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발포는 군경이 맞는 건 명백한데 당시 시위 진압의 잔학성에 반발해서 시위대와 시민들도 폭력성을 띄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임. 무식한 애들 말하듯 폭동이니까 당연히 폭력진압했어야 된다는 건 언어도단이지만 북아일랜드 사건과 유사한 맥락에서 치안작전의 실패로 봐야지 무슨 경상도 군인의 전라도 말살작전 같은 식으로 이해하는 것도 문제.
일단 최초 '총기'발포 만으로 보자면 계엄군이 맞긴 맞음. 흔히 아는 공식적 발포는 금남로에서 일어난 집단발포이긴 한데 비공식적으로는 광주고등학교 앞에서 공수부대원 장갑차가 먼저 발포를 하긴 했음. 근데 이 경우에는 시위대가 먼저 장갑차를 불태우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정당방위(?)라고도 볼수가 있지 않을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