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도시는 탄니사를 제외하면 월영에서 그 도시의 뜻을 담아 번역했으며, 이것이 민복어로 다시 전해지며 이러한 도시 이름으로 알려졌었다. 지도는 옛 테란의 주요 육로, 도시를 현 테란의 지도에 대입한 것.)


테란은 세계대전 결과 서남 5주와 피노치아에 대한 지배권을 잃고(다만 테란은 이후 유라시아에 꾸준히 로비를 넣었고, 냉전시기에 유라시아 등의 반공•서방 승전국들과 체결한 카스카다시아 강화조약의 내용에 따라 해당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했다고 주장 중이다.) 이후엔 내전을 겪으며 망스크 왕조가 성립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 이전의 이야기다. 근대의 테란 이야기이다.


근대 테란 연합의 5대 도시는 수도 탄니사(Tashnizshar), 동해관(Darvozai ʙahri şarqī), 서강관(Darvozai darjoi Ƣarʙī), 남산관(Darvozai kūhii çanuʙī), 북림관(Darvozai çangali şimolī)이었다.

수도 탄니사를 제외한 나머지 도시는 외국에서 테란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현재 이 도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타슈니즈샤르(탄니사)

화려한 모습을 하던 테란의 옛 수도. 전쟁 후 졸지에 국경 도시가 되었으나 그래도 국가의 부와 각종 명문가 귀족들이 모여사는 최대 도시였다.

그러나 아크튜러스 망스크를 필두로 일어난 반군에 연합이 붕괴하고 테란자치령이 성립되자 이곳은 반역향으로 찍혔다. 도시 복구도 매우 느렸고 상당한 탄압을 받았으며 뒤늦게라도 망스크 쪽에 붙으려 애쓴 사람들은 모두 동해관으로 떠났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고 여전히 타슈니즈 주 최대 도시지만 이제는 전혀 화려하지 않고, 주도 타이틀마저 빼앗긴 채 쇠락을 계속하고 있다. 다른 지역들에서 반 망스크 세력이 계속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그렇지 못한데, 철저히 탄압당해 반대파가 뿌리뽑힌 것도 있고, 다른 지역들과 달리 망스크 가 전원을 혐오하기 때문에 발레리안 망스크와 편을 먹지도 않기 때문이다.


다르보자이바흐리샤르키(동해관)

현 수도이자 테란 최대 도시. 오래 전부터 월영 등과의 교류를 위한 창구였고, 테란의 제국주의화를 이끈 곳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패망해서 우모자를 뺀 나머지 지역을 잃고 서남 5주까지 상실한 후에 국가의 중심 위치에 있는 도시가 되며 위상이 더 높아졌다. 망스크 가문은 이곳 출신으로, 망스크 1세가 황제에 등극한 후 수도도 이곳으로 옮겨왔다.(정확히는 이 도시의 '아우구스트그라드 구'가 수도이다.) 노 망스크가 부왕의 자리에 오르고 아버지를 허울뿐인 황제로 만든 지금은 노 망스크에 충성하는 분위기이다.


다르보자이다르조이카르비(서강관)

사실 다르보자이다르조이까르비가 더 실제 발음에 가깝다.

테란 시절에는 육로, 수로 모두 집결하는 도시라 중요도가 매우 높았고, 사막 한복판을 흐르는 강변에 위치한 도시라 인구밀도도 매우 높았다. 강을 이용한 수운이 쇠퇴하고, 카가야의 지배를 받는 지금은 어떨지 불명.


다르보자이쿠히차누비(남산관)

테란에 소속되었던 시절부터 숲과 산들 사이에 위치한 도시라 발전에 한계가 있었고, 남부의 다른 두 도시들이 성장하자 육로 교통이 그쪽 위주로 발달하며 이미 쇠퇴하고 있었다. 테란에 소속되었던 시절에 이미 주도마저 빼앗겼을 정도. 테란에 있었을 때는 그래도 한 주의 최대 도시 정도는 됐지만 지금은 몰락한 것으로 보인다.


다르보자이찬갈리쉬몰리(북림관)

아르파지스탄 또는 카시크스탄 등을 거쳐 육로로 다른 여러 나라로 갈 수 있기에 상인들이 많이 살았다. 냉전 시기에는 주변국들과의 사이 때문에 발전이 정체되었으며, 주의 왼쪽 아래 구석에 있다보니 주도 지위도 상실했다. 그래도 테란 아래에 있고, 망스크 왕조 성립에 기여한 짐 레이놀드 덕에 타슈니즈샤르 꼴은 안 날 것으로 보였으나, 레이놀드가 아크튜러스 망스크와 사이가 틀어지며 역시나 반역향으로 찍혀버렸다. 지금은 발레리안 지지세가 강한 지역으로 정부군이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