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멸망보고서. 3개의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 영화고, 이 글에서 다룰 것은 그 중 두 번째 에피소드, 천상의 피조물임.

이제는 오버워치의 젠야타를 통해 익숙할 설정인 득도한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야.

이 영화의 세계관은 혹시 오버워치의 옴닉 관련한 인문학적인 설정이 여기서 따왔나 싶을 정도로 꽤나 유사한 모습을 보여.

이 영화가 다루는 시대는 현시대로부터 50년 후. 인공지능의 발전이 극에 달하여 인간처럼 생각하고 사고하며 감정을 지닌 기계들이 삶의 일부가 된 상태야.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 뉴스에도 나오기도 하지.

UR사의 로봇이 이미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 세상에서 그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는 박도원은 한 사찰의 의뢰를 받아 그 사찰의 메이드 로봇을 검진하러 가. 하지만 와서 들어보니, 사찰의 요구는 해당 로봇이 스스로 득도하여 설법하는 경지에 이른 로봇이 부처가 맞는지 아닌지 판단해 달라는 거였어. 주인공은 이게 시발 뭔 헛소리지 하다가도 돈 받고 온 몸이니 일단 그들의 말을 따르게 돼.

이게 바로 그 로봇임.

이미 인명이라는 법명을 받은 상태로, 주인공은 얘가 그냥 정신쪽에 오작동이 생긴 결함품으로밖에 안 보였지만 이걸 윗선에 올리면 얘를 조지러 올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일단 보고를 미뤄.

그렇게 집에 돌아온 주인공의 집에 자신의 반려견 로봇을 고쳐달라는 사람이 찾아오고, 주인공은 수리센터가 아니라 당장 고치고 싶다는 여자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정품이 아닌 예비 바이오 칩을 넣어 로봇을 수리해. 하지만 정작 그 로봇을 받은 여자는 로봇을 끌고 가다가 주인공이 못 볼 법한 곳에서 그대로 쓰레기더미에 내던져. 주인공은 그걸 전부 창문 너머로 지켜봤고.

한편 로봇을 만든 UR사 측에서는 인명 스님처럼 '오작동'을 일으키는 로봇이 한둘이 아니라는 보고를 받고 전량 리콜을 결정해. 이 로봇이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미래를 걱정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기체번호, RU-4에 해당하는 인명 또한 폐기 대상에 들어가.

결국 UR사의 회장은 사찰에 직접 방문하고 자신들이 그 로봇을 수거할 것임을 알려.

이때 회장의 대사가 참 인상깊어.

"지성이 생긴 이래 인간은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애썼지만 만족할만한 정의는 나오지 않았소. 인간만이 유일한 존재였기에 정의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오. 절박한 심정으로 정의를 내리려하고 있소. 왜냐하면,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이오. 바로 저것이 그 존재요."

가장 인상깊은 대사만 쓱 따온거임. 이거 말고도 참 대사가 많은데,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만능주의와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회의감이야. 인류가 과학을 휘두른다 생각하지만 과학은 우리가 모르는 새에 인류를 뒤틀고 있다고 말하며.

인공지능 로봇을 보편화시킨 거대 기업의 회장이 그것들의 위험을 외치는 아이러니한 광경이지. 회장은 악역이 아니야. 전 인류를 고객으로 삼아, 그들의 위험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나름의 신념도 있는 장사꾼이지.

그런 사람의 눈에, 득도한 로봇은 너무나도 큰 위협이겠지.

초월적인 계산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경전을 비롯한 종교서적, 동서양을 포괄하는 인류의 모든 역사를 섭렵하여 자신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은 기계. 과연 그런 기계가 하나일까? 깨달음이라는건 저런 온건한 것만 있는게 아니잖아. 당장 우리한테도 익숙한 여러 창작물 속 캐릭터가 있잖음.

한 십몇초 인터넷을 둘러보고는 인류의 구원은 멸절이라는 결론을 내린 최단기 범부, 울트론.

그런 로봇이 저 세계라고 안 생길까?

