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패망했는가

[3편-천조국과의 격차]


(2편 링크:https://arca.live/b/nihonbunka/1286862?&target=title_content&keyword=%EC%99%9C%EC%9D%BC%EB%A7%9D&p=1 )


저번에 알아본 바와 같이, 일본은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진주만 공습으로 미 태평양 함대를 격파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일본이 전쟁을 가장 큰 이유는 석유였다. 석유가 있어야 함대가 움직일 수 있고 함대가 움직여야 제국의 힘을 떨칠 수 있었다. 이때의 해군 전함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핵추진 항공모함이라 전략 폭격기, 대륙간탄도미사일과도 같은 전략 무기로 취급받아 군축조약까지 체결할 정도였다. 다시 말해 석유란 국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였다.


그런데 일본엔 석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석유를 쓰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일본은 독일에게서 석탄액화기술도 받아오려고 하는 등 최대한 석유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일본은 자그마치 80%의 석유를 미국에게서 수입해 와야만 했다. 국가를 유지하는 힘의 80%를 주는 나라와의 전쟁이라니 이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도 백이면 백, 절대 안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 놀라운 일을 한 것이다.


석유도 석유지만, 미국은 공업력이 엄청났다. 미국은 세계 1위의 공업국가였고 그 생산력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단적인 예로 함선 생산량을 보도록 하자.



1922년 샌디에이고 해군기지에서 찍힌 사진이다. 여기 있는 배는 모두 같은 급, 다시 말해 같은 설계안을 가지고 만들어진 배였다. 평갑판형 구축함이라고 불리는 이 구축함들은 1917년부터 1922년까지 도합 273척이 건조된 함급으로 미국의 생산력을 잘 모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1년에 68척이 건조된 꼴이다. 그런데 1차대전은 1918년에 끝났으므로 이 구축함들이 생산된 기간의 2/3은 전시가 아닌 평시라는 게 함정이다. 전시에 민간 산업마저 군수산업으로 전환되면 그 생산력은 얼마나 뛰어나겠는가.


1차대전 당시 전시 2년, 평시 4년간 구축함 273척을 뽑아낸 미국의 생산력은 더더욱 강해졌다. 아래는 전쟁 동안 미국이 만든 함정의 숫자이다.(일부 수치는 부정확할 수 있음)

-1만 톤급 리버티 수송선:1941~1945년까지 2710척 건조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1942~1944년까지 50척 건조

-보그급 호위항공모함:1941~1943년까지 45척 건조

-플레처급 구축함:1941~1944년까지 175척 건조

-에식스급 항공모함(만재 36380톤):1941~1945년까지 24척 건조

-발라오급 잠수함:1942~1946년까지 128척 건조


이동안 일본은 몇 척이나 되는 군함을 만들었을까? 에식스급 항공모함이 24척이 찍혀나오고 미군이 태평양 전쟁 총 기간동안 만든 항모가 143척인데 일본은 원래 있던 걸 합쳐도 22척밖에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수치는 작고 느린 호위항공모함까지 다 합친 수치인데도 당대 최대의 항공모함(시나노는 전함을 개조한 거라 효율성도 떨어지고 투입도 못하고 격침됬으니 제외)인 에식스급보다도 적은 수치다.


그럼 비행기는? 일본의 주력 전투기 제로기는 11000대가 약간 안되는 수량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1943년까지 미 해군의 주력 전투기던 F4F 와일드캣은 7885기, 그 후의 주력 전투기인 F6F 헬캣은 12275기가 생산되었다. 육상 전투기까지 합치면 더욱 절망적인데 일본에서 나름 좋은 전투기인 Ki-84 하야테는 3514대, 일본군 최강의 전투기인 시덴카이는 1532기가 생산됬다. 미군은 그동안 P-51 머스탱을 15000기가 넘게 생산했다. 대부분은 유럽으로 갔지만 저중 20%만 따져도 3천 기가 넘는다. 조금 더 와닿게 설명하자면, 일본은 장인 여럿이 하루 동안 존투기를 만들 동안, 미국은 B-24 폭격기를 1시간에 1대씩 찍어냈다. 전투기보다 더 크고 복잡한 폭격기임에도 말이다.

[B-24 폭격기 생산 공장]


더 큰 문제는, 수량이 부족하면 질로 때우면 되겠지만 질이 더 나빴다. 미 해군의 전투기 F6F 헬캣과 제로기의 교환비는 자그마치 19:1이었다. 다시 말해, 헬캣 1기가 격추될 동안 제로기는 19대가 떨어진 것이다. 일본 우익들이 천상의 전투기, 최강의 전투기라며 물고 빨던 제로기의 현실이다. 헬켓보다 훨씬 성능이 떨어지고 단순 수치상으론 제로보다도 성능이 나쁜 전쟁 초기의 F4F 와일드캣도 1:2.5의 교환비를 보여주었다. 종합적으로 전쟁 중에 미군과 일본군의 교환비는 1:10. 일본은 미군기 10대를 상대할 수 있는 전투기를 만들거나, 미국보다 10배나 되는 수의 항공기를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일본은 질과 양 모두에서 밀렸던 것이다.


일본은 전쟁 전에, 미국에서 석유와 정밀공작 기계를 주로 수입했다. 그럼 과연 일본은 뭘 주로 수출했을까? 바로 비단이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서구화된, '명예 서양인'의 나라가 바로 비단은 주요 수출품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만, 일본이 얼마나 자신과 적을 몰랐는지 보여줄 수 있는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무기보단 사람이 중요하다. 독일은 종잇장 같은 장갑을 가진 장난감 같은 탱크로 유럽 최고의 육군 강국 프랑스를 한달만에 평정했고, 핀란드는 저격수와 스키 부대를 바탕으로 소련의 침략을 거의 물리칠 뻔 했고 소련은 실제로 이겼음에도 얻은 게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은 이것마저 잘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