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글에서 유교를 꼽았는데 그건 아님. 유교의 종교화를 조선시대 전체로 문제시 할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을 이길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가 왕이 빤스런 해도 결국 정신차리고 부대 재편하여 제역할하기 시작한 관군과 각 지역의 의병들 중앙집권적 행정력인데 유교 영향도 없지 않지.


또한 군약신강이라던가 그런 것도 조선이 동시대 국가들 중에선 그래도 중앙집권적이고 왕권이 호구 같은 국가가 아님. 진정한 군약신강이었으면 왕이 신하들한테 갈아치워졌을 거임. 그러나 폭정을 일삼은 연산군과 폐모살제를 일으키고 너무 잦은 역모 사건 조작으로 임진왜란 때 명신들 이항복 이원익 이덕형 등 마저 광해군을 비판하고 조선 정치 세력 서인 남인 북인 중에서 오직 대북( 대북중에서도 폐모살제로 일부 광해군 비판함)으로 정치하고 궁궐 3개 짓는 내정 황폐화한 광해군 말고는 쫒겨난 왕이 없음.


심지어 조선이 최악으로 치달은 세도정치는 유교의 정신에 입각한 정치도 아니었고 말이지. 나는 숙종이 제일 문제라고 본다. 유교의 입장에서 볼 때 제일 정통성 튼튼한 왕으로 즉위해놓고 뭔가 와 할만한 개혁 성과는 없이 권력 잡는 당파만 뒤집는데 인조반정이후 서로 죽이지는 않았는데 아예 남인 서인 거두들 서로 죽여버림. 그러니 지들 거두 죽으니 눈깔 뒤집혀져서 서로 죽이려 들고 후계자도 장난질 쳐서 경종 숙종의 연잉군 후계자 선정 시도를 대놓고 거들던 노론 학살. 영조 때 소론이 노론이 우릴 죽이기전에 선수 쳐야 된다고 위기감을 느껴서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거임. 영정조 때 탕평책을 했어도 결국 돌아갈 수 없는 강이었고 결국 영조 정조 모두 탕평책에 피곤했는지 말기에는 탕평책 버리고 척신정치로 회귀함. 그리고 정조의 척신정치가 바로 김조순 이게 세도정치로 이어진 거고 말이지. 서양 국가들 이제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씨앗이 자라고 있을 때 뻘짓한 숙종이 제일 조선 멸망에 지분이 크다고 볼 수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