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원면은 범장면과 북면으로 나뉘어졌었었는데 1958년 합쳐졌다.

아무튼 1945년으로 올라가보자

1945년 11월 11일, 대민국과 대복국이 범장면 유서제리(儒書齊里) 에서

유서무 전투가 일어났다. 대민국과 대복국의 군대는 서로 마을 주민들이 적에게 협조한다 생각하였고, 유서제리를 포함하여 그 일대의 마을의 주민들을 학살했다. 그 여파는 북면까지 가게 되었고, 범장면과 북면의 땅에는 피가 묻어있지 않은곳이 없었다 한다. 그래서 땅이 피로 물들여졌다하여 통합할때 

붉을 赤에 들판 原틀 썼다한다. 이로인해 사망자 4700명 부상자 9900명 이란 어마무시한 사상자 수를 내었다.

그리고 학살을 주도한 대민국과 대복국의 지휘관들은 1955년 재판을 받아 20명 사형, 2명 무기징역, 1명 18년형, 1명 6년형과 벌금 (지금 시세로) 8억 7000만원 을 선고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은 20명은 1963년 2월 15일날 집행되었다. 무기징역 2명은 김칠수(1912~1980)와 기수형(1908~1983)도 각자 감옥에서 늙어죽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