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목) 오후 광주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강연한 내용입니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 친노가 호남정치의 퇴보와 몰락 불러 ]

 

정치 활동의 핵심은 우리편의 숫자를 늘리고 상대의 숫자는 줄이는 것입니다. 정치인과 정치세력이 정치적 가치관이나 지지 기반이 다른 세력과 손을 잡는 것도 이러한 노력입니다. 대통령선거나 총선 등 중요한 정치 일정이 다가오면 이런 활동이 더욱 활발해집니다. 정책연대나 후보 단일화 등 흔히 정치공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다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호남은 이러한 정치공학에 대한 이해가 높고 호의적입니다. 호남의 유권자들이 친노세력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호남 혼자만의 힘으로는 권력을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민주 진보 개혁 등 호남 정치가 추구해온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과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광주 전남 유권자들의 매우 성숙된 정치적 판단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선택은 우리나라의 정치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적어도 2002년 노무현의 당선까지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평가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습니다. 과거에 긍정적이었던 정치적 선택도 장기적인 역사적 맥락 속에서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수용할 필요가 생깁니다. 그래야 그 정치세력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게는 퇴보와 몰락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호남 정치세력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이것입니다. 친노세력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못한 것이 호남 정치가 위기에 처한 근본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친노세력의 본질이 무엇이기에 그들과의 제휴 그리고 무조건적인 지지가 호남정치의 퇴보와 몰락을 낳은 것일까요?

 

친노세력은 호남을 모욕하고, 호남이 우리 역사에서 했던 역할을 부정하고, 호남의 정치적 자산을 도둑질하지 않으면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세력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내용이 바로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 그리고 앞으로 호남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 대한민국에는 제3의 정치공간이 없다 ]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정치적 기반과 상징자산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근대화/경제개발/반공/박정희/영남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기반으로 새누리당이 여기에 근거한 정당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주화/경제개혁/남북대화/김대중/호남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기반으로 새정치연합(민주당)이 여기에 근거한 정당입니다.

 

이 두 가지 말고 다른 정치적 기반과 자산이 없다는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련 등 양대정당 말고 제3의 정치세력이 자리잡을 ‘빈 땅’이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주영 박찬종 이인제 문국현 등이 바람을 일으켰지만 그때뿐이었고 지속성을 갖지 못했습니다. 진보정당은 지속성을 가졌지만 그 정치기반은 민주당과 겹칩니다. 역대 선거 결과를 보면 이 점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사실 진보정당 세력이 추구했던 것은 민주당 등 보수개혁 세력의 대체였습니다.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이 아니라 나름 개혁 성향을 내세워 기층민중의 지지를 훔쳐가는(?) 민주당을 타격해서 그 자리를 자신들이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때 진보정당 지지율도 높아졌고 반대의 경우에도 민주당의 선거결과와 뚜렷한 동조화(synchronized)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유권자 대중의 눈에는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 개혁1, 개혁2 정도의 차이였을 것입니다.

 

양대정당 외에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는 2002년 이회창의 제왕적 지배를 비판하며 한나라당을 탈당했지만 1년도 버티지 못하고 슬그머니 복당했습니다. 이명박정권 당시 공천에서 학살당한 친박계가 친박연대를 만들어나갈 때에도 박근혜가 동반 탈당하지 못하고 간접 지원에 그쳤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의 여왕조차 양대정당의 자장에서 자유로운 제3의 지대, 빈 땅을 만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양당제를 벗어나 다당제를 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호남 모욕이 친노의 유일한 생존전략 ]

 

친노세력의 고민이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과 별개로 자신들만의 정치적 거점을 만들 수 있다면 굳이 호남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친노세력도 나름대로 독자 세력화를 시도했습니다. 유시민을 비롯한 국참계의 도전과 좌절이 대표적입니다. 그 시도는 실패했고 친노세력은 민주당에 들어와 호남의 정치기반을 접수하는 전략으로 전환했습니다. 문성근의 백만민란, 혁신과통합 등이 바로 이러한 구상에서 나온 정치 이벤트입니다.

 

정치적 연대나 제휴는 당사자들의 정치관이나 지지 기반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호남과 친노의 관계도 이런 것이어야 했습니다. 즉,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치적 목표의 교집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의의 협력과 경쟁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친노세력은 통합 이후 이른바 노이사(친노+이화여대+486) 공천을 통해 호남 출신 정치인을 배제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런 행태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새정치연합에서 친노패권이 문제가 되고 호남의 지지가 흔들리는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친노세력이 호남 출신 정치인들을 배제하는 수단이 호남과 호남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비하와 모욕이라는 것입니다. 이른바 토호론이 그것입니다. 이 주장의 타격 대상은 김대중과 동교동계 그리고 오랜 세월 이들을 지지해온 호남의 선택입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 기타 호남 정치인들은 부패하고 무능하고 타락한 세력이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참신하고 깨끗하고 유능한 친노세력이 그들을 대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김대중과 동교동계의 정치가 지금 기준으로 봤을 때 투명하고 깨끗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평가는 그들이 활동했던 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조건과 제약을 감안해야 합니다. 유신정권 시대에는 단순히 김대중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패가망신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현재 상태를 보십시오. 대통령 후보까지 지냈던 야당 지도자의 아들이 고문 때문에 장애인이 되는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 온몸을 던져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던 사람들에게 투명하지 못하다, 부패한 토호세력이라고 비난하는 게 옳은 태도입니까? 친노는 이런 수법을 통해서 야당의 리더십을 탈취했습니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박근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지만, 냉정하게 따져봅시다. 길 가다가 지갑 주웠던 탄돌이들 포함해 친노정치인을 전부 모아도 민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에 기여한 몫에서 저 동교동계 정치인 한 사람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노무현 본인이라 해도 저 동교동계 정치인들 앞에서는 공손히 예의를 갖추는 게 맞습니다. 저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온갖 어려움 무릅쓰고 박정희 전두환정권과 치열하게 싸울 때 노무현은 돈 잘 버는 세무변호사였습니다.

 

출처 : http://gpr.kr/bbs/board.php?bo_table=free&wr_id=90&sst=wr_hit&sod=desc&sop=and&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