 했다. 아마도 동아리 면접날이랑 겹쳐서 그랬던 것 같았다. 본인은 그날 신문부 면접도 붙어서 굉장히 신났다. 

근데 다음 날 담임이 '교육부에서 해외라는 단어가 생기부에 들어가면 유학을 조장할 수 있어서 생기부에는 가는게 안적힌다.' 라는 말 듣고 갑자기 싸해짐;  사전 준비 및 구색 같추기 활동을 끝내고, 드디어 7월 말 쯤에 중국으로 떠나기 다음날이 됬다. '사람 많아서 길 잃으면 어쩌지?(당시 공산당 65주년 전국대회 2차)', '미세먼지 존내 많을텐데 어쩌지?', '내 VPN 잘 되겠지?' 이런 고민을 뒤로한채, 나는 딥-슬립에 빠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짐을 한아름 담은 캐리어를 주섬주섬 챙기고 집합장소로 갔다. 비몽사몽한채로 선배들과 또래 학우(둘다 여자엿다;)들이 나를 반겨 줬다. 일정표에는 25인승 대형버스라 적혀잇지만 실제로는 15인승 작은 마을버스 처럼 보이는 버스도 나를 반겼다. '잘 다녀올게.' 각자 인사를 마치고, 차에 몸과 짐들을 욱여넣은채 불편한 자세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엉망진창인 상황에서도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들었다...

1시간 후. 다리를 건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안개의 공격에 잠식된 인천공항)

도착하자마자 인솔자(여행사 측)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수속절차를 밟기 전 미리 구매한 비품들을 나눴다. 근데 마스크가 안보였다. 

'선배, 마스크는요?' 

'아, 마스크?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안 샀어.' '?????????????????????'

나는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내가 미리 챙긴 마스크를 생각하며 화를 누그려트렸다. 

인솔자가 인식용 목걸이와 여권, 탑승권을 나눠주고, 간단한 수속절차에 대한 사항을 알려주었다. 



(여권과 푸동 공항까지 가는 탑승권.)


(탔었던 아시아나 항공 소속 OZ361 기체)

간단한 수속절차 이후,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랫만에 탄 비행기는 내게 긴장감과 떨리는 기분을 느끼게 하며 앞으로 시작 될 여행의 신호탄을 터트리는 듯 했다. 비행했던 시간이 아침시간이라 기내식이 나왔다.  크림푸딩(난 이게 아직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버터&모닝빵에 불고기 비빔밥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먹는 한식이라는 생각에 더 각별했다. 비행 중 난기류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우리 탐사단은 1시간 반여만에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설레는 마음과 펼쳐질 행복한 활동을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입국심사대를 보자마자 덜컥 겁이 났다. 심사대를 가기 전 지문과 여권을 미리 확인하는 무인 창구에서 확인권을 받아 우리 일행은 심사대로 떠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동 쪽 사람들도 보이고 다른 학교 탐사단 일원들도 보였다. 얼마되지 않아, 바로 앞에 있던 중동 사람들이 입국 서류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공안에 의해 뒤로 다시 가게 됬다. 날카로운 심사관의 눈빛, 경직된 표정과 자세의 공안들.. 그들의 표정이 내 눈을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내 순서가 왔다. 일단 확인권과 여권을 냈다. '아. 여권은 문제가 없다!' 다음으로 지문 인식과 얼굴 인식이 남았다. 지문 인식 후에 얼굴 인식을 위해 나는 여권 사진과 최대한 얼굴을 똑같이 하기 위해 안경을 벗고 눈썹이 나오게 이마를 깠다. '제발 통과여라... 제발! 공항에 발만 들이고 갈 순 없어...' '다음.' 기계에서 무미건조한 한국어 음성(TTS)이 흘러 나왔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심사대를 도망쳐나오듯이 빠져나갔다. 수하물 찾는 곳에서 캐리어를 다들 찾은 후 공항을 나오는 길에 가이드(중국 교포, 소위 조선족)와 합류해 진짜 25인승 대형버스에 올랐다. 


(가다 찍은 상히이 어디 요양병원)

처음 우리가 간 곳은 상해 원창리 13호.

김혜산의 집으로, 과거 윤봉길 의사와 백범 김구가 만나 아침 식사를 하고 시계를 교환한 곳으로 알려졌다. 가이드를 따라 좁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보니,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였다. 이 때문에 이곳을 찾기 어려운 것은 가이드도 마찬가지라 한바퀴를 돌고 나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집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물론 그 주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적지를 맞은 선배가 설명을 시작했지만 다들 공사현장에서 날리는 분진과 페인트 냄새, 거주자들의 따가운 눈총(좁은 골목에 10명 가량이나 서있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30°c 이상에 육박하는 상해의 날씨때문에 모두가 그냥 서있다 시피 했다. 모두가 기진 맥진한 채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목적지는 원래 남창로(신규식 선생 거주지 추정)였으나 시간 관계상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가 되었다. 큰 실망을 안겨준 원창리 13호의 보존 상태와는 달리, 상하이 시와의 연대를 통해 보존된 임시정부 유적지 답게 보존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내부에서 관련 영상물을 보고, 나는 이 국외사적지에 대한 발표를 시작했다. 

'이 청사는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 조계지에 세워 졌고, 사실 최초의 임정 청사가 아닌 두 번째로 정식적인 활동을 했다 할 수 있는 청사이며..'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 관계로 발표를 서둘러 마치고, 우리 탐사단은 기념사진을 앞에서 찍었다. 내 프사도 여기서 찍음 ㅎ 


(그 프사)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며 든 생각은 생각보다 미세먼지가 덜하고(오히려 한국보다 덜하다. 스모그의 유무가 크다고.) 또 상징적인 임시정부 유적 이외에는 보존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이였다(실제로 앞으로 본 사적지들도 원창로 13호 같이 표지판이 하나도 없다).점심식사는 놀랍게도 한식이었다. 

근데 기내식으로 먹은 불고기라서 당황했는데 먹을만 했고 같이 나온 된장찌개도 두부 뭐 그런것만 들어간게 아니라 버섯에다 애호박 같은게 많이 들어가서 굉장히 잘 먹었다. 그리고 콜라랑 사이다. 한국에서 느끼는 것 보다 단맛과 탄산이 더 강했다. 한국 콜라랑 사이다보다 맛있엇음.

다음 목적지는 국외유적지가 아니라 상하이 사범대였다. 사범대에 뭐가 볼게 있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 안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위안부 역사관이 있어 들르게 되었다. 들어가자마자 잔디밭 한가운데 나란히 앉은 한국과 중국 소녀상이 눈에 띄었다. 

역사관에 들어가 설명을 듣고, 중국 일본군 '위안부 ' 피해자들을 위한 모금을 위해 판매하는 위안부 기림 핀을 샀다. 50위안 정도로 기억하는데 어차피 나는 알바를 뛰어서 1200위안을 가져갔으니 상관이 없었다. 


(중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 뱃지)

다음으로 동방명주을 보러 갔다. 동방명주 주변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즐비했다. 동방명주를 보러'만' 가서 아쉽긴 했으나 동방명주를 둘러 싸고도 안까지 이어진 줄을 보고 그러려니 했다. 


(거의 누워서 찍은 동방명주)


(가장 상하이에서 높다한 빌딩, 가운데)

저녁 식사는 배를 개조해 물 위에 뜬 식당에서 했는데, 중식이었다. 돌림판 위에 음식이 나왔다. 근데 무슨 계란찜은 간장맛 밖에 안나고, 민어찜은 그나마 나았으며, 어느 고기요리는 향신료때문에 먹기 힘들었다. 적당히 배를 채우고, 나는 바깥에서 풍경사진이나 찍으려 탐사단원들과 밖에 나왔다.


(사실 거기서 찍은게 이거 맞는지 모름)

꽤 끔찍한 저녁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2일간 머물 호텔에 갔다. 


(호텔 키를 여기 넣어서 방마다 나눠줬다)

나는 2학년 남자 선배(그때 학생회 소속 부서 대표 후에 학생회장)와 같은 방을 쓰게 됬다. 방은 꽤 넓고 침대는 푹신했으며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와이파이도 있었고(개같게도 내가 가져간 NORD VPN은 작동이 안됬다. 근데 카톡이나 네이버는 됨.) 샤워를 끝내고 다같이 선생님과 동행해 호텔 앞 편의점을 갔다. 나는 거기서 복숭아맛 홍차와 푸딩을 하나 씩 샀다. 호텔로 돌아온 후 탐사단원 대부분이 우리 방으로 모여 보드게임이나 단체 게임을 즐겼다. 사실 다른 방에 가지말라 그랬는데 그래도 한번뿐인 추억이라 그런것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부분의 게임에서 조기 탈락해 한국서 가져온 간식과  사온 간식을 즐겼다. 운이 나쁘게도 내가 산 푸딩은 기내식으러 나온 그 푸딩이었다. 나는 푸딩을 그냥 삼켜버리고 홍차로 입을 행구었다. 바쁜 일정 때문에 피로해진 나는 게임하고 있는 탐사단원들을 놔둔채로 푹신한 침대에서 금세 잠이 들었다. 


)반응 나빠도 다음 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