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버섯구름」중 일부 발췌

 자네는 살아있는 지옥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보았네. 정확히는, 그 지옥의 한복판에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지.
 그 날은 이상하게도 꽤나 하늘이 맑았네. 이제 가을로 접어든 평양은 무더위가 한풀 꺾여 적어도 한여름보다는 훨씬 시원했네.
 나는 서재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네.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네.
 이 때문에 며칠간 내각의 분위기가 뒤숭숭했네. 김 장군이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를 표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모택동이 곧 군대를 파병할 거라는 이야기도 돌았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도 내가 쓰고 있는 작품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네. 해방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남조선 인민들에게 혁명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소설을 써야한다는 생각에서였지.
 그래서 지하 창고로 내려가 내가 쓴 원고지를 그 자리에 서서 읽어보기 시작했네.
 지금 생각해보니, 만일 내가 서재에 남아 신문을 계속 읽고있었다면, 아마 나는 이 글을 쓸 수도 없었겠군.
 어찌되었던 내가 그 자리에서 서서 원고지를 읽어보고 있었네. 마지막 장으로 넘기려던 그 순간, 눈 앞에 아주 밝은 빛이 보였네. 내 인생에서 본 가장 밝은 빛이였네.
 그리곤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들렸네. 마치 귀가 멀어버릴 것만 같았지.
 그리고 거센 바람, 아니 태풍이 부는 것 같았네.
 마치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듯 한 태풍이 모든것을 날려버렸네.
 내가 몸을 일으킨 것은 바람이 멎고 나서였네.
 나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네. 갑자기 맑았던 하늘에 태풍이 불었을 턱은 없었을 것이였는데..
 다락문이 열리지 않아 몸을 부딪혀 겨우 열 수 있었네. 내가 지상으로 올라오자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내 집이였던 곳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고! 자네는 믿을 수 있겠나?
 내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후덥지근함이였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더위가 한풀 꺾여 덥지 않았다고.
 의아하게 여기던 참에 나는 그것을 보고야 말았지.
 버섯구름. 멀리서 보이는 그 버섯구름을 보며 나는 그제서야 상황을 알아차렸네.
 이 미친 미제놈들이 평양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네. 5년 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그랬듯, 이번엔 평양이였네.
 버섯구름 주위에는 불에 타고 있는 집들.. 아니, 도시가 보였네. 그 넓은 도시의 모든 건물들이 불에 타고 있었네.
 나는 그 곳으로 달려갔네.
 오, 나는 아직도 그 곳의 광경을 잊지 못하네. 내가 미리 일러두지만, 난 그 곳의 참상을 조금의 숨김 없이 적겠네. 그러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여기서 멈추시게.
 불타는 건물 잔해에 깔린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네.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네. 아마 고통을 참기가 힘들었을 것이였네.
 피부가 녹아내린 한 사람이 비적비적 걸으며 무어라 중얼거리기에 가까이 가 들어보니 이런 말이였네.
 "물.. 물.."
 그는 물을 찾던 도중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네. 그리고 다신 일어나지 못했지.
 나는 이 지옥과도 같은 곳 사이에서 어찌 해야할지 모른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네.
 그러던 와중, 다리에 무언가 비명 소리가 들려 뛰어들어갔네.
 그 곳에는 불타는 사람들이 있었네.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은 비명을 내지르다 이내 다리 밑으로 떨어졌네. 불 붙은 몸이 산산조각나는 그 모습을 보곤 나는 구토하고 말았네. 도저히 그 광경을 더는 볼 수 없어 도망치듯 빠져나왔네.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네. 이제 겨우 말을 배운듯 한 아기가 엄마를 부르며 거리를 뛰어다녔네. 그 아이의 한쪽 다리의 피부가 녹아내려 아이는 아프다는 말과 엄마를 함께 부르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갔네.
 정신 없이 뛰어다니다보니 어느새 한 구제고등여학교 앞이였네.
 학교는 불에 타고 있었는데, 학교 앞에 여학생들이 줄지어 주저앉아 있었네.
 비명을 내지르거나 울면서 친구를 찾고 있는 모습이 내겐 공포로 다가왔네.
 그러던 와중,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말했네.
 "동지.. 물 없으십네까..? 너무.. 너무 아픕네다.. 동지.."
 그녀는 내게 울먹이며 말했네. 그녀의 교복은 갈기갈기 찢어져 겨우 몸을 가리고 있었고, 온 몸에는 화상으로 인한 물집이 잡혀 있었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계속 같은 말을 중얼거렸네.
 "동지.. 제발.. 뭐라도 좀 주시라요.. 뭐든지 할테니 제발.."
 나는 그녀를 딱하게 여겨 어떻게든 도우려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네.
 그 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리기 시작했네. 그래, 검은 비였네.
 방사능에 오염된 그 비가 내리자, 울먹이던 그 여학생은 하늘에 은혜라도 입은 듯 황홀한 표정으로 그 검은 비를 입을 벌리고 마시기 시작했네.
 그녀의 얼굴을 문득 보았는데, 화상 물집으로 흉해지지만 않았어도 눈이 맑아 누가 보더라도 꽤나 귀여운 얼굴이였을 것이였네.
 그녀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이 하늘에 팔을 벌리고 그 검은 비를 마시기 시작했네. 그 검은 비를 맞은 사람들은 얼마 가지 않아 죽었다고 했으니.. 아마 그 여학생의 맑은 두 눈을 다시 볼 수는 없을 걸세.
 나는 지금까지 본 충격적인 모습들을 뒤로한 채 병원으로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겼네.
 병원은 아수라장이였네. 살아남은 의사들이 업혀오는 환자들을 받으며 이리저리 주삿바늘을 꽂고, 어떤 환자에겐 가슴압박을 하고 있었네.
 병원의 모습도 바깥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네.
 몸 속에서 빠져나온 내장을 주워담는 사람도 있었고, 눈알이 빠져버린 사람, 두 다리를 절단해 병원 바닥을 기어다니던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왔네.
 나는 그제서야 알아차렸네.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는 평양은 없어졌고, 지옥만이 남았다는 것을.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