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난 공대생이고, 학점이 비어서 인문대 수업 하나를 신청해서 듣는 중이다.

그래서 인문대생 친구들이랑 공대생 친구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었음. (나 자신이 양쪽 수업을 다 들으면서 느낀것도 있고)

 

공대는 "선수 과목"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특정 과목을 배우려면 그 앞에 꼭 알아야하는 과목이 있다. 예를들어, [신호 및 시스템]이라는 과목을 배우기 위해서는 [공업수학] [선형대수학]을 알아야 한다. [공업수학][선형대수학]을 알려면 [기초수학]을 알아야 한다. [기초 수학]은 고등학교 이과 수학의 연장선이다. 그러니까 고등학교 수학, [기초 수학] [공업수학] [선형대수학] 중 하나라도 제대로 안 잡혀있으면 [신호 및 시스템]을 못 배운다. 선수 과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뒷 과목을 들으면 나중에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애시당초 제대로 수업도 못 따라간다.공대는 A라는 과목을 배우고싶으면 그에 앞선 a,b,c,d,e,.....등의 과목을 먼저 배워야만 한다.

 

인문대는 "선수 과목"이라는 개념이 없다. 특정 과목을 배우고 싶으면 그냥 그 과목 공부하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심자라하더라도 그냥 그 과목 교과서를 펴고 읽어가면서 공부할 수 있다. 지식의 습득이 어려울지언정, 다른 과목까지 다시 공부해야하는건 아니다. 인문대는 A라는 과목을 배우기위해선 그냥 A라는 과목만 배우면 되는거다.

 

방학동안 하는 예습 복습의 개념도 다르다. 인문대생 친구는 그냥 다음 학기 과목 하나 딸랑 잡고 공부하면 되지만, 공대생 친구는 공부 할 과목을 포함한 그 관련 과목을 죄다 봐야한다. [디지털 신호처리]과목을 공부하고싶다고 딸랑 그거 하나만 공부하면 될까? 아니다. 그 선수과목들도 가볍게 한번은 봐야 제대로 공부가 된다.

 

수업 분위기도 엄청 다르다. 인문계열 수업은 토론 같은 의견 교류가 중심이다. 교수가 어떤 지식을 전달하면, 대게 그 지식에대해서 토론하고 숙고해보는 시간을 거친다. 수업은 대부분의 정해진 지식 외엔 열린 결말로 끝난다. 공대는 다르다. "숫자는 거짓말 하지 않는다.". 토론 같은 것은 없다. 교수가 정해준 수치가 측정되지 않는다면, 그 수치가 측정될 때까지 계속 재실험해야한다. 열린 결말 같은 것은 없다. 대부분의 공대 수업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수치가 정해져있는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고, 거기에 의견 교류가 들어갈 필요는 없다. 인문계열 수업에선 "그래, 그럴 수도 있구나"가 나올 수 있지만 공대수업에선 "절대로 그럴 순 없다."

 

만약 본인이 조금 널럴하고 인간다운 대학 생활을 원한다면 인문계열을, 치밀하게 짜여진 퍼즐을 해소하는걸 즐기며 고통을 인내할 작신이 있다면 공대를 선택하는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