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인스타로

"한 달 전에 청첩장을 해외우편으로 보냈는데 잘 받았어? 나 오늘 결혼해."

라고 메시지가 와서 가슴이 철렁했다. 

우편물 같은 거 전혀 못 받아서 몰랐지.

놀랍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고,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데도, 

보이스 메시지로 축하한다고 놀라서 떨리는 목소리로 장황한 말을 녹음해 보냈다. 


머나먼 해외로 보내는 택배에 뭘 대단한 걸 축하선물로 보내겠냐 싶어도, 

유심히 좋은 선물거리 잘 찾아보다가, 

결혼생활 꿀처럼 달콤하고, 항상 둘이서 찰싹 달라 붙어지내라고, 

인근 농장에서 만든 유기농 꿀을 한 단지 구해서 충진재에 잔뜩 감싸서 보냈다. 

꿀보다, 택배비가 훨씬 비싼 게 에러였지만, 

그래도 축의금 내는 셈치고 그냥 보냈다. 


바쁜 탓인지 택배는 잘 받았는지 연락이 없더라. 

예전에는 서로 편지나 소포 주고 받으면 잘 받았다고 사진 찍어서 보내줬는데.

좀 서운하기는 해도, '결혼이랑 창업 준비 동시에 하느라 바쁘겠지.'

하고 넘기고는, 나도 5월 이후로 거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오늘 장 보고 방에 들어오면서, 

우편함을 체크하는데, EMS로 커다란 봉투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EMS라길래 한국에서 올 게 없는데 싶어서 자세히 보니, 

송장에 일본어가 적혀 있어서 걔가 보낸 것을 퍼뜩 짐작했다. 


예쁜 연하장에, 가지런히 포장한 선물을 받으니, 

당연히 기쁜데, 억눌러왔던 행복한 기억들이 쏟아져 나오니까,

슬퍼졌어. 


여전히 너는 다정하구나. 

날 잊지 않고 있구나. 

그리고 넌 이제 멀리 있구나.


그 아이가 가장 예쁘고 푸릇푸릇한 시절에 

같이 놀며 즐겁게 지낼 수 있어서 기뻤지. 

여름 햇살에 푸른 녹음에서 흰 나시, 감청색 긴 치마를 나풀거리며

힘차게 걷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지. 


서로 멀어지고 나서는

꿈에서 가끔 만나면, 깨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 했고, 

행여 깨면, 그 꿈을 잊을까봐 헐레벌떡 꿈을 기록하고, 

다시 눈을 붙이며 그 아이를 보기를 기대했고. 

그 꿈 내용을 편지로 적어 그 아이에게 보내며 안부인사를 대신하고.


나이가 좀 들어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조금은 변한 그 아이를 보고, 

'아, 내가 좋아했던 너는 이제 없구나.'를 깨달았음에도, 

그래도 미련에 다시 확인해보려고 두어 번 더 일본에 갔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이제는 그만두자고 다짐했고. 


이제는 성도 남편 성으로 바뀐 채로 오는 발신자 송장을 보니, 

정말 이제는 멀리 있는 사람이구나 싶네. 


선물에 담긴 향을 맡으니까, 

가슴이 떨리더라. 

상기하며 글을 쓰는 지금도. 


예전 같으면 이런 모든 감정들도 편지에 담아 

그 아이에게 직접 말해주겠지만, 이제는 그러면 명백히 실례니까.

제목대로 물리 이야기는 아니다만, 

아는 사람이랑 대놓고 이야기하기에는 좀 애매해서,

여기다 적는다. 

게시판 성격에 안 맞는다 싶으면 말해줘라, 자삭한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