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책은 화정공화국 교육부가 <은화역사서>를 개정하여 풀판하였습니다. 


1966년 : 태초

대한민국과 서독, 미국이 공동으로 이 행성을 발견하였다.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행성에 섬을 만들어 미래의 지구 포화상태를 대비하여야 한다고 했다. 연구원들은 동옥국의 수도 장경에 머물며 행성의 역사에 대해 조사하고 갔다 


1973년 : 시작

섬의 이름이 은화도로 결정되어 즉시 간척에 들어갔다. 미원지구와 혁신동을 제외한 곳이 이때 만들어진 섬이다. 계획안 또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1975년 : 사람이 살다

간척이 완료되어 사람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며 최초의 마을은 서일군 서일읍 오원마을이며 45년 전의 모습을 보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1980년 : 독재 타도!

계속해서 독재를 하며 부당한 대우를 했던 명숙현 전 은화도지사를 타도하는 시위가 섬 전역에서 일어났다. 모든 경찰들이 시위를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명숙현은 독재와 인권탄압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명숙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1984년 : 최초의 간척 계획

오성시 북서부 구석에 위치한 장사리 해상 20km 지점에 섬을 하나 계획하려 했으나 도청 당국은 재정 부족과 동옥국과의 충돌을 이유로 들어 취소시켰다. 이에 장사리 주민들이 반발하였다. 


1988년 : 독립

대한민국 정부와 교신이 예기치 못하게 중단되어 은화국은 독립하였다. 독립선언서를 도청 앞에서 낭독한 오준석 은화도지사가 초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대통령은 수도를 도청이 있던 오성시 동명동으로 하였으며 부정부패 척결과 부처 조직 개편 등 대한민국 독재정권으로부터 벗어나는 이른바 <독립 개혁> 을 하였다. 


1989년 : 첫 외교관계

은화국과 동옥국이 대사급 수교관계를 맺고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했다. 이때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는데, 은화국은 금색 독수리 훈장을 선물했으며, 동옥국은 지름이 60cm나 되는 옥구를 선물했다. 현재 그 옥구는 국립박물관에 있다. 


1990년 : 최초의 두 읍의회

오성시를 오성시와 오성읍으로 분리했다. 행정명령으로 군은 지역을 묶는 구역에 불과한 신세로 전락했다. 오성읍의회가 개회하자 주민들은 박수를 치며 오성 만세를 외쳤다. 동시에 서성군을 서일읍과 서월읍으로 분리했다. 


1993년 : 행정구역 통폐합

대원군과 신대원읍을 합쳐 대원시로 승격했다. 대원군민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고 신대원읍 주민들은 인구가 시 승격 조건에 만족해 신대원시를 꿈꿔왔으나 좌절되자 반발하는 분위기였다. 


1999년 : 신오성

오성시와 오성읍을 합쳐 신오성시로 명했다. 시청은 오성시의 것을 그대로 이어갔다. 오성읍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여 폭력시위를 일으켰으나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체포되었다. 


2003년 : 최초의 군

서월읍이 서월군으로 승격했다. 읍의회는 존치하지만 읍을 분리하였다. 

안천영리 -> 안천영면 

화천리 -> 화천면

동산리 -> 동산면 

문사리 -> 문사면 (서월중앙동)

은포리 -> 은포면

방수리, 아현리 -> 아라읍


2006년 : 3차 개편

서월군이 서월시로 승격함과 동시에 서일읍이 서일군으로 승격했다. 반응은 둘다 시원찮다. 


2010년 : 지진 

규모 5.5의 지진이 서일군 서일읍 중연리의 한 논밭에서 발생했다. 전국에서 지진이 느껴질 정도였으며, 서일군이 피해가 제일 심했다. 이 지진은 발생한지 8개월만에 완전 복구에 성공했다. 


2015년 : 천도

수도를 서월으로 이전하는 대신 신오성을 특별자치시로 승격하였다. 신오성 시민들은 반발했고 서월 주민들도 찬성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2019년 : 화정의 빛 

이 섬을 기획한 화정 문경성 선생의 호를 따 국명을 바꾸자는 안이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최종 투표 결과 찬성 100% 반대 40%로 국명이 화정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