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부 기업들에는 성장의 중요한 기회가 되었다. 처음으로 베트남에 진출한 것은 1965년이었지만, 본격적인 공사 도급은 1966년 시작되었다. 이때 진출한 기업이 현대건설, 대림산업, 공영건업, 부흥건설 및 삼환기업 등 5개 업체였다. 이들이 1966년 한 해 동안 계약한 공사는 모두 480만달러였다.

현대는 1966년부터 1972년까지 총 1950만달러의 공사 및 세탁사업 수익을 거두었다. 깜라인(캄란)만 지역공사(약 900만달러), 깜라인 소도시 건설공사(약 470만달러), 세탁 사업(약 170만달러) 등이 주요 사업이었다. 1966년 현대는 베트남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근 타이로 발을 넓혀 고속도로 공사를 따냈다. 

전쟁 특수가 한창이었던 1967년부터 1970년 사이를 보면 전체 국민총생산(GNP)에서 베트남 전쟁 특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2.6%에서 3.5%에 달했고, 수출 총액의 25%에서 47%를 차지했다. 외환보유고의 경우 베트남에서 들어온 외화가 전체 보유고의 40%가 넘었으며, 무역외 수지 역시 이와 비슷했다. 다시 말하면 1960년대 후반의 국민총생산의 증가는 베트남 전쟁 특수를 제외하고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4555.html

 

결론 : 건설부터 무기제조, 의류제조 전부 미국정부의 허락에 의해 수출이 이루어졌고 오늘날 대기업들도 미군의 발주로 시작해서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미국형님이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은 달러를 벌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