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날씨는 아주 화창했다. 평균기온 16.3도로 아침을 약간 쌀쌀했지만 낮의 최고 기온은 25.1도까지 올라간 아주 쾌청한 날씨였다.

세째 일요일이어서 상가에는 문을 닫고 쉬는 점포가 눈에 띄게 많았다. 한달이면 대개 첫째와 세째 일요일은 쉬는 날로 정하는 점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농촌에는 바야흐로 모내기철을 앞두고 그 준비에 온 힘을 쏟고 있어서 집앞과 논밭에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그런 일요일이었다.

광주직할시 북구 북동 180번지 앞 큰길. 금남로의 연장이어서 그냥 금남로길이라고 불리어지는 길이다.

……얼룩무늬 군복에 머리에는 방석망이 달린 헬멧을 쓰고 손에는 방패와 방망이를 든 1개중대 가량의 공수부대 군인들.……대결이 이 횡단보도 위에 도착할 무렵 내려진 명령이었다. 그러자 군인들은 횡당보도선에 맞추어 일제히 멈추어서서 대오를 가다듬고 있었다.

유동 3거리에서 4백50m쯤 떨어진 횡단보도. 여느 횡단보도와 마찬가지로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이 횡단 보도는 북동 180번지와 누문동 62번지를 연결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로 들어가는 길로 이어져 있다.

짧고 숨막히는 시간이 흘렀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4자 위에 서고 긴 바늘이 12자 위에 이르렀다.

바로 4시 정각이었다.

바로 이때였다. 대열을 따라온 초록색 1.5톤급 차량 위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금속성으로 위압적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거리에 나와있는 시민 여러분, 빨리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빨리 돌아가십시오."

……스피커에서 귀가를 종용하는 방송이 나온 지 1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짧은 순간을 두고 엄청난 명령이 뒤따라 튀어나왔다.

시민들에게 한 것이 아니라 지휘관이 부하들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거리에 나와있는 사람은 전원 체포하라."

딱 한마디. 이 명령 이외 어떤 세세한 행동지침이 나올 법한테 그렇지도 않았다. 아무런 군더더기도 없었다.

……

이 명령이 떨어지자 현장은 순식간에 수라장으로 돌변해버렸다.……시위했던 학생들만 잡는 것이 아니라 젊다고 보여지는 사람이면 보는대로 두들겨 패고 잡아 끌었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

……

'저놈 잡아라' '저기 간다'는 소리와 동시에 '아이구' '억' 소리가 터져 나와 거리는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횡단보도 바로 옆, 북동 276번지 3층 건물 2층에 있는 동아일보 광주지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2명의 공수부대원이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는 듯한 자세로 뛰어 올라왔다.

두 사람 모두 대검이 꽂혀 있는 M16소총을 앞으로 내밀고 서슬이 퍼렇게 되어 있었다. 마치 총검술시범을 보이는 자세처럼 착검한 M16소총을 앞으로 겨누고 있었다. 곧 아무에게라도 방아쇠를 당겨 버릴 자세, 아니면 금방 찔러 버릴 듯한 그러한 모습이었다.

……

마침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정은철총무는 바깥의 시끌벌적한 사태와는 관계없이 자기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는 '시위를 한일도 없음은 물론 구경조차 하지 않았던 터라 무슨 상관이 있으랴'는 듯 태연하게 자기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을뿐이었다.

그런데 두 군인은 다짜고짜로 정총무의 뒷 덜미를 낚아챘다. 정씨는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넘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두 군인은 정씨를 마구 짓밟고 개머리판으로 짓 이기는 것이었다. 곧 숨이 끊어 질 것 같았다. 큰 일이었다.

……

정총무는 얼마나 맞고 밟혔는지 반항하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두 군인은 사무실 바닥에서 기진맥진해 찍 소리도 못하는 정총무의 두발을 양쪽에서 하나씩 붙잡고 끌고 내려갔다. 바닥에 끌린 채였다. 마치 죽어있는 짐승을 끌고 내려가는 것 같았다. 2층 계단을 내려갈 때도 그대로 끌고 내려갔다.

……이 날 그는 자기가 맡은 구역의 수금실적이 나빠 하루 전날 지사장으로부터 질책을 받고 일요일인데도 출근했다가 당한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담당구역 수금을 하기 위해 출근한 배달학생 박준하군(광주공고 1년)도 수없이 맞고 짓밟혔다. 그리고나서 끌려나가다 계단에서 실신해버렸다. 그러자 비로소 그들은 그대로 팽개쳐 두고 내려가 버렸다.

……동아일보 광주지사 바로 앞쪽에는 두대의 트럭이 유동 3거리 쪽을 향해 정차해 있었다.

……

그 차량에는 길거리와 건물 안팎에서 붙잡혀 끌려온 사람들이 가득가득 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맞고 밟혔는지 머리와 코, 입에서 피를 토해 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의 하얀 옷자락은 피에 젖어 엉망으로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기진한 듯 눈만 껌벅껌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사람이 붙잡혀왔다. 그의 머리나 코에서는 피가 줄줄 쏟아져내렸다. 웃옷은 갈기갈기 찢겨진 채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끌고 온 군인이 대기 중인 군인에게 인계하면 또 한 차례 군화발이 날아오고 몽둥이 세례가 쏟아졌다. 그리고 짐짝 실리듯 트럭위로 이끌려 올라갔다. 그러면 거기에 있는 또 다른 군인이 '이 새끼 머리 숙여'라며 군화발로 머리와 등을 짓밟는다.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아야 끝이 난다.

……

그때 마침 택시 한대가 지나가려다가 이들에게 붙잡혔다.

감색 양복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젊은 남자와 색동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은 예쁜 새색시가 차에서 끌려 나왔다. 한 눈으로 보아도 신혼부분임에 틀림 없었다.>……이 길은 시내 중심가에서 광주공항이나 고속버스 터미널 또는 광주역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다. 그래서 이 신혼부부는 공항이나 역쪽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그들 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택시에서 끌려나오자마자 신랑은 무자비한 몽둥이와 장작개비 그리고 군화발 세례를 받았다. 이유도 없었다.

순식간에 일이었는데 신랑은 '아이구, 눈이야'하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붙잡고 땅바닥으로 뒹굴고 있는 것 이 아닌가

……

신부도 군화발로 채였는지 한복은 엉망이 된 채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사람 살려!"

신부는 자신의 몰골은 돌아보지도 않고 땅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신랑을 붙잡고 엉엉 울며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이 쌍년"

군인들은 또 다시 신부를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하더니 '빨리 꺼져'라고 소리를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