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 안된 내가 들은 증언...80년 광주 그 때 이야기 씀

그러나 일부에서 있었던 증언이니 일반화는 곤란하다 본다.

흑인소요때도 모든 흑인들이 마트 털러 가는거는 아닌 것 같이 말이지.


1. 배경

외조부님이 당시 사업차 광주지점에 계셨다. 정세 불안하지만 뭐 큰일날래나? 하고

걍 일 하시던거 하다가 민주화운동으로 기록될 사건을 만나심


2. 증언

- 총소리 나는데 오지게 겁났다고...

- 군인들이 오히려 덜 무섭고 친절했다고...근데 이점 가려들어야 하는게 외조부님 서울말 쓰신다.

   전라도 사투리 나오면 군인들이 확실히 거칠게 굴었다는거는 맞다 하심

- 어찌어찌 숙소에 지내는데, 며칠 지난 뒤에 칼빈총(M1/M2 Carbine, 예비군들이 썼다) 차고 다니는애들 보고

   애들이 옷 다 풀어헤치고 총메고다니던데 무슨 공비내려온줄 알았다고...알아보니 그게 시민군? 이라고 했대더라

- 그거 발견한 날부터 숙소 문에 겨울이불을 걸어놓고 지내셨다고 함. 덥지만 총알이 무서워서 더운줄 몰랐...

- 시민군들이 민가에서 사람을 끌어내 데려가거나 총으로 쏘는 것을 몇몇 목격하심. 

  외조부님께서 증언은 '평소 원한있던 사람이나 사이 안좋던 사람 총으로 처단했음' 이었다

   카빈총에 맞아죽은 시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외조부님이 '그 때 진짜 그랬다니까.' 라고 증언하셨음

- 위의 사적재제 목격하신 뒤에 더더욱 공포를 느끼셨다고 한다. 화장실 나가는데도 겁나셨다고 함.

   6.25때 인민재판에 지주들 끌고가던 그 당원애들 떠 올리셨다고 하니까

   외조부님 당시 실제 지주아들이라 당하심. 외증조부님이 내땅에서 굶는집 안만든다고 해 오신 덕에 

   마을사람들이 말려서 살았음. 이건 마을사람 증언 들어서 교차검증된 거니 믿고.

- 사태 진정되고 바로 못빠져나오셨고, 결국 서울본사에서 차 하나 보내서(그 땐 사업자 아니면 차 가질 엄두 못냈다)

   거기에 외삼촌들 태워보내서 구조해 왔다고 알고있음.


의외의 증언이지? 아무튼 나도 들었을 때 적지않이 놀랐다.

노태우때 선생님이 '광주 민주화운동' 에 대해 조사해오라고 시켰는데 (그래...국사선생이었어 ㅆㅂ...)

알아보려고 외조부님 댁에 갔다가 들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지. 국사시간에 가르치던거랑 틀려서 놀랐지.

하긴, 그 국사선생 덕에 대학교가서는, 머릿속에 국사를 거의 재구축하는 작업을 거쳤지만...

참고로 국사는 고딩 3년평균이 99점대였다. 다른말로 하면 완벽히 왜곡된 국사로 머리가 채워졌(...씨발...)


아무튼

형제가 모를, 그 때를 경험하신 분의 증언 남긴다. 참고해라.

총을 들었다고 사적재제를 가하던 시민군 애들 잊지 못하신다고 그러셨다.

@키위탕아타


P.S: 그런데 이런 이야기 하면, 무슨 이단교도 취급받는게 한국이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