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많은 분들이 모르는데 설날은 1980년대까지 큰 명절이 아니었다. 일제의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양력을 도입했고 1월 1일 행사와 설날 행사가 비슷했다.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로 신정을 구정보다 더 성대하게 치룬다) 그러니까 설날이 명절은 맞았지만 휴일은 아니었고, 추석만큼의 위상을 갖지는 않았다. 그냥 학교나 직장에서 알아서 쉬는 그런 비공식적 휴일이었다.

하지만 1985년 엄청난 일이 일어나게된다.



1985년 1월 18일 신한민주당이 창당된다. 당시 신한민주당은 거의 어벤져스급이었다. 한국 기독교 수장인 김수환 추기경과 함세웅 신부 그리고 문익환 목사,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1971년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과 박정희 시절 주요 정치인이었던 이기택같은 적극적 지지자 뿐만 아니라 전직 대통령 윤보선과 중정부 1대 부장이었던 김종필, 인권변호사 노무현과 문재인등 소극적 지지자까지 수많은 인사들의 지지를 받고있었다. 역대급 혼종통합정당이 창당된 것이었다.


1985년 4월 총선이 예정되어있어서 그분들은 이 기세로면 신민당이 3당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신민당을 방해하는 공작을 썼다. 약칭에도 신민당 못쓰게 했고 4월에 치뤄지기로 예정된 총선을 2월 12일로 당겨버렸다. 민정당측에서는 관제야당 민한당을 협박해 신민당으로 당직 옮기면 구속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TV에서는 땡전뉴스만 했고 반공 만화, 반공 드라마, 반공 영화만 틀어주고 전비어천가를 불러댔다. 이처럼 민정당의 신민당 탄압은 거의 도를 넘은 수준이었다.

이런 배경속에서 설날이 민족 대명절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당시 3S정책에 공을 들이고있었다. 전두환은 1985년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 또다시 비슷한 정책을 쓰기로 한다. 이로인해 음력 1월 1일이 민속의 날이 지정되며 현재 민족대명절 설날의 기원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1985년 총선을 앞두고 신민당의 약진을 막기 위해 민정당이 채찍과 당근을 썼는데, 당근이 바로 설날의 공휴일 지정이었다. 심지어 총선 바로 일주일 다음이 설날이었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신민당에 대한 방해였다.

나름 오래 전해져온 전통인것같지만 실상은 1985년 탱크를 잘 몰것같이 생긴 어떤 대머리 아저씨가 민주주의 파괴를 위해 만든거다.


그렇게 열을 올린 1985년 총선을 민정당은 자신이 압승할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한것이 무엇보다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총선 3일 전인 2월 9일 김대중이 급작스럽게 입국하였고, 전국의 호남인들을 단결시켜 총선에서 신민당이 3당도 아닌 2당이 된다. 그것도 신민당에 우호적이었던 민한당과 득표율을 합치면 49%로 민정당 35%를 압도하였다.

나중에 설날되서 친척들 만났을 때 니 친척이 다 호남출신이면 이 이야기를 신나게 해주고 선거에서 신민당이 질뻔했는데 김대중 대통령님 덕분에 이긴거임 ㅇㅇ 해주면 친척들의 신뢰를 얻을수 있을것이다. 즐거운 설날을 보내는 방법중 하나가 된다. 내 친척은 대부분 서울이나 충청도이기 때문에 별 감흥은 없다.



[출처] 다다익선