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골국 삼한등처행중서성 한민국 경기로 서울부 덕수궁 중명전.



한국이 몽골과의 전쟁에서 대패해 사실상의 속국이 된 직후, 한국군은 무장해제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육군은 1개 보병사단 1만 2천명 이상으로 유지할 수 없었으며 전차와 장갑차를 포함한 모든 중장비는 강제로 폐기처분되었다.


해군은 수병 1천 명 이상으로 병력을 늘릴 수 없었고, 육군이 전차와 장갑차 등의 중장비를 폐기처분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작은 고속정 수십 척을 제외한 모든 군용 함선들이 폐기처분되었으며, 공군은 영구적으로 해체되어 수송기를 제외한 모든 군용 항공기들 또한 폐기처분되었다.


그나마 이후 조약을 개정해 10만 명 선까지는 육군을 회복시킬 수 있었으나, 중장비는 단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고, 기껏해야 공수부대나 특수부대, 보병사단 정도만 늘릴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추세가 계속 이어졌다면 어느 정도 독립적인 군사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었으나, 전두호의  군사쿠데타가 실패함에 따라 재건된 병력의 6할이 진압 과정과 전후 처리에서 상실되고, 남은 병력도 다시 몽골군에게 철저하게 종속당했다.


그리고 오늘, 그 남은 병력조차도 완전히 해체될 날이 다가왔다.


"뭘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시오? 빨리 도장 찍고 끝냅시다."


몽골군 계엄사령관이 죽상이 되어 있는 임시정부 휘하 관료들을 보며, 그들에게 앞에 놓여 있는 서류에 도장을 찍을 것을 강요했다.


"..."


하지만, 그 누구도 이 문서에 도장을 찍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것은 지난 반란 이후 남은 한국군을 모두 해체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몽골이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도 남겨두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티베트, 청해, 사천 서부와 운남이 몽골에 넘어가고, 우한과 난징, 상하이, 광서성이 함락되면서 이제 중공의 멸망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그동안은 아직 회수 이남의 중공을 상대하느라 한국을 적당히 달래줄(달래준 적이 있었는가는 의문이지만)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 중국 정복도 거의 마무리가 되 가고, 곧바로 다음 목표인 일본을 치기 위해선 굳이 삼한을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해도,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장소만 해도 그렇다. 이곳은 과거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제로 빼았은 을사늑약을 체결한 바로 그 장소였다.


날짜 역시 좋지 않았다. 오늘 8월 29일은 역시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병탄한 날이었다.


좋지 않은 장소에서 좋지 않은 날짜에, 외교권도 이미 박탈당한 마당에 군대까지 해산될 차례라는 것은 임시정부 각료들에게 더없이 깊은 막막함을 남겼다.


"거, 이렇게 시간 끌어 봤자 소용 없다는거 잘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딱 눈 감고, 도장 쾅 찍으면 그만인 일 가지고 괜히 귀찮게 굴지 마십시다."


계엄사령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난 반란 진압에서 큰 공을 세운 이신태 장군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군대를 모두 해산시키면 이 땅은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


그러자 몽골군 계엄사령관은 코웃음을 치며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했다.


"구 휴전선 이북에 주둔한 우리 군대가 남쪽으로 내려올 거요. 무슨 그런 걸 걱정하시오?" 


"..그래도, 그래도 우리 스스로를 지킬 군대는 있어야..상..국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상국에 의존하기만 하면, 너무 송구스러운 면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다시 생각해 보시면-"


이신태 장군은 그 자신 나름대로 필사적으로 군대의 해산을 막아보려 했으나, 될 리가 없었다. 계엄사령관은 이신태 장군의 말을 끊고서 이신태 장군에게 말을 건넸다.


"이 장군."


"...예, 계엄사령관 각하."


계엄사령관이 말을 건네자, 이신태 장군은 부동자세를 취하며 계엄사령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와 보시오." 


계엄사령관은 그리 말하고는, 시가를 들고 책상에서 일어나 중명전 내의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이신태도 그리로 따라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하자마자, 계엄사령관은 대뜸 이신태에게 물었다.


"이 장군, 내가 왜 거기서 당신을 바로 쏴 죽이지 않았는지 아시오?"


이태신은 잠시 당황함에 말문이 막혔으나, 곧 대답을 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자격이 되니 그런거요."


계엄사령관은 시가를 깊이 빨아마시고는, 시가를 입에서 때어내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며 이신태에게 말을 했다.


"지난 전쟁에서, 난 당신네 나라가 8시간 만에 전군의 5할이 궤멸되고, 수도가 하루 만에 함락되는 걸 보며, 여긴 참으로 형편없는 나라구나- 하고 생각했소. 


나는 거의 3일 만에 전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이다.


당신이 무려 일주일간이나 우리 군의 진격을 저지했던 것 때문이지요."


스읍- 후우-


"이때까지 싸운 다른 놈들, 특히 중공 놈들은 아무리 격차가 너무 크다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처참히 패배했소.


헌데 당신은 무려 일주일이나 우리 군의 진군을 막으며, 대구를 지켰었지요.


그때부터 이렇게 오랫동안 버틴 훌륭한 장수가 누구냐 싶어 한창을 찾았고, 또 그것이 당신이라는 것을 양산에서 알았소,


그런데, 부산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당신이 자살하려던 게 보이더이다.


그때 내가 당신을 말렸었지요."


"...예, 기억 납니다. 헌데, 왜 갑자기 지금 그때 이야기를..?"


계엄사령관이 재떨이를 쥐고 시가를 문질렀다. 그리고 다시 이신태를 향해 말을 꺼냈다.


"이미 늦었소. 황제 폐하께서 다음달 내로 한국의 국체를 폐하고 삼한을 완전히 내지와 같게 하라 하셨소이다.


당신이 이렇게 해봐야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소."


"..."


"설령 그대가 반대하여 이것이 어떻게든 무산된다 해도, 우리 정부는 기어코 삼한을 병합할 것이오, 


삼한인들이 모두 하나 되어 저항한다면, 정부에선 가차없이 그들을 모두 죽이려 들 거요.


이 장군. 우린 이미 중국에서 5억을 죽였고, 지난 전쟁 때 여기선 2천만을 죽였소.


우리 정부가 고작 3천만을 못 죽이리라 생각하시오?"


"..."


"제발, 부탁이오. 나도 삼한인들이 모두 죽는 걸 원하지 않소, 특히 당신이, 아무 의미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걸 원하지 않소.


살아만 있다면 후일을 도모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다 죽는다면 그것도 할 수 없소.


제발, 더 이상 무의미한 짓은 하지 말길 바라오."


계엄사령관은 그리 말하며, 시가와 재떨이를 방에 놓고 나갔다.


"무의미한 짓..."


이신태 장군은 그렇게 혼잣말을 했다.


어떻게든 나라가 망하는 것만큼은 피해보겠답시고 할 수 있는건 다 했다.


대구로 진격하는 몽골군을 어떻게든 7일 동안 잡아두기도 했고, 전두호의 반란을 몽골의 개입 없이 스스로 진압해 보려 하기도 했으며,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서 군대가 해산당하는 걸 막아보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것이 무의미해졌다.


몽골은 결국 한국을 집어삼킬 것이다.


외교권이 박탈되고, 군대도 해산된 다음에는, 주권이 박탈될 것이다.


그나마 중국인처럼 노예 대우는 받지 않갰지만, 절대 몽골인과 같은 처지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모든게 헛수고였다면, 난 대체 뭘 위해 이 짓을 한 거란 말인가...대체 뭘 위해.."


이신태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흐느꼈다.


그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히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