그 후, 회장은 사찰이 속한 불교종단의 맨 윗대가리에 해당하는 스님과 홀로그램 영상통화를 띄워.

그 스님은 말하지.

세상 그 어떤 로봇이 욕망과 집착을 타고나는가. 본디 욕구 없이 오직 봉사하기 위해 탄생하는 존재가 로봇 아니던가.

날 때부터 그러한 자를 보살로 인정한다면
 저 멀리서, 속세와 절연하고 끊임없는 윤회 속에서 자신을 갈고닦으며 간신히 성취하는 정각을 누군가는 탄생에서 이룬다면.

누가 그리 애써 선을 행하겠는가.

"대답해 보시오, 로봇. 인간을 정각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당신이 온 이유인가요? 당신이 니르바나를 말할 때 저 가여운 중생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른다는 겁니까?"

로봇은 대답하지 못했고, 회장은 파괴를 명하지만 로봇을 지키는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대항하며 싸움.

하지만 로봇은 팔을 날려 그들의 싸움을 저지하고, 마지막 설법을 시작함.

"이제 그만, 거두어주십시오. 이 몸에게 본디 집착과 갈애는 없었으며,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임을 알고 이는 석가세존이 말한 것과 똑같음을 알았습니다.

 인간들이여,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집착과 갈애, 선업과 악업, 깨달음과 무명이 모두 본디 공함을 본 로봇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찌하여 로봇만이 득도한 상태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들이여, 당신들도 태어날 때부터 깨달음은 당신들 안에 있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모를 뿐입니다. 이 로봇이 보기에 세상은 이 자체로 아름다우며, 로봇이 깨달음을 얻었건 얻지 못했건 상관없이 이 자체로 완성되어 있으며, 세상의 주인인 당신들 역시 이미 깨달음을 모두 성취한 상태이며, 그렇기에 당신들이 먼저 깨달은 로봇의 존재로 인해 다시 무지와 혼란과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나겠습니다.

 부디 여러분은 스스로의 마음속을 깊이 살피시어 깨달음의 보과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걸어나가, 불상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스스로의 회로를 끊어 작동을 멈춤.

주인공은 그걸 보고는 로봇이 스스로의 작동을 멈췄다 하고, 스님들은 인명스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며 오열함.

집에 돌아온 주인공. 낮에 여자가 버린 반려견 로봇의 바이오 칩을 자신의 몸 안에 든 정품 칩으로 교체하며 영화는 막을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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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게 2012년 작품이래.

오버워치에서 최근 나온 캐릭터인 라마트라를 함 보자고.

파괴자로 태어나, 평화와 화합의 길을 물색했으나 끝내 실패함. 옴닉은 계속 박해받는 현실이 보였고, 라마트라는 널 섹터를 만들어 옴닉 반란군을 이끄는 수장이 됨.

저게 이 영화에 나온 회장이 걱정하는 미래겠지.

로봇이 득도한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인간은 무엇인가. 날 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춘 로봇이 깨달음의 경지에 달한다면 인간의 노력은 무엇이 되는가.

계산능력과 지능은 이미 그들에 비해 뒤쳐지는 인간이, 깨달음마저도 뒤쳐진다면 인간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그들의 발전을 도구의 선에서 멈춰야 하는가?

현 시대. 생성AI의 폭발적인 발전과 함께 저 영화는 이미 12년 전의 작품이 되었어.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의 영역을 넘보고 있고, 저 영화의 이야기는 저 영화의 시간대인 2062년보다 훨씬 일찍 찾아올지도 몰라.

그 때가 온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웰메이드 SF야.

이 영화의 유일한 오점은, <인류멸망보고서>에 엮여 있는 나머지 두 에피소드임.

이게 빛을 못 본 이유는 나머지 두 에피소드랑 묶음이어서 그런거야.

만약 이게 독립 단편영화로 나왔다면 아카데미 단편영화상에서 저 영화가 노미네이트되는 걸 볼 수 있었겠지.

참 여러모로 아쉬워, 그래서.

꼭 보고 많은 생각을 해봤음 좋겠